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기록과 기록 사이]홀수 구단과 기록의 함수관계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2.12.04 10: 20

신생구단 NC 다이노스의 참가로 홀수인 9개 구단으로 짜여진 2013년도 정규리그 경기일정이 발표된 후, 관계자들의 시선이 우선 집중된 곳은 일정표상의 휴식일 즉 빈칸이었다.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본격합류로 8개 구단이 정규리그를 치르기 시작한 이래 오랜 동안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던 휴식일. 사람들은 이 빈칸이 팀 운영에 불러올 파장과 유,불리를 따져보고자 일정이 나오자마자 계산기를 두드렸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여러 예상과 추측들을 일거에 쏟아냈다.
하지만 이는 일찍이 예상되었던 일이다. 빙그레 이글스(한화의 전신)의 창단으로 팀 수가 7개로 늘어나는 바람에 대진 팀들의 짝이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한 팀씩 돌아가며 쉬어야 했던 1986~1990년의 과거 경기일정표에서 만났던 그 기억. 정확히 표현하자면 2013 경기일정표 안의 빈칸은 ‘예상된 낯 설음’, 그에 더도 덜도 아니었다.

사실 프로야구 경기일정을 담당하고 있는 KBO 운영부의 고민은 2012년 NC의 프로야구 입성 확정 순간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기존 짝수 구단을 대상으로 하는 경기일정에서도 모든 구단들을 만족시키기 힘들었던 차에 일정 간격으로 한 팀씩 빠져야 하는 경기일정은 상황을 꼬이게 만들었고, 여기에 팀 휴식일의 전후 파급영향까지 감안해야 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경기일정을 첩첩산중으로 몰아간 주범인 휴식일, 빈칸은 알다시피 시즌 팀 운영에 있어 많은 변수와 함께 독소를 내포하고 있다. 자질구레한 점들은 거두절미하고 경기 공백기인 빈칸은 그 앞과 뒤의 일정에 모두 영향을 미친다.
휴식일을 가졌던 팀들이 충분히 재충전된 상위순번 선발급을 내세워 무력시위에 나섰을 경우, 연전 중에 이를 상대해야 하는 팀들의 고전 가능성이 우선적으로 제기되었지만, 휴식일을 코 앞에 둔 팀들의 마지막 전력투구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변수라 할 수 있다. 보장된 휴가(?)를 믿고 가용할 수 있는 투수력을 총동원해서 상대를 옥죄려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무휴 6연전 시스템에서도 월요일의 휴식을 믿고 일요일 경기에 불펜자원을 풀 가동하는 일이 종종 있어왔다는 점, 올스타 휴식기를 앞둔 일부 팀들이 전반기 막판 선발급들을 마무리로 돌렸던 변칙운영 등을 회상해보면 그 영향력을 대충 가늠해 볼 수 있다.
이렇듯 일정표가 던져주는 여러 걱정들은 결국 홀수 구단 체제가 낳은 문제점들이며, 이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은 짝수 구단의 리그참여 외에는 뾰족한 답이 없다. 경기일정표를 만지작거리며 궁리해보지만 하나를 보완하면 다른 곳이 무너지는 양상의 반복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골칫거리로 다가온 빈칸 즉 휴식일이 채택된 해의 성적은 그 이전 연도와 비교해 어떤 차이를 보여주었을까? 막연히 상상하기보다 우리가 이미 치러냈던 1986년의 유사 경험자료를 토대로 2013년의 투타양상을 미리 그려보면, 답은 ‘투고타저(投高打低)’로 귀결된다.
6개 팀이 휴식일 없이 경쟁했던 1985년 리그의 평균자책점(방어율)은 3.48이었다. 이해 평균자책점 10걸의 턱걸이 가능 선은 2.92. 그러나 7개 팀의 참가로 휴식일이 끼어들 수 밖에 없었던 1986년 리그의 평균자책점은 3.08로 한참 낮은 수위를 보여주었다. 평균자책점 10걸에 들기 위해선 2.53 아래로 수치를 낮춰야 했다.
또한 1985년 1점대 이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던 투수가 선동렬과 최동원 단 2명뿐이었던데 반해, 1986년에는 1점대 이하 평균자책점 기록 투수가 6명(선동열과 최동원, 최일언, 김용수, 김건우, 장호연)으로 대폭 늘어났다.
다승부문에서도 10걸의 커트라인은 상향 조정되었다. 1985년 10승이면 10걸 안에 충분히 들 수 있었지만, 1986년에는 12승으로 올랐다. 팀 당 경기수가 110경기에서 108경기로 줄어들었지만 각 팀 주전급 투수들의 승수는 오히려 증가하는 양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휴식일이 기록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중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었는데, 단편적이긴 하지만 통계가 이를 보여주고 있다.
반면 두 해를 비교한 타격 쪽에서는 그래프 방향이 아래 쪽을 향했다. 1985년 리그 타율은 2할 6푼이었지만, 1986년에는 2할 5푼 1리로 낮아져 있었다. 타격 10걸을 기준으로 본다면 1985년엔 3할은 쳐야 이름을 올릴 수 있었지만, 한 해 뒤인 1986년에는 고작(?) 2할 8푼 8리를 기록한 김성래(삼성)가 10위였다. 그해 3할 이상을 기록한 타자는 장효조(.329)를 비롯 김종모(.313), 이광은(.304), 김봉연(.300) 등 총 4명뿐이었다.
홈런에서도 1985년에는 경기당 홈런수가 1.36개(330경기/450홈런)였지만 1년 뒤에는 1.05개(378경기/397홈런)로 수치가 대폭 내려 앉았다. 아울러 홈런 10걸도 커트라인이 12개에서 10개로 줄어들었다.
물론 1986년 신인왕에 선정된 김건우(MBC)를 위시해 이상군과 한희민(빙그레), 성준(삼성), 김정수와 차동철(해태) 등 우수한 즉시 전력급 투수들이 상당수 프로에 데뷔하는 등, 투수력이 상대적으로 강화된 현상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지만, 1986년의 투고타저 현상 원인분석에 있어 경기일정의 단절로 인한 투수기용패턴 변화와 더불어 타자들의 흐름 단절도 한몫을 한 것으로 해석되었다는 점에서 지금의 상황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되는 부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들 외에도 팀 당 경기수가 133경기에서 128경기로 5경기씩 감소되는 부분 또한 기록에 있어 또 하나의 부정적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홈런과 다승, 도루 등 선수들의 시즌 기록들이 빈약해짐과 동시에 시즌 말미 국민적 관심사로 부각될 수도 있는 20승 투수 출현과 200안타 도전 등은 더더욱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된다. 이슈의 부재와 빈곤, 야구기록에 있어 홀수 구단체제는 이래저래 덕지덕지 단점투성이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고 싫든 좋든 짝수 구단이 되기까지 홀수 구단으로 인한 경기일정과 리그운영의 불협화음은 당분간 피해갈 수가 없게 되었다. 다만 이 시점에서의 바람은 한 쌍의 짝이 맞지 않을 앞으로의 과도기적 빙하기가 그저 최대한 짧았으면 하는 그것뿐이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NC 다이노스 선수들이 마산구장에서 훈련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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