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흥행의 30대 트로이카 퀸은 하지원(34) 손예진(30) 김하늘(34)이다. 월드스타급 전지현은 일단 번외로 하자.
하지원은 ‘한국의 안젤리나 졸리’라는 별명답게 액션을 거뜬하게 소화해내는가 하면(영화 ‘7광구’), 멜러(드라마 ‘더 킹 투 하츠’)에서도 매력을 충분하게 뿜어낸다.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개인의 취향’에서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의 귀엽고 섹시한 매력을 뿜어냈던 손예진은 오는 25일 개봉될 블록버스터 영화 ‘타워’에서 하지원의 아성마저 위협할 전망이다.
영화 ‘그녀를 믿지 마세요’의 미워할 수 없는 악녀 캐릭터가 가장 잘 어울리는 김하늘은 얼마전 종영된 드라마 ‘신사의 품격’을 통해 ‘로코 여왕’ 자리를 확인시켜줬다. 그런데 이 세명의 ‘로코 여왕’들이 바짝 긴장해야 할 것 같다. 오는 19일 개봉되는 영화 ‘반창꼬’의 여주인공 미수 역을 맡은 한효주(25)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지금까지 한효주는 드라마 ‘동이’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속의 단아하고 청순하며 얌전해서 정적인 이미지를 일관해왔다. 그래서일까? ‘광해’가 10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빅히트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이병헌을 비롯해 빛나는 조연 류승룡 김인권 등만 돋보였을 뿐 정작 ‘넘버 2’의 위치였던 중전 역의 한효주는 그리 튀지 못했다.
그런데 ‘반창꼬’는 다르다. 고수와 한효주를 투톱으로 내세운 정통 멜러라서가 아니다. 한효주는 단연 남자 주인공 고수를 뛰어넘는 매력과 임팩트를 보여준다. 외과의사 미수는 실수로 한 여자 환자를 뇌사상태에 빠뜨리고 이에 그녀의 남편의 분노를 사 고소를 당해 의사 직이 박탈될 위험에 처한다.
119 구조대원 강일(고수)은 이 응급환자를 병원에 이송하는 과정에서 흥분한 남편에게 폭행을 당한다. 미수는 이 구사일생의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으로 강일을 자극해 남편을 고소하게 만들어 폭력성을 부각시켜 소송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목적으로 강일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그녀는 119 구조대 의용대원에 자원해 강일 옆에 찰싹 붙는다.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정작 아내를 구하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보낸 트라우마와 아내에 대한 그리움에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는 강일에게 미수의 접근은 성가신 스토킹일 뿐이고 나름대로 매력적인 미수지만 그에게는 ‘미친 여자’일 뿐이다.
처음에는 불순한 목적을 갖고 강일을 졸졸 따라다닌 미수지만 그의 내면에 담긴 상처에 연민의 정을 느끼고 그게 진정한 사랑으로 변해간다. 매사에 제 멋대로 말하고 행동하며 때로는 거칠기까지 한 천방지축의 미수에게도 나름의 상처는 있다. 그래서 일부러 거칠게 행동했던 것이었지만 그녀는 강일의 그림자 속에 들어가면서부터 동병상련의 연대감을 갖고 어느새 진심으로 그를 사랑한다.
이렇게 복잡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한효주는 스물다섯이라는 나이가 무색하리만치 천연덕스럽고 빛난다. 2010년 MBC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했다는 경력이 의외가 아니라는 공감을 주는 그녀의 뛰어난 연기력은 미수라는 캐릭터를 환하게 빛을 발하게 만든다.
미수가 의용대원이 되고 회식을 제안해 구조대팀과 회식을 한다. 그녀는 귀찮아 하는 강일 옆에 바짝 붙어 소줏잔을 입에 털어넣으며 집적댄다. 강일이 그런 그녀를 냉대하자 미수는 ‘이봐요. 그쪽이 뭔가 단단히 착각하는 모양인데 내가 이러는 게 그쪽이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 거야’라고 아주 당당하게 떠들어댄다. 미수라는 캐릭터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뻔뻔스러운 미수지만 사실은 한 없이 여리고 수줍음 많은 여자다. 강일을 끌어들이기 위해 한강다리 위에서 가짜 자살소동을 벌이다가 치마 속이 드러나게 되자 자신을 구하려는 강일에게 ‘쳐다보지 말라’고 목숨이 경각에 달한 위기 상황 속에서도 여자로서의 체면을 지키려 애쓴다.
천신만고 끝에 강일의 마음을 여는데 성공한 미수는 그의 차 안에서 ‘바다가 보고 싶다’고 말한다. 차를 달려 강원도 바닷가에 도착한 두 사람은 술을 마시고 콘도에서 잠을 잔다.
다음날 아침 미수는 쑥스럽지도 않게 아주 당당하게 말한다. ‘아, 뽀뽀 한 번 못해보고 그냥 가네’라고. 그러자 강일은 마음을 오롯이 열고 ‘할까? 뽀뽀’라고 그녀의 입술을 받아들인다. 청아한 외모와 달리 털털한 캐릭터를 처음으로 보여주는 한효주는 이렇게 청순을 벗고 ‘유쾌 상쾌 통쾌’의 이미지를 갈아입고서 연기생활에 커다란 터닝포인트를 보여준다.
‘반창꼬’는 소방대원들의 활약과 애환을 제외하면 전형적인 로맨틱코미디의 형식을 보여준다.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나서 인연을 맺고 그게 사랑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의 트러블을 조금 보여준 뒤 비로소 연인으로 이뤄지지만 갈등요소가 생김으로써 둘 사이에 위기가 닥쳐 거의 헤어질 지경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극적인 반전의 조합이 끼어들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뜨겁게 사랑한다는 로코의 전형을 틀로 했다.
그런데 이 기승전결의 원인과 연결이 다소 엉성하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언론시사회에서 큰 웃음을 주며 박수갈채를 받았다. 한 마디로 재미있다는 뜻이고 두 마디로 한효주의 연기력과 매력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라는 의미다.
고수는 이미 드라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영화 ‘초능력자’와 ‘고지전’으로 보여줄 것을 다 보여준 바 있다. ‘반창꼬’의 강일은 고수에게 있어서 그리 새로울 게 없는 캐릭터이면서 대중에게 그리 낯설지 않은 연기력이다.
하지만 한효주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아직은 연기력 논란에 휩싸여야할 젊은 나이에, 눈부신 미녀들이 군웅할거하는 여배우계에서 그녀는 캐릭터를 분석하고 소화해내는 탁월한 표현력으로 당당하게 정상급 연기파 여배우들 사이에 파고들고 있다.
한 가지 옥에 티는 고수와 한효주가 같은 소속사 배우라는 사실. 이렇게 힘있는 기획사가 캐스팅에서 칼자루를 쥐고 흔든다면 실력은 갖췄으되 지명도가 뒤떨어지는 배우 혹은 그런 기획사들에게 그만큼 기회가 줄어든다는 의미다.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