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쪽은 “뛰고 싶다”고 했다. 다른 한 쪽은 “그러면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얼핏 보면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도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만수(54) SK 감독과 박경완(40) 사이의 줄다리기가 그렇다.
이만수 감독과 박경완은 4일 오후 문학구장에서 만났다. 박경완의 공개적인 면담 요청에 플로리다 마무리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이 감독이 재빠르게 응했다. 면담은 40분가량 진행됐고 서로의 이야기가 오고간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기대했던 극적인 타결은 없었다. 오히려 양측의 온도차만 확인한 모양새가 됐다. 서로가 바라보는 지점은 여전히 달랐다.
▲ 박경완, 여기서는 자리 없다

박경완은 지난달 7일 SK 구단 관계자와 만난 자리에서 현역 연장 의사를 밝혔다. ‘은퇴 후 코치 연수’를 생각하고 있었던 구단은 검토 끝에 이 의사를 수용했다. 그리고 박경완을 보류선수명단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박경완은 한 발 더 나아갔다. 그저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이 아닌 1군에서 뛰길 원한다는 명확한 의사를 드러냈다. 선수기용의 전권을 가지고 있는 이 감독과의 면담을 요청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박경완이 우려하는 대목은 내년도 2012년의 재판이 되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박경완은 2012년 1군에서 8경기 출전에 그쳤다. 부상도 있었지만 시즌 막판에는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린 양상이었다. 조인성 정상호가 버티고 있었고 9월에는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이재원까지 가세했다. 박경완은 “몸 상태는 괜찮았다”라고 했다. 경쟁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박경완은 “내년에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때는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년에도 상황이 나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경쟁은 더 힘겨워질 수 있다. 조인성 정상호가 이 감독의 신임을 받고 있고 이재원도 호시탐탐 포수 마스크를 노리고 있다. 마흔을 넘어선 박경완으로서는 “기회를 주겠다”라는 이 감독의 말만 믿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2012년에서 느낀 것이 많기에 더 그렇다.
때문에 박경완은 타 팀 이적을 통해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은 생각이다. SK보다는 자신의 가치가 빛날 수 있는 곳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뜻이다. 선수 스스로 트레이드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당장 포수 자원이 부족한 3개 팀에서 박경완의 거취를 눈여겨보고 있다.
▲ 이만수 감독, 박경완이 필요하다

이 감독의 생각은 확고하다. 이 감독은 박경완의 거취 여부가 화두로 떠오른 뒤 “박경완에 대한 차별은 없다”라고 세간의 풍문을 부인하면서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기회를 줄 것이다. 이 경쟁에서 이겨야 주전 포수가 될 수 있다”라는 의사를 거듭 밝혔다. 마냥 자리를 만들어줄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 감독은 박경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면담에서도 선수에게 이 점을 충분히 설명했다. 이 감독은 “포수 포지션은 변수가 많다. 부상자가 언제든지 나올 수 있는 포지션이다. 내년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라고 했다. 최대한 많은 자원을 손에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은 모든 감독들의 공통된 심정이다.
더군다나 SK는 내년 일부 포지션의 교통정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당장 이호준이 NC로 이적해 4번 타자 자리가 비었다. 때문에 장타력이 있는 이재원 조인성의 지명타자 전환도 거론되고 있다. 이 경우 박경완의 가치가 커질 수밖에 없다.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까지 모두 지켜본 후 보직을 결정할 것”이라고 한 이 감독이지만 상황에 따른 박경완 활용법은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있음직하다.
트레이드 가능성에 대해서는 구단 자체가 부정적이다. 민경삼 SK 단장은 “트레이드는 있을 수 없다. 박경완은 무조건 우리 선수다”라고 강조했다. 상징성이 큰 선수인 만큼 박경완을 트레이드하는 것은 구단으로서도 큰 부담이 따른다. 따라서 박경완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다. 일단 박경완은 면담 후 다시 장고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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