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갈 수도 있었지만 과감하게 선택을 했고 시청자들은 응답했다. 달라진 사회상과 세태를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한때 ‘닥터진’, ‘옥탑방 왕세자’, ‘신의’ 등 판타지 요소인 시공간 여행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봇물 터지듯 나왔다면 이제 사회문제에 손을 댄 드라마들이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교권추락과 학교폭력으로 얼룩진 2012년 학교를 그린 KBS 2TV 월화드라마 ‘학교 2013’과 성폭행 피해자와 가족들의 상처 치유 과정을 간접적으로 다룬 MBC 수목드라마 ‘보고싶다’, 88만원 세대의 고달픈 사회생활 적응기를 담은 SBS ‘청담동 앨리스’가 주인공이다.

우선 ‘학교 2013’은 뉴스에서 흔히 접했던 무너진 공교육의 실태를 고스란히 그리고 있다. 수업시간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봐도 학생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교사가 제지할 방법이 없다. 심지어 일진으로 불리는 문제아 오정호(곽정욱 분)는 여교사 정인재(장나라 분)의 손목을 잡아채며 욕설을 내뱉는다.
인재는 교사로서 자존심보다는 순간적으로 겁을 먹은 자신의 모습에 절망한다. 학교폭력은 더욱 비극적이다. 정호는 지능이 떨어지는 한영우(김창환 분)를 지속적으로 때리고 돈을 빼앗고 있다. 다른 학생들은 영우를 불쌍하게 여기면서도 이를 방관한다. ‘학교 2013’이 그리는 학교는 더 이상 학생들이 꿈을 키워가는 교육의 산실이 아니다.
‘보고싶다’ 속 현실은 더욱 씁쓸하다. 성폭행 피해자 이수연(윤은혜 분)과 가족들의 깊고 쓰라린 상처에 비해 성폭행범 강상득(박선우 분)이 받는 법의 심판은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하다. 이 드라마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피해자와 그의 가족들에게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반문한다.
가슴이 저미는 사랑 이야기를 할 줄 알았던 ‘보고싶다’는 단순한 정통멜로 드라마의 범주에서 벗어나 우리사회의 어두운 면을 헤집어놓는다. 성폭행 문제는 듣고 싶고 보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피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신 제작진은 성폭행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는 까닭에 자극적인 연출을 지양한 채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청담동 앨리스’는 발랄한 로맨스 드라마를 추구하는 한편 88만원 세대의 대표주자인 한세경(문근영 분)을 통해 취업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20대의 이야기를 한다. 세경은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해도 결국은 계약직으로 내몰린다.
이런 세경의 절망적인 현실은 우리사회 상당수의 20대 청춘의 삶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듯한 인상을 준다. 행복한 내일을 꿈꾸는 대신에 아등바등 살면서 오늘을 걱정하는 88만원 세대의 아픔은 이 드라마를 지배하는 가장 큰 이야기이다.
우리는 달라진 학교에 씁쓸해하고 성폭행범들이 판치는 세상에 분노하며 미래가 없는 현실에 불안해 한다. 매일 드라마보다 더욱 드라마 같은 현실과 마주한다. 그리고 드라마 제작진은 이런 드라마틱한 삶을 살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다시 한번 현실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밝고 긍정적인 드라마가 어느새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된 현실이 더욱 씁쓸하게 여겨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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