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지난 11일 MBC는 특보를 통해 ‘김재철 사장이 내년 상반기에 시청률 1위를 회복하지 못하면 그만둘 각오’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김 사장의 이 같은 발언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올초 MBC 노동조합이 김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한국 방송 사상 유례 없는 장기파업을 했고, 파업 철회 이후에도 간판 뉴스 프로그램인 ‘뉴스데스크’ 외에도 다수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낮은 시청률에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살벌한 폐지 칼바람이 불고 있는 작금의 현실 때문이다.

MBC는 지난 5일 월화시트콤 ‘엄마가 뭐길래’를, 8일에는 9년 장수 예능프로그램인 ‘놀러와’를, 11일에는 금요 퀴즈프로그램인 ‘최강 연승 퀴즈쇼 Q’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물론 이유는 낮은 시청률이다.
노조와 일부 시청자들의 빗발치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기 위해 버텼던 김 사장이 이런 초강수를 들고 나온 것은 그만큼 전체적으로 낮은 시청률에 의한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1위를 되찾겠다’는 의지도 중요하겠지만 그 전에 선결돼야 할 문제는 ‘왜’라는 올바르고 공정한 원인분석이다.
지상파 방송은 보도만 내보내는 게 아니라 드라마 오락 교양 등의 다양한 컨텐츠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즐거움 휴식 정보 등을 제공한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지상파 방송의 간판은 저녁뉴스다. 그게 지상파 방송의 ‘존재의 이유’고 ‘얼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때 1~2위를 다퉜던 MBC 저녁 9시의 ‘뉴스데스크’는 오랫동안 꼴찌에서 헤매고 있다. 오죽하면 지난달 5일부터 51년만에 저녁 8시로 시간대를 옮기는 초강수를 뒀을까? 경영진과 제작진의 고뇌가 충분히 느껴지는 대목이지만 시청자들로부터 동정심을 얻거나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뉴스데스크’는 시간대 변경 이후 시청률이 2% 포인트 정도 상승하며 성공적인 변화라는 자체평가를 얻어냈으나 이는 동 시간대의 SBS ‘8뉴스’ 시청률이 10% 초반대에서 안정을 찾은 것에 비교해보면 그리 박수칠 일이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선바람으로 인해 지상파 방송 3사의 저녁 뉴스 시청률이 나란히 상승했기 때문에 큰 변화가 아닌 것으로 풀이된다.
즉 단순한 수치의 변화는 긍정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내면의 의미는 별다른 발전이 없다는 뜻.
시간대 변경 전 ‘뉴스데스크’의 시청률은 5%대까지 곤두박질치며 24% 안팎의 시청률을 지켜온 KBS ‘9시 뉴스’와 비교도 할 수 없는 낯뜨거운 성적표를 쥐었다.
시간대 변경 후 내부적으로야 ‘공룡’인 ‘9시 뉴스’를 피해 ‘8시 뉴스’와의 보기 좋은 한판승부를 기대했겠지만 뚜껑을 열고 난 후의 결과는 역시 참담하다. ‘뉴스데스크’는 1~2% 포인트 상승해 7~8%대지만 ‘8시 뉴스’는 그보다 2배 가까이 높은 11~12%대다.
한참 ‘어린’데다가 민영방송이라는 SBS가 막상 맞장을 뜨고 보니 ‘넘사벽’이었던 것이다.
KBS와의 경쟁에서 밀린 점에 대해서는 변명할 여지가 있겠지만 SBS와의 대결에서 완패한 것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설상가상으로 ‘뉴스데스크’를 비롯한 각 뉴스에서 사고와 실수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그렇잖아도 편파방송이라는 비난 속에 잃은 신뢰감을 더욱 실추시키고 있는 상황.
‘뉴스데스크’는 지난달 5일 시간대 변경 후 첫방송 때 ‘경청코리아-대선후보에게 바란다’라는 제목의 시민 인터뷰에서 시민들을 ‘할아버지’ ‘할머니’ ‘환자’ 등의 자막으로 소개해 무성의의 끝판을 보여줬다. 또한 지난달 8일 ‘뉴스데스크’에서 배현진 아나운서는 미국의 아이폰 제조사 애플의 조세회피에 대한 ‘심층취재-먹튀의 귀재’를 전하던 중 “경제 불황으로 힘드시죠? 오늘은…”이라고 말하다가 순간 실수를 깨닫고 약 5초 정도 잠시 말을 잇지 못하는 사고를 내기도 했다.
지난달 11일은 하루 종일 사고의 연속이었다.
