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마동석(42)이 영화 ‘통증’(2011)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은 서로 모셔가기 바쁜 배우가 됐지만, ‘통증’ 때의 마동석은 이제 막 스크린에서 이름과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배우였다. 마동석이 주연급 연기를 제대로 할 수 있겠냐고 걱정했던 시선들. 이 때 마동석의 출연을 의심 없이 믿고 간 한 사람이 있었다. ‘통증’의 제작사 구성목 대표(34)다. 구성목 대표는 “마동석 없이는 영화도 없다”라며 그의 출연을 밀어붙였다. 두 사람은 말한다. 서로가 없다면 지금의 본인들도 없다고.
구성목 대표는 우리나라 최연소 영화 제작자로 ‘비스티보이즈’(2008), ‘우리 만난 적 있나요’(2010), ‘통증’(2011), ‘이웃사람’(2012) 등을 제작한 영화사무쇠팔(前영화사축제)의 대표다. 영화계에서 급성장한 입지전적인 인물로, 우직한 외모에 뚝심 있는 제작자로 정평이 나 있다. 이 작품들 모두 마동석과 함께 했다. 10여년의 나이 차가 있지만, 이들은 형-동생이자 절친이며 이상적인 파트너 십을 보여주고 있는 충무로 짝꿍이다. 깊어가는 겨울 밤, 오고 가는 술잔 사이에는 이들의 역사와 함께한 안주거리들이 가득했다.
♤ 마동석-구성목 패키지는 안 된다고? “우리가 보여주자!”

둘이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영화 '비스티보이즈'를 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영화의 꿈을 안고 드라마 제작사에 있던 구 대표는 친구인 ‘비스티보이즈’의 윤종빈 감독과 함께 한 술 자리에서 마동석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5년 전 쯤이다. 둘은 첫 만남에서부터 강렬하게 끌렸다.
마동석 : 그 때는 나도 배우로 잘 나가던 시기가 아니고, 얘도 일에 대한 회의가 있고 둘 다 힘들 때였어요. 이 친구가 당시 일에 대한 회의를 많이 느낄 때였는데, 되게 재능이 아깝더라고요. 잘 할 것 같은데. 이 친구가 보면 우직하게 생겼는데, 되게 감각 있고 아이디어도 많고 얘기해보면 재미도 있어요. 그래서 계속 영화를 하라고 했고, 얘가 마음 먹고 영화 제작을 하면서 ‘비스티보이즈’, '우리 만난 적 있나요', ‘통증’, ‘이웃사람’을 연이어 했죠.
본격적으로 둘의 만남이 빛을 보기 시작한 작품은 '통증’. 강풀 원작의 영화화를 두고 둘이 계속 프로젝트를 발전시켜 나갔다. ‘통증’에 이어 '이웃사람' 때도 주위에서 제작이 안 될 거라는 얘기가 많았고, 마동석이 주인공이라고 하니 무슨 영화가 되겠냐는 비아냥도 있었다. 이렇듯 어려움도 많았지만 뚝심 있게 몇 년간 프로젝트를 지켜왔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안 된다고 할 때도 둘의 믿음은 변치 않았다.
구 대표 : ‘통증’ 때부터 마동석-구성목 패키지는 안 된다는 제작사들과 관계자들이 많았어요. ‘통증’과 ‘이웃사람’이 만들어지면 손가락에 장 지진다는 사람들도 있었죠.
“오기가 생겼겠다”란 말을 던지자 구 대표가 말한다. “오기, 물론 있었죠. 그런 것들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해준 것 같아요.”
구 대표는 ‘통증’ 때 마동석을 캐스팅하기까지 겪은 어려움, 그리고 마침내 출연을 확정하게 된 상황을 떠올렸다.
“동석이 형 캐스팅을 확정하고 둘이 자주 가는 술집에서 울었어요. 그 때 생각하면 아직도 애잔해요(당시 마동석 출연에 반대하거나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 영화인들이 많았다).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통증 세팅 힘들지? 네가 잘되면 나도 힘을 실어서 다음 작품을 하면 되니까 나 신경쓰지마’라고 하더라고요. 진짜 ‘통증’은 같이 기획한 작품인데, 17페이지를 가지고 강풀 작가를 같이 만나고 했는데 그 소리를 들으니까 울컥하더라고요. ‘형이 안 하면 나도 안 한다’고 했죠. 프로듀서를 만나서 ‘나 못하겠다’고 했어요. 오른팔 왼팔 다 자르고 무슨 일을 하겠냐고.”
