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문근영과 박시후가 이루는 상반된 연기 조합이 SBS 주말드라마 ‘청담동 앨리스’(극본 김지운 김진희, 연출 조수원)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데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문근영은 ‘청담동 앨리스’에서 88만 원 세대를 대표하는 의류회사 인턴 직원 한세경 역을 맡았다. 하우스푸어 가정의 맏딸로 집안 형편의 어려움 때문에 남자친구까지 떠나보낸 역사를 안은 세경은 “노력이 나를 만든다”는 평생의 신조를 버리고 결혼으로 인생 역전을 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눈물나는 상류사회 진입을 꿈꾸는 인물.
이 과정에서 ‘스폰서’를 운운하는 ‘청담동 마담뚜’ 타미홍(김지석)에게 간장세례를 당하는 등 모멸감에 굵은 눈물을 흘리지만, “분노와 좌절감”을 동력 삼아 청담동에 입성하겠다며 인생을 건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으로, ‘청담동 앨리스’가 동시대의 아픔과 고민의 토대 위에 만들어진 작품임을 실감케 한다.

반면, 박시후의 경우 일명 ‘깨방정’ 스타일의 연기로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극의 흐름에 완급을 조절한다. 박시후가 연기하는 차승조는 백화점 재벌의 아들이지만, 결혼 문제로 아버지와 갈등을 일으켜 집을 박차고 나온 뒤 자수성가한 인물. 세계적인 명품 회사의 최연소 CEO로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꿰뚫는 냉철한 시각을 지녔지만, 실패한 첫사랑의 트라우마에 갇혀 이상적 결혼과 연애의 환상에 사로잡힌 모습을 보인다.
조건 없는 순수한 사랑은 없다는 좌절감에 빠져있다 세경을 만난 뒤 이를 회복한 승조는 자신만의 색안경을 끼고 세경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동화 속 왕자와 공주로 만들며 아직도 자라지 못한 아이 같은 모습으로 코믹한 순간을 수차례 탄생시킨다.
여기에 충청도 태생으로 설정돼 있는 탓에 급할 때면 튀어나오는 구수한 사투리와, 좋아하는 여자에 대한 마음을 감추지 못해 자기도 모르게 베어져 나오는 미소를 감추지 못하는 모습에선 시청자마저 저절로 웃음 짓게 하며 극의 분위기를 띄운다.
‘청담동 앨리스’는 경제적으로 점차 심화되는 양극화의 비극에 신음하는 동시대인들의 모습을 그리는 작품이지만, 문근영과 박시후의 연기 조합은 자칫 부담스러울 수 있는 드라마의 전개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양쪽으로 팽팽히 잡아당기며 시청자를 작품에 한 발짝 다가서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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