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할까 침묵할까.
KIA는 지난 2001년 7월 해태를 인수해 출범해 정확하게 12년을 보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11년 반이라고 할 수 있다. 12년 동안 우승은 2009년 단 한번이었다. 투수진이 안정되지 못했거나 중심타선의 힘이 없었다. 그 가운데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막강한 소방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해태 막판 혜성처럼 떠올랐던 임창용 이후에 수호신이라고 일컬을만한 소방수는 없었다. 임창용이 99시즌을 마치고 삼성으로 이적한 이후 간판 소방수는 나타나지 않았고 공교롭게도 우승과 인연이 멀어졌다. 지난 2009년 12년만에 우승한 것도 방어율 0.53과 22세이브(10홀드)를 따낸 유동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2000년대 다른 팀을 보더라도 쉽게 알 수있다. 2000년대 초반 현대가 주름을 잡았고 SK에 이어 삼성이 프로야구판을 호령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강한 소방수가 있었다. 현대는 조용준 등 소방수를 여러명 키웠다. SK는 정대현(롯데 이적), 정우람 등이 맹위를 떨쳤다. 최강 삼성은 '끝판대장' 오승환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다.
한 명이 있기는 했다. 7억팔 투수 한기주였다. 2006년 고졸 입단과 함께 팀을 4강에 올려놓은 주역이었다. 그때는 롱릴리프형 투수였다. 툭하면 마운드에 올라가 후반기 역전 4강을 성사시켰다. 2007년부터 전문 소방수로 변신해 25세이브를 따냈고 2008년에도 26세이브를 올려 줏가를 높였다.
그런데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소방수는 아니었다. 계속되는 팔꿈치 통증으로 휴식이 필요했다. 가끔씩 나오는 블론세이브, 특히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도 부진을 겪었다. 그래서인지 한기주는 까다로운 볼을 던지지만 공포감이 없는 소방수였다. 이후 팔꿈치 수술과 두 번에 걸친 오른손가락 중지 수술로 4년째 활약도는 미미했다.
한기주는 지난 11월 수술을 받고 재활훈련을 펼치고 있다. 그 역시도 4년째 계속되는 재활에 신물이 났을 것이다. 그래도 참고 꾸준히 재활운동을 소화하면서 다음을 기약하고 있다. 내년 1월 중순께나 볼을 만질 것으로 보이자만 그의 복귀시계는 아직은 멈춰있다. 팔꿈치에 이어 손가락 문제까지 모든 부상 문제를 말끔히 해소했다는 점이 유일한 희망이다.
선동렬 감독에게도 그의 재기는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아직도 2013 소방수를 놓고 뚜렷한 답이 없다. 김진우와 소사를 놓고 저울질하지만 막상 선발진의 구멍이 생긴다는 점에서 아랫돌 빼서 웃돌 막기가 될 수 있다. 적어도 한기주가 부상을 딛고 시즌 중반에 합류한다는 가능성만 있더라도 한결 여유가 생긴다. 과연 한기주는 2013 응답할 것인가.
sunn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