구성목 대표의 믿음에 주변 사람들 하나씩 설득 당했고, 마동석의 연기를 보고 ‘굿 캐스팅’이란 호평까지 흘러나왔다. 그리고 모두들 안 될 거라던 ‘통증’은 만들어졌다.

♤ “날 수렁에서 건져준 형”
하지만 구 대표에게 ‘통증’ 후 슬럼프가 찾아왔다. 많이 아낀 작품인 만큼 '통증'의 흥행이 잘 안 되자 힘이 많이 빠졌다. 구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당시 이런 본인을 수렁에서 구한 건 마동석이다.
구 대표 : 나는 제작자로서 좀 급하게 온 것 같아요. '통증'이 너무 기대를 많이 했던 작품이라 작품성으로는 칭찬을 받긴 했지만 흥행이 안 돼 힘이 많이 빠졌죠.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그 당시 동석이형한테 매일 전화가 왔어요. 이 형은 다음 작품을 하고 있었는데 계속 전화가 오더라고요. ‘아 뭘 이렇게 전화하나’라고 생각하면서 받으면 ‘맥주 한 잔만 하자’ 그러고. 그래서 피하면 그 다음날 또 전화오고. 어느 날 형이 무조건 나오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나갔는데, 영화 이야기는 하나도 안하고 재미있게 수다를 떨었죠. 형을 보니까 좋더라고요. 형이 ‘많이 힘들지?’ 그래서 ‘성장통을 앓는가봐’ 라고 했더니 갑자기 자기가 돈 많이 벌어 도와 주겠다고 하는데, 그 얘기를 너무 진지하게 하는거에요. 형이 술 먹고 이야기할 때는 눈물이 글썽여요. 거기서 빵 터졌죠. 그러니까 형이 멋쩍어하고. 너무 빵 터지면서 체증이 다 내려간 것 같아요. 형이랑 그날 진탕 마셨어요. 마지막에는 나한테 ‘영화 꼭 해야 한다, 형이랑 꼭 같이 웃자’이러고.
♤ “남자는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에게 모든 걸 던진다”
이들 사이에 흐르는 따뜻한 기운. 그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믿음’이다. 인맥이 중요한 영화판에서는 서로에 대한 믿음, 그리고 확신이 없으면 누구에게 소개를 시켜준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들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소개시켜주는데, 그 소개를 시켜 준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으려는 마음이 가장 크단다.
마동석 : 같이 처음 일하기 시작할 때 구 대표가 잘 나가는 제작자는 아니었고, 나도 잘 나가는 배우도 아니었는데, 같이 하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 믿음이었어요. 사람들이 우리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할 때 서로를 믿어 준거죠. 운동하는 사람이 배우를 하는 것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편견이 있는데, 구 대표는 그런 거 필요 없대. 마동석은 좋은 배우라는 힘을 많이 줘요. 그게 시너지가 되니까 좋은 작품이 나오고 결과적으로 ‘이웃사람’이 성공해서 내 첫 주연작이 된 거죠. 성목이한테 고마워요. 날 지켜줬다는 게. 배우는 나를 약간 무한애정으로 봐주는 사람이 있으면 이 사람이 다른 사람, 또 다른 작품에 추천해 줬을 때 ‘이 사람 얼굴에 먹칠하지 말자’는 생각에 더 열심히 해요. 그 사람에게 ‘마동석을 추천한 이유가 있구나’란 말을 듣게 해주고 싶은 거죠. 닭살이니까 서로 표현은 잘 안 하는데, 항상 고마워요.
구 대표 : 1년 6개월 동안 방황할 때 동석이 형이 일주일에 다섯 번 정도 술자리에 불렀어요. 그럼 형이 아는 인맥이 다 그 자리에 있더라고요. 동석이형이 항상 자기 옆에 앉으라고 하고 사람들을 소개시켜줬어요. 제 모든 영화 제작은 동석이형의 소개로 시작됐어요.
이에 마동석은 말한다. “사실 나는 소개시키는 것에서 끝났지. 나머지 일들은 성목이한테 다 맡겨 놓은 거야.”

