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에 물이 올랐다는 말이 가장 적합할까. 그간 수많은 작품을 통해 탄탄한 연기 내공을 뽐내왔던 그였지만 이번엔 제대로다.
1980년 5월 광주의 그날, 비극적 사건의 주범인 그 사람을 단죄하기 위한 작전을 다룬 영화 '26년'에서 배우 진구는 행동대장 곽진배로 분해 스크린을 종횡무진 누비며 관객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사실 진구는 영화 '비열한 거리', '마더', '모비딕' 등을 통해 수차례 연기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특히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서 보여준 그의 인상적인 연기는 제30회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루는 밑받침이 됐을 정도.

그러나 '마더' 이후 그렇다 할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던 진구는 이번 영화를 통해 확실히 제 옷을 찾은 듯하다. 지난달 30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OSEN과 만난 진구 역시 본인에게 딱 맞는 옷을 입은 것 같다며 영화 출연의 소감을 전했다.
- 작품 출연을 결정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 사실 유족들이 겪었을 고통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광주사람도 아닌데다가 그 당시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여서 그저 막연한 생각만을 가지고 있다가 영화 시나리오를 보고 관련 자료들을 보면서 뒤늦게 (유족들의 고통을) 알게 됐다. 그리고 내가 여태껏 그러한 고통을 몰랐다는 것에 대한 죄스런 마음이 들었다. 과연 내가 이 죄스런 마음을 어떻게 해야 갚을 수 있을까 하다가 열심히 ('26년'을) 찍는 수밖에 없겠더라. '이제서야 알아서 미안하다' 이 마음을 전달해주는 입장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 처음 영화 출연을 결정하고 난 뒤 제작이 계속 무산되면서 4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왔다.

▲ 작품이 나를 기다려 준 것이 맞다. 제작되지 않는 상황에서 나는 영화 '마더', '모비딕', '혈투' 등을 찍었고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도 하고 그랬으니까 내가 기다린 게 아니지 않나(웃음). 작품이 진구라는 배우가 당초 예정됐던 김주안이라는 캐릭터에서 곽진배라는 캐릭터를 할 수 있는 내공이 생길 때까지 나를 기다려준 것 같다. 나에겐 큰 선물이다.
- 말했듯 당초 김주안 역할로 캐스팅됐다가 곽진배로 역할이 바뀌게 됐다.
▲ 처음엔 내가 곽진배가 됐다고 해서 놀랐다. '나한테 주인공을? 영화가 투자가 정말 안됐나 보다'라고까지 생각했었다(웃음). 사실 영화가 제작을 기다리는 기간 동안 지금의 감독님은 아니지만, 당시 감독님한테 '저 곽진배 하는 거에요?' 이렇게 농담삼아 이야기하곤 했었다. 진배라는 캐릭터 매력 있지 않나. 아마 배우들이 다들 부러워할 캐릭터다. 깡패인데 사람답고 남자인 척하면서 센데 아파 보이기도 하고 약해 보이기도 하고. 그리고 심지어 깡패가 춤도 춘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김갑세를 만나기 전, 춤을 추는 장면이 있었다(웃음). 배우들이 이렇게 두 가지, 세 가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를 좋아한다. 정말 나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

- 입에 달라붙는 광주 사투리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 현장에 광주분이 있었는데 그분하고 자주 술을 마시면서 조그만 소스들이나 토씨 하나까지 다 배우고 신경을 썼다. 그런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 배우들 간의 호흡은 어땠나.
▲ 다들 정말 친했다. 나를 포함한 수호파 멤버들이 촬영분량이 없는 날에도 현장에 놀러 가고 그랬다. 현장이 정말 편했다. 그리고 스태프들이 힘들 때 우리밖에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우리가 회식도 주도하고 그랬다. 스태프들하고도 술을 되게 많이 먹었다.

- 이번 영화로 여성팬을 다수 확보할 것 같다.
▲ 지금까지는 성인 남성팬이 많았다. 그리고 '마더'를 찍었을 땐 성인 여성팬이 생겼다. 이번에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까지는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웃음).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들은 아직까지 '진구가 왜 좋아' 할 나이지만 고등학교 2학년 정도 되면 진구라는 아저씨에 대한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웃음).
- 연기에 물이 올랐다.
▲ 내가 할 수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시켜주신 것뿐이다. 만약 대본이 무겁게만 쓰여 있어서 진배가 냉철한 인간으로 나왔다면 그런 말을 못 들었을 것이다. 여러 가지 매력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만나게 돼 운이 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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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