이날 오전 방송된 ‘서프라이즈’는 영화 ‘첨밀밀’의 주제곡을 부른 대만 출신 인기 가수 고 덩리준(등려군)을 소개하면서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된 지도를 사용해 시청자들에게 거센 항의를 받았는가 하면 ‘정오 뉴스’에서는 뉴스 내용과 전혀 다른 화면과 자막이 방송된 초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소액대출 희망자들을 와이브로 서비스에 가입하게 한 뒤 할부로 산 노트북을 되파는 등 속칭 ‘와이브로 깡’ 수법으로 이득을 챙긴 대리점 업주에 관한 소식을 전하는 과정에서 정작 화면에는 ‘경기침체 여파로 유흥업소 감소’라는 자막과 함께 유흥업소 자료화면이 나온 것.
이날 저녁 ‘뉴스데스크’에서 양승은 아나운서는 ‘시사만평’ 코너에서 “대통령 선거가 석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유력한 후보들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을 반장 선거에 빗대 비평합니다”라고 말했다. 한달여 남은 대선이 석달로 표현된 것도 황당하지만 이어서 나온 내용이 반장선거가 아닌 알까기 대회라는 점은 더욱 어이 없었다.
또한 19대 총선 당선자 30명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됐다는 내용을 소개하며 김근태 새누리당 의원 대신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사진이 나오는 무지의 실수를 연발했다.
지난달 16일에는 중국이 대북식량지원사업에 100만 달러를 기부한다는 소식을 전했는데 막상 자막에는 ‘100달러’라고 표기됐다.
올 한해 MBC는 간판 뉴스 등의 시청률 부진에 대해 변명할 여지가 있었다. 노조의 파업이 그것이다.
하지만 파업이 마무리된 지 한참 지났고 모든 상황이 잠잠하다. 각 제작관련자들은 묵묵히 자기 일에만 열중하면 된다. 한때 시청률 1위를 달리던 MBC다.
그러나 안정의 방패와 개혁의 칼날을 동시에 휘두르는 MBC에 발전과 희망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김 사장 이하 경영진의 잣대대로 시청률이 이를 강하게 웅변한다.
전술했다시피 MBC가 시청률 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확하게 ‘왜’를 분석하는 게 중요하다. 해답은 간단하다. 신뢰회복이 관건이다.
방송사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뉴스에서 이렇게 잦은 실수와 사고를 내는데다가 다수의 시청자들로부터 편파방송이라는 지적을 받는데 누가 MBC쪽으로 리모콘을 조작할 것이며 어쩌다가 그 채널에 걸리더라도 리모콘에 손을 안 대고 눈을 맞출 것인가? TV는 때로는 바보상자일지 몰라도 시청자 전부가 바보가 아니다. 코흘리개 아이들도 시청자지만 올바른 시각을 가진 지식인도,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들도 TV를 본다.
과연 시청률은 공영방송이 지켜야할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고 진리일까? 그리고 시청률은 시청자들에게 양해도 없이 예능 프로그램을 하루 아침에 폐지시킨다고 되찾을 수 있을까?
방송은 뉴스가 됐든 예능이 됐든 시청자와의 약속이다. 드라마의 횟수를 지켜야하듯 사전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닌, 방송사의 일방적인 폐지는 시청자를 무시하는 전횡이다.
시청률은 아등바등한다고 올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경영진은 그 누구보다 더 잘 알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젊은 시절 방송 일선에서 제작경험을 쌓은 백전노장이다.
올해 MBC는 전체적인 부진 속에서도 드라마 ‘해를 품은 달’로 최고의 시청률을 올렸고 현재 월화드라마 ‘마의’로 17%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내달리며 ‘드라마의 왕국’의 명맥을 잇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다르다. 지금은 모두 외주제작이다. 즉 시청자들은 MBC이기에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 드라마 자체의 재미와 완성도를 따른 것이다.
하지만 뉴스는 자체제작이다. 현재까지 진행된 시청률의 추이대로라면, 정확히 시청자의 판단에 따른다면 내년 상반기에 MBC가 시청률 1위를 탈환하는 게 결코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김 사장이 공약을 지킨다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뉴스의 정확성이 담보되지 않는 한 채널에 대한 신뢰도는 확보되지 않는다. 공영이거나 거의 공영에 가까운 KBS나 MBC에 비해 오로지 ‘수익’이 최대 목표인 SBS조차 보도와 공익성 다큐멘터리 등에 각별한 공을 쏟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보도의 공정성과 회사의 공익사업성이 해당 방송사에 대한 시청자의 신뢰도를 높여주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시청률로 연결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