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외국인 선수제도 도입 이래 마무리 투수들도 제법 한국 땅을 많이 밟았다. 그러나 다음 시즌 재계약에 성공한 예는 두 차례 정도에 불과하다. 올 시즌에는 외국인 마무리로 한 시즌 최다 세이브를 올린 투수의 재계약 여부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는 외국인 마무리에게 그리 따뜻한 곳은 아니다.
두산은 다음 시즌 외국인 선수 인선을 앞두고 올 시즌 57경기 4승 4패 35세이브(2위) 평균자책점 1.79로 활약한 마무리 스캇 프록터(35) 대신 좌완 선발 혹은 좀 더 안정감 있는 마무리 투수를 찾는 중이다. 프록터는 피안타율 2할1푼1리에 이닝 당 주자 출루 허용률(WHIP) 1.16, 블론세이브 최다 1위(7개)로 다소 불안감을 비췄다.
최고 156km의 광속구는 물론 자신이 손수 제작에 참여한 팀복을 선수단에게 선사하는 등 야구 내외적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준 프록터다. 동료 김현수도 “프록터가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기뻤다. 마리아노 리베라의 앞을 지키던 뉴욕 양키스의 프록터가 내 동료라니”라며 기뻐했을 정도. 그러나 첫 시즌을 마친 후 두산은 프록터를 보류선수 명단에 넣었으나 재계약 방침 대신 다른 외국인 투수 후보를 둘러보는 중이다. 프록터는 포스트시즌에서 주전력에 제외된 것에 대해 상심하기도 했으나 두산과의 재계약을 바라는 마음으로 귀국했던 바 있다.

사실 외국인 선수제 도입 이래 마무리 투수는 시즌을 마치고 제대로 환영받지 못했다. 외국인 투수로는 유일한 세이브 타이틀 홀더였던 2009년 롯데의 존 애킨스(26세이브, 공동 1위)도 3.83의 평균자책점과 이닝 당 주자 출루 허용률(WHIP) 1.50의 불안한 투구 내용으로 재계약에 실패했다.
2004년 12세이브를 올린 뒤 구위를 인정받아 재계약한 SK의 호세 카브레라나 2008~2009년 한화에서 활약한 좌완 마무리 브래드 토마스 정도가 재신임 마무리다. 2002년 KIA에서 14세이브를 올렸던 다니엘 리오스의 경우는 전반기 마무리였지 후반기에는 선발로 뛰어 재계약에 성공한 투수다.
일단 외국인 마무리를 기용하는 팀은 투수의 압도적인 구위에 매료되어 뒷문을 맡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파이어볼러의 경우는 다양한 변화구보다 직구 위주 투구로 타자를 압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타자들의 노림수는 직구, 그리고 실투에 집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광속구에 제구까지 완벽하게 갖춘 마무리 투수라면 냉정히 봤을 때 메이저리그에 있지 한국 무대에서 오랫동안 뛸 이유가 없다.
언젠가 떠날 수 있는 외국인 투수가 마무리로 뛴다는 것도 팀과 팬에게 감점 요인이 될 수 있다. 오승환(삼성)이 오랫동안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역대 최다 기록인 249세이브를 올리며 팬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삼성에서 데뷔해 실력을 키우고 커리어를 쌓은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점도 크다. 세이브 부문 2,3위인 ‘노송’ 김용수(전 LG, 227세이브), ‘대성불패’ 구대성(전 한화, 시드니 블루삭스, 214세이브)도 한국 무대에서는 원 팀 프랜차이즈 스타였고 올 시즌 초반 재활을 병행하며 26세이브를 올린 봉중근(LG)도 팀의 프랜차이즈 에이스다.
터줏대감이 뒷문을 맡을 경우 동료와 팬들은 블론세이브가 나오더라도 “다음에는 잘 해주겠지”라는 기대감을 갖고 지켜본다. 그러나 이전부터 유대감을 쌓지 못한 외국인 마무리의 블론세이브라면 다음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당장의 아쉬움과 분노가 더 큰 것이 사실이다. 이미 6월 평균자책점 5.40으로 불안감을 비췄던 프록터의 경우 9월초 이틀 연속 블론세이브와 함께 팀 내 신뢰를 잃고 말았다.
프록터는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더욱 좋은 선수이자 사람이었다. 때로는 과하게 열정적인 감도 있기는 했으나 국내 중간 계투들의 혹사 전례와 관련해 이야기해주자 “꾸준한 자기 관리는 물론이고 ‘이 날만 잘 던지겠다’라는 것이 아니라 다음, 그 다음 경기에서 어떻게 힘을 쏟고 쉴 때 어떻게 힘을 비축하는 지 선수가 먼저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한국 투수들도 과부하에 따른 부상 위험에서 좀 더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라며 조언도 아끼지 않았던 투수다. 유쾌하면서도 진지함과 신념을 갖춘 투수 프록터. 그러나 그의 재계약 신호등은 노란 불로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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