♤ “마동석은 촬영할 때 골질 안 하는 배우”
10여년의 나이 차이를 뛰어 넘은 두 사람이 서로 어떤 점에 끌리게 됐을까?
마동석 : 한 두 가지로 얘기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사적인 것부터 일까지 얘기를 많이 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쌓아온 것 같아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코드나 마인드가 맞는 사람들은 드물잖아요. 성목이는 나이가 어린데도 ‘사람을 잃으면 못한다’는 마인드가 있고, 무엇보다 욕심 안 부리는 것이 참 마음에 들었어요. 영화사 하면서 자기 욕심 안 부리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상대방이 그러면 나도 그렇게 돼요.
구 대표 : 동석이형이랑은 인생설계를 같이 해요. 나하고 이런 농담도 해요. ‘너 50살 되면 영화 못할 거 아니냐. 우리 영화 현실에선. 그 때 같이 이민 가서 식당하자.’ 동석이 형은 존경하는 배우이면서 사랑하는 형이지만 조금 소년 같아요. 정신연령이 우리랑 맞아요. 철이 없다는 게 아니라 트렌드를 계속 유지하는 거죠. 40살이 넘으면 재미없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안 그래요. 굉장히 호흡이 잘 맞아요. 그게 굉장히 좋죠. 나도 나이가 들면 형 같은 마인드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또 동석이 형이 충무로 중견세대들하고도 잘 맞는다는 거에요. 그래서 형이 세대를 잇는 역할을 완벽하게 해 주죠. 동생들 하고도 잘 맞고 선배들한테도 맞춰줄 줄 아는 형이에요. 그래서 ‘이 형이 비즈니스에 능하다’는 생각도 했지만 비즈니스가 아니라 보니까 그냥 즐기는 거더라고요. 동석이형은 충무로의 제일 ‘쟁이’ 같아요. 사람과 일을 즐기죠. 그리고 촬영할 때 골질 안 하는 배우죠. 그런 게 좋아요.
마동석 : 나는 내가 어느 위치라는 걸 잘 아는 편인 것 같아요, 다른 사람에 비해. 여기에 구 대표가 그릇에 넘쳐나는 너무 무리한 건 하지 말고 적절하게 다음에는 이런 정도의 영화를 했으면 좋겠다, 라는 조언을 해 주죠. 제작자와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도움이에요. 캐릭터가 있으면 ‘형 이런 거 해보면 어떻겠냐?’라고 의견도 교환하고 같이 준비하고.
구 대표는 “장난으로 ‘임달화 형은 영화 180편을 했다는데. 형은 나이 들면 더 많이 할 것 같다. 그런데 나랑 30~40개 하지 않을까?란 말을 한다”라며 웃어 보였다.
♤ “구성목 대표는 황소개구리처럼 웅크리고 있다가 탱크처럼 터뜨린다”
마동석은 구 대표에 대해 “일 하는 게 황소개구리처럼 웅크리고 있다가 탱크처럼 터뜨리는 스타일”이라고 표현했다.
뚝심 있고 우직하게 지켜가다가 폭발시키는 힘이 있다는 것. 이는 구 대표가 우리나라 최연소 제작자가 된 동력이기도 하다. 또 마동석은 구 대표의 장점에 대해 ‘돈보다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마동석 : 우리는 둘 다 꿈이 있고 그 꿈을 현실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인데 마음이 너무 더러워져있으면 안 되잖아. 나는 돈 생각했으면 배우 안 했어요. 그런 기본적인 마인드 부분이 잘 맞아요. 또 어떤 파트에서 강한 사람들이 있는데 구 대표가 굉장히 섬세하고 예민한 부분이 있어요. 그걸 높이 사요. 하정우라는 친구를 늘 보면서 생각하는 건 그 친구는 천재에요. 연기도 잘하고 사람도 재미 있는데 진정성도 있죠. 또 다른 한편에서 구 대표도 굉장히 기발한 사람이에요. 작품, 캐릭터 얘기하면서 배우로서 깜짝 놀랄 정도로. ‘저런 디테일까지 생각하는구나’란 생각이 들게 하죠. 그런 부분은 동생이라도 배워야 하는 부분이라 많이 배워요. 그런데 무엇보다도 둘이 같이 하면 재미있으니까 같이 하는 거에요. 같이 일하면 즐거운 거죠.
- 2편에 계속.
<사진> 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