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더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스스로 “한창 좋을 때는 알려주고 던져도 안 맞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 슬라이더가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성적도, 자신감도 떨어졌다. 윤길현(29, SK)이 돌아보는 2012년이다.
2007년과 2008년 2년간 32홀드를 올리며 SK 중간계투진의 핵심으로 활약한 윤길현이었다. 그러나 군 복무 이후 첫 시즌이었던 올해는 부진했다. 5경기에서 3⅓이닝 밖에 소화하지 못했으니 사실상 팬들 앞에 제대로 된 복귀 신고조차 하지 못한 셈이었다. 좀처럼 구위가 올라오지 않아 대부분의 시간을 2군에서 보냈다. 화려한 복귀라는 목표는 수포로 돌아갔다.
윤길현은 “내 나름대로는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라고 담담히 2012년을 돌아봤다. 공백기 후 충분히 몸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너무 급했다는 뜻이다. “욕심이 많았다”라고도 했다. 빨리 1군에 올라가야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조급함과 욕심이 오히려 윤길현의 두 어깨를 짓눌렀다.

1군의 친한 동료들이 문학구장에서 휴식을 취할 때, 윤길현은 미국으로 날아갔다. 플로리다 마무리훈련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신진급 선수들이 주축이 된 훈련이었다. 자존심이 적잖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윤길현은 그 훈련에서 새 길을 찾았다. 미련 없이 버렸더니 다시 채워지는 것이 있었다.
윤길현은 “훈련 기간이 꽤 길었는데 뜻을 가지고 열심히 훈련했다.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더라. 캠프 막판에는 ‘더 던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라고 밝게 웃었다. 그러면서 “진지하게 훈련에 임했다. 힘들었지만 많은 것을 배웠던 시기”라고 전지훈련 성과를 총평했다. 이만수 SK 감독과 성준 투수코치를 비롯한 코칭스태프도 “윤길현이 투수 MVP 중 하나”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윤길현과 코칭스태프가 뽑는 가장 큰 성과는 슬라이더에 대한 의존도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윤길현은 “복귀 후 슬라이더 컨트롤이 잘 되지 않는 것을 느꼈다”며 변화의 이유를 밝혔다. 단조로운 구종, 단조로운 승부 유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슬라이더를 버렸다. 윤길현은 “캠프 때는 슬라이더를 거의 던지지 않았다. 10개 중 하나로 비율을 줄였다”라고 설명했다.
대신 몸쪽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윤길현은 “그 전까지는 이상하게 몸쪽 직구의 컨트롤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몸쪽만 계속 던졌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몸쪽 컨트롤이 되더라”라고 미소 지었다. 몸쪽 승부가 되자 커브나 다른 변화구도 더 큰 빛을 발했다. 힘든 캠프였지만 그 과정에서 분명 귀중한 보물을 찾은 윤길현이다.
윤길현은 이번 캠프를 두고 “내년 도약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단 목표는 군 입대 전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SK 마운드가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투수 엔트리를 보면 1군 자리가 빡빡하다. “SK는 2군 투수들도 좋다”라고 말한 윤길현도 이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좀 더 강해진 윤길현이라면 어려운 과제는 아니다. 팬들과 벤치의 기대도 크다. 이미 검증된 선수라는 측면에서 계산이 어려운 유망주들보다는 믿음이 있다. “동기인 안지만이 리그 최고의 중간계투요원으로 발돋움한 것을 보고 자극 받았다”라고 각오를 다진 윤길현이 2013년 비상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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