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야구선거철, 투표자의 마음을 흔드는 변수들(상)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2.12.13 13: 27

시즌 말미에 치러지는 정규리그 MVP 투표를 앞두고 종종 논쟁거리로 떠오르곤 했던 후보자의 팀 성적 연관성에 관한 문제는 과거 언제나 뜨거운 감자였다.
개인기록도 중요하지만 팀 성적 성취도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쪽과 어디까지나 순수한 개인 성적만으로 MVP를 선정해야 한다는 쪽의 팽팽한 대립이 그랬고, 여기에 경쟁자로 부각된 선수들의 포스트시즌 활약상이 더해진 해에는 그 논란의 복잡성은 더욱 깊어지곤 했었다.
2006년 각각 투,타 부문 다관왕을 거머쥐었던 류현진(3관왕, 당시 한화)과 이대호(4관왕, 당시 롯데)의 MVP 대결에서 소속 팀 한화를 2위로 이끌었던 류현진이 시즌 7위에 그친 롯데의 이대호를 47-35로 꺾고 신인왕이라는 핸디캡에도 최고의 자리에 비교적 수월하게 올랐던 일.

1995년 같은 2관왕의 대결에서 야생마 이상훈(LG, 다승과 승률 1위)이 선발20승을 거두었지만 투표 직전에 벌어진 플레이오프에서의 부진이 치명타가 되어 잠실 홈런왕 김상호(OB, 홈런과 타점 1위)에게 시즌 MVP를 무기력하게 헌납(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 사이에 MVP 투표)하고 만 일.
2004년 다승(17승, 3인 공동수상)과 승률부문 2관왕이었던 배영수(삼성)가 한국시리즈 10 이닝 노히트노런의 눈부신 후광을 등에 업고 타격 3관왕(타격, 출루율, 장타율)이었던 클리프 브룸바(현대)를 84-13 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정규리그 MVP를 차지했던 일 등, 뒤져보면 기록 외의 주변 요인들이 주인공을 결정짓는 투표자들의 마음을 이래저래 뒤흔든 역사 속 사례들은 적지 않은 편이다.
이에 KBO는 개인상의 성격이 짙은 정규리그 MVP의 순수성을 지켜내는 동시에 이러저러한 논란들을 잠식시키고자 2012 시즌부터 정규리그 MVP와 최우수 신인선수 투표시기를 종전 포스트시즌 종료 후에서 정규리그 종료 후로 앞당겨 치르기로 지난 봄 결정을 내렸고, 2012 시즌 그 첫 수상자는 넥센의 박병호가 되었다.
단일 시즌으로 정규리그를 치르기 시작한 1989년 이후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팀에서 시즌 MVP가 탄생된 것은 2005년 롯데의 손민한 이후 처음이었다.
이번 박병호의 경우는 특별히 돌출된 경쟁자가 없어 정규리그 성적 외의 외부요인이 투표에 영향을 미치거나 개입될 여지가 전혀 없었지만, 이러한 시즌 MVP 투표시기 조정은 향후 정규리그 MVP 선정에 있어 잡음을 상당부분 덜어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야기를 뻗어 정규리그 MVP를 야구의 대선이라고 한다면 다수의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에 해당되는 것은 아마도 골든 글러브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
2012년 겨울, 대통령 선거일(12월 19일)이 임박해오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대선후보들의 막바지 전력질주가 한창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 요즘, 일부 포지션 별 골든 글러브 수상자들의 자격시비를 두고 야구팬들의 거친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다.
익히 알다시피 한국프로야구의 골든 글러브는 메이저리그 골든 글러브와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수상자를 고르는 기준과 시야에 있어 일정부분 차이를 보인다. 수비율만 가지고 선정하는 방식이 아닌, 공격부문을 포함한 종합적인 통계수치가 우월한 쪽에 좀더 무게를 싣고 있는 것이 우리의 선정 방식이다.
따라서 투수는 투수부문 성적이, 타자는 개개인의 시즌 타격관련 성적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된다. 포지션 별 후보자를 추리는 작업도 일정 기준 이상의 성적을 잣대로 삼아 걸러진다. 그런데 왜 결과를 놓고 파열음이 나는 것일까?
여기에는 투표인단의 다양하고도 미묘한 심리가 외풍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드러나고 보여지는 성적 외의 그 무엇. 투표 주체가 기계가 아닌 사람이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고민과 심리적 혼돈.
본인의 이름이 호명되자 스스로도 적잖이 당황한 모습을 보였던 2012 골든 글러브 2루수 부문 수상자 서건창(넥센)이 기록상 도루를 제외한 어느 것 하나 앞선 것이 없었음에도 지난해 수상자였던 안치홍(KIA)을 밀어낼 수 있었던 원인은 신인왕이라는 프리미엄도 작용을 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스토리 텔링, 즉 이야기였다.
과거 프로구단으로부터 방출을 당하고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쳐야 했음에도 신고선수라는 야구선수로서의 마지막 끈을 동아줄 삼아 굳건하게 일어선 인간승리 이야기에 투표인단의 마음이 흔들렸던 것이다.
또한 지난 2009년 골든 글러브 유격수 부문에서 홈런과 타점, 득점 등 공격 전반적으로 기록상 월등한 성적을 보이고도 손시헌(두산)에게 122-159로 밀려 분루를 삼켜야 했던 강정호(넥센)의 경우는 생소한 이름이 갖는 인지도에서 뒤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1년 뒤인 2010년 손시헌에 역으로 설욕해낸 강정호는 이후 장타력을 갖춘 대형 유격수로 이미지를 쌓아갔고 지금은 오히려 굳건한 인지도가 표를 얻는데 있어 다른 유격수들에게 벽으로 작용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가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경기가 주는 불확실성과 이변 때문이다. 그러나 수상자를 고르는 투표에서만큼은 이변을 극도로 싫어한다. 전력이 처지는 팀이 강자를 이겨내는 것에는 큰 희열과 박수를 보내지만 성적이 떨어지는 선수가 보다 나은 성적을 가진 선수를 누르는 현상에는 날 선 비판을 쏟아낸다. 치열한 전쟁터와 전쟁이 끝나고 논공행상을 논하는 자리는 완전 다른 세상이다.
한편 2012 골든 글러브의 또 하나의 이변으로 평가 받는 투수부문 브랜든 나이트(넥센)의 고배를 놓고도 여러 의견들이 분출되고 있는데, 이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한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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