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 반짝하면 안 되지요. 언제나 긴장감을 놓지 않겠습니다”.
갑작스러운 보직 변경 이후 선발승이 늘어날 때마다 그는 자동응답기처럼 ‘긴장의 줄을 놓지 않겠습니다’라는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입단 10년 만에 제대로 찾아 온 기회와 상승세를 제대로 살리겠다는 각오 때문이었다. 두산 베어스 우완 에이스로 우뚝 선 노경은(28, 두산 베어스)의 목표는 확실한 동기부여 속 점차 상향되고 있다.
노경은의 올 시즌은 그야말로 환골탈태였다. 지난 시즌 셋업맨은 물론 계투 추격조로도 투입되며 44경기 5승 2패 3홀드 3세이브 평균자책점 5.17을 기록한 노경은은 시즌 개막 전 셋업맨으로 낙점되었던 바 있다. 그러나 제구력이 미완이었던 만큼 그의 계투 성적은 24경기 2승 2패 7홀드 평균자책점 3.96. 피안타율 2할8푼6리에 25이닝 동안 피사사구 16개로 투구 내용이 깔끔한 편은 아니었다.

“네 구위를 믿고 던져라”라는 김진욱 감독의 지시 하에 잠시 선발 외도를 하는 듯 했던 노경은. 그런데 이 우연한 기회가 두산이 새로운 선발 에이스를 얻는 계기가 되었다. 6월 6일 잠실 SK전 6이닝 1실점 호투로 대박 조짐을 보였던 노경은은 선발 18경기 10승 4패 평균자책점 2.23을 기록했다. 피안타율이 1할8푼5리 초특급. 완봉승도 두 차례나 했고 프로 데뷔 10번째 시즌 처음으로 규정이닝을 돌파(146이닝)했다.
특히 노경은은 9월 서재응(KIA)과 함께 국내 최고 선발 투수로 활약한 인물이었다. 4경기 33이닝 동안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았고 피안타율 1할1푼에 33이닝 동안 사사구도 단 8개 만을 내줬다. 최고 153km의 직구는 물론 144km의 슬라이더, 정명원 코치로부터 배운 포크볼, 120km대 중반까지 계측되는 파워커브. 제구력이 좋아지자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특급 무기들이 제대로 불을 뿜었다.
한때 팬들의 지독한 미움까지 샀던 노경은이 이제는 두산 선발진은 물론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표팀에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우뚝 선 2012시즌이었다. 신고선수 신인왕 인간 승리를 보여준 서건창(넥센)과 함께 선배 야구인들이 시상하는 일구회 의지노력상 주인공으로서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 팀에는 제 예전처럼 좋은 재능을 갖고 있음에도 아직 1군에서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 후배 투수들이 많습니다. 그 친구들이 제 모습을 보면서 힘을 내고 함께 두산 투수진을 강력하게 만드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그리고 저도 지금의 성적에 안주하지 않고 매사 긴장감을 잃지 않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꾸준히 활약하는 두산 선발 노경은이 되고 싶어요”.
문득 예전 노경은을 2군에서 만나면 줄곧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잘 되어야지, 잘 될 거다”-“제가 뭘요”. 한때 노경은은 매사 자신이 없고 자신이 가진 무기가 얼마나 뛰어난 지 모르는 투수였다. 여기에 팬들의 무자비한 비난이 겹쳐 더욱 위축되며 은퇴 생각까지 했던 노경은이다. 그 노경은이 이제는 규정 이닝을 채운 국내 투수 중 가장 좋은 평균자책점(2.53)을 기록한 에이스로 우뚝 섰다.
“긴장감 잃지 않고 꾸준히 잘 던지는 투수가 되겠습니다”. 우연한 기회가 만든 선발진의 에이스. 한때 자신 없이 어깨를 늘어뜨렸던 그는 “후배들의 동기 부여도 달린 만큼 더욱 꾸준히, 오랫동안 부상 없이 맹활약을 펼치는 투수가 되고 싶다”라며 어깨를 활짝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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