영화 '행복을 찾아서', '히치', '어느날 그녀에게 생긴 일' 등 전 세계적으로 영화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이 작품들에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프로듀서가 동일하다는 것.
콜롬비아 픽처스의 중역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히트작품들을 제작해왔고 세계 유명 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도 활동 중인 테디 지(Teddy Zee)가 바로 그 프로듀서다. '영화 매니아'를 자청하며 영화에 대해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 한 번쯤은 그의 이름을 들어봤을터. 특히나 미국 최대 탤런트쇼 '콜라보레이션(Kollaboration)'의 심사위원으로도 참가할 만큼 할리우드에서 그의 입지는 대단하다.
이처럼 저명한 그가 한국에 오면 꼭 만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배우 이정진. 유명 프로듀서와 배우의 만남, 충분히 비즈니스적인 측면으로 이 만남을 바라볼 수 있겠지만 두 사람은 사이 좋은 형·동생 사이다. 일적인 이야기는 거의 없다. 정말일까. 영화 '피에타'를 보기 전까지 이정진을 배우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하니 두 사람의 우정을 오해하지는 말자.

그렇다면 두 사람의 만남은 어떻게 이뤄졌을까. 최근 한국에서 만남을 가진 테디와 이정진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우리에게 두 사람의 첫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인의 소개로 테디형을 처음 알게 됐어요. 연기나 작품 등 일적인 얘기를 하는 사이로 지낼 수도 있었겠지만 저는 처음부터 테디가 형같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종종 미국에 갈 때면 꼭 테디를 찾아가 같이 밥도 먹고 놀러도 가고 그랬죠.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됐어요. 형이 할리우드 사람들도 소개시켜주고 비버리힐즈의 자선파티도 데려가고 이것저것 보여줘요."(이정진)
"정진은 휴가친구죠. 정말 재밌어요. 사실 저희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할리우드의 화려한 삶과는 거리가 멀어요. 그런 걸 좋아하지는 않죠. 다만 정진이 왔는데 평범한 걸 보여주면 '뭐야, 할리우드 재미없네' 이렇게 생각할까봐 정진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거에요(웃음). 그리고 반대로 제가 한국에 올 때면 제가 정진에게 할리우드에서 해주는 것보다 훨씬 재밌게 놀아요. 정진이와 부산영화제도 같이 가고 레드카펫도 걷고 그랬죠."(테디)

이처럼 사이좋은 형·동생 사이로 이정진과 5년간의 우정을 이어온 테디는 이날 기다렸다는 듯 영화 '피에타'에 대한 궁금증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자신이 아끼는 동생이 출연한 작품이기에 그만큼 관심이 갔으리라. 이정진 역시 영화 이야기에 신이 난듯 자신이 생각하는 '피에타'에 대한 생각을 털어놨다.
두 사람이 가장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극 중 강도(이정진 분)의 몽정 장면. '피에타'에서 30대 초반~후반의 나이로 등장하는 주인공 강도는 잠을 자며 몽정을 한다. 이 행동은 강도가 엄마라는 여자(조민수 분)를 만나고 나서도 계속된다. 다 큰 성인 남자가 몽정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론 이해할 수 없는 일. 테디는 이 몽정장면을 예로 들며 주인공 강도가 성관계를 경험한 적이 없는 인물인지를 궁금해했다.
"'피에타'를 보면서 궁금했던 점은 극 중 주인공 강도가 성관계를 한 적이 없는 인물로 설정돼 있느냐에 대한 것이었어요. 저는 강도를 총각이라고 생각했는데 왜냐하면 극 중 한 여성이 자신의 남편에게 돈을 받으러 온 강도한테 '내 몸을 줄테니 기간을 늘려달라'고 하잖아요. 강도가 이를 거절한 건 (성관계를) 해 본 적이 없거나 그걸 싫어하거나 둘 중의 하나일텐데 나중에 강도가 자고 있는 엄마한테 안기는 장면에서 강도가 성관계의 경험이 없는 남자라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강도는 그저 엄마를 안고 싶었던거죠. 영화에서 강도를 연기한 정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해요."(테디)
"제 생각엔 몽정장면은 김기덕 감독이 관객에게 준 일종의 힌트에요. 30대 남자는 몽정을 하지 않아요. 성관계를 갖기 때문이죠. 몽정이라는 것은 청소년기에만 하는 거에요. 그런 몽정 장면을 영화에 넣은 것은 (강도가) 몸은 성인이지만 중학교 쯤에서 성장이 멈췄다라는 것을 알려주는 힌트에요. 사실 강도가 성관계가 없는 인물일까에 대한 해답은 관객의 몫이지만 감독이 주는 나름의 힌트인거죠."(이정진)

'피에타'에 대한 궁금증을 나누며 열띤 토론을 이어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테디에게 '피에타'에 대한 개인적 소감을 물었다. 그는 '피에타'는 엄마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다며 자신의 소감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피에타'는 엄마와 아들의 친밀감에 대한 영화인것같아요. 같이 자라던 자라지 않던 엄마라는 사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크게 미칠 수 있는지 느낄 수 있는 영화였어요. 그리고 제가 '피에타'를 보며 가장 궁금하기도 했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왜 감독이 주인공을 굉장히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을까'라는 점이에요. '나빴던 사람이 왜 엄마를 만나고 나서 꼬마 아이처럼 변하는걸까' 이 부분이 궁금하면서도 마음에 들어요."(테디)
"이게 되게 중요한 지점이에요. 해외에 가면 꼭 이 이야기가 나와요. 그런데 한국 관객분들은 갑작스런 강도의 변화를 보고 단지 '바보같다'고만 이야기하거든요."(이정진)
"제 생각인데 한국인들은 부모와 오랜 기간 함께 살잖아요. 그래서 같이 살면서 변화하는 걸 서로 보고 자라죠. 미국은 부모와 빨리 떠나고 대신 자주 만나는 편이에요. 그러나 집에 오면 어릴 때의 기억으로 인해 바로 아이가 되버리죠. 때문에 '피에타'에서 강도가 엄마를 만나서 아이가 되는 모습이 이상하지 않게 받아들여져요. 그래서 엄마를 만났을 때 아이처럼 변하는 강도의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어요."(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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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