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야구선거철, 투표자의 마음을 흔드는 변수들(하)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2.12.17 11: 03

한국프로야구가 외국인 선수에게 처음 문호를 개방한 시즌은 1998년이었다. 자국 선수들의 설 자리가 줄어들 것을 알면서도 외국인 선수제도의 채택을 결정한 것은 뛰어난 기량과 파워를 갖춘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상을 통해 팬들에게 보다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이를 기반으로 리그의 흥행을 한층 끌어올리기 위함이었다.
단발적으로는 각 팀의 취약한 포지션 강화 효과에 대한 기대도 물론 있었겠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이 제도가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바는 실력이 뛰어난 상대들과의 직접 겨룸을 통한 한국선수들의 국제 경쟁력 강화가 가장 큰 목적이었다.
이 제도가 도입되었을 당시 우리는 이들을 흔히 이렇게 불렀다. ‘용병(傭兵)’이라고. 돈이나 대가를 지불하고 싸움에 필요해서 불러들인 병사를 뜻하는 단어다. 그러나 군사용어적인 색채가 너무 강하고 거칠어 지금은 의식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외국인 선수라는 말로 순화해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 표현해도 신분상 이방인일 수 밖에 없는 이들 외국인 선수에 대한 시각과 온도 차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비단 프로야구뿐만 아니라 외국인 선수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여타 프로스포츠 종목을 봐도 마찬가지다.
잠깐 야구를 벗어나 프로농구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도록 한다. 농구라는 종목은 뛰어난 외국인 선수 한 두 명이 들어오면 전력이 확 달라지는 특성을 갖고 있다. 경기 정원이 5명의 소수인원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말이 한 두 명이지 외국인 선수가 실제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을 훨씬 웃돈다.
그런 관계로 프로농구의 외국인 선수 규정은 변동이 아주 잦은 편이다. 특정 팀이 잘 고른 선수 하나로 오랜 동안 독재적인 지위를 누리는 것을 막고자 전력균형을 맞춘다는 명분 하에 외국인 선수 보유권한을 인위적으로 이리저리 조정해왔다.
어느 해인가는 과거 자유계약제로 들어왔던 선수들의 재 취업을 전면 금지했는가 하면, 일정 년도를 기한으로 정해 무조건 데리고 있던 외국인 선수를 모두 드래프트 시장에 내놓도록 만들었다. 또한 국적은 대한민국이지만 사실상 외국인 선수급의 기량을 갖고 있는 귀화선수들도 한 팀 최대 보유기간을 3년으로 묶어 리그내의 모든 팀들이 보유기회를 골고루 나누어 가질 수 있도록 조정을 가하기도 했다.
그 결과 기량이 우수한 외국인 선수들을 울며 겨자 먹기로 내놓아야 했던 팀들의 서열은 하루아침에 곤두박질쳐야 했고, 리그 팀 순위는 뒤집어 놓은 모래시계처럼 강자들을 우수수 아래 자리로 끌어내렸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수년간 고착화되기 쉬운 팀 전력 불균형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데 도움을 주긴 했지만, 그러나 한가지 간과된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프로리그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팬들의 외국인 선수에 대한 인식과 마음을 깊이 헤아려 반영해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프로야구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외국인 선수들을 국내선수 못지 않게 진심으로 좋아하고 성원한다. 돈을 들여 타지에서 불러온 용병이지만 팀의 일원으로 확정된 순간, 팬들은 그를 싸움 청부기술자 ‘용병’이 아닌 또 한 명의 ‘선수’로서 받아들인다. 여기에 뛰어난 성적과 원만한 인성까지 갖추었다면 그에 대한 애정은 전폭적이 된다.
2012 골든 글러브 투수부문 수상이 유력해 보였던 평균자책점 1위(2.20) 브랜든 나이트(넥센)가 불과 7표차(128-121)로 다승 1위(17승) 장원삼(삼성)에게 밀린 것을 두고 여러 자성적 성격의 분석들이 뒤를 이었다. 장원삼이 올 시즌 거둔 성과를 놓고 보면 골든 글러브 수상자로 선정된 사실이 크게 이상할 것 없지만, 평균 자책점 등 나이트의 기록이 장원삼에 비해 월등한 것으로 믿고 있었던 터라 그 충격파가 좀더 컸던 것으로 보여진다.
올 시즌 나이트는 30경기에 등판해 무려 27번의 퀄리티 스타트(Q.S)를 기록했을 만큼 대단히 안정적인 한 해를 보냈다. 이에 비해 장원삼의 Q.S 비율(27경기에 14번)은 50%를 약간 넘어서는 수준. 시즌 투구이닝에서도 나이트는 208.2 이닝으로 리그 최다이자 유일의 200 이닝이상 투구기록 보유자였으며 또한 승률과 피안타율, 이닝당 출루허용률 등에서도 장원삼을 근소한 차로 앞서 있었다. 장원삼이 기록상 나이트를 앞선 부문은 1승차로 누른 다승부문(17-16)과 탈삼진(127-102) 정도. 그나마 장원삼의 손이 올라간 1승은 잠깐 던지고 챙긴 행운의 구원승이 하나 포함된 숫자였다.
그러나 나이트는 한국시리즈에서의 눈부신 호투(선발 2승)를 앞세운 장원삼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포스트 시즌에서의 성과와 활약여부는 과거 정규리그 MVP 선정이나 골든 글러브 선정에 있어 결정적인 터닝포인트로 작용해 왔다는 것쯤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장원삼의 수상은 책잡을 구석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런데 나이트의 경우에는 한가지가 더 얹혀졌다. 바로 외국인 선수라는 점 때문이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자세히 알려졌지만, 우리 역사 속에는 몇 번의 이러저러한 사유로 인한 골든 글러브 외국인 선수 탈락사가 새겨져 있다. 1998년 42홈런과 103타점을 쓸어 담으며 시즌 MVP에 오르고서도 정작 골든 글러브(1루수 부문)에서는 국민타자 이승엽(삼성)에게 물을 먹은 타이론 우즈(두산).
1999년 팀 우승과 함께 개인적으로 30홈런-30도루 클럽가입이라는 기록적 쾌거를 이룬 제이 데이비스(한화)의 외야수 부문 탈락 그리고 장타율과 출루율 1위에 오르며 36홈런(리그 2위) 102타점(리그 4위) 등의 뛰어난 기록을 수반하고서도 시즌 말미 그라운드 폭력사태 유발로 잔여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받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기회를 놓쳤던 펠릭스 호세(롯데) 등의 경우를 위시해, 돌아보면 아깝게 상을 놓친 외국인 선수 사례가 몇 차례 더 존재한다.
그런데 이러한 오래된 얘기 뒤에는 뽑아줘 봐야 시상식에 참석도 안 하는데 굳이 표를 줘야 하는가라는 자조 섞인 심리도 없지 않아 있었다고 한다.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비 시즌기간 자신의 가족이나 생활을 챙겨야 하는 사정이 있다는 것을 잘 알지만 막상 찍으려니 빛이 나지 않는 한 표가 될 것이 찜찜해 결국은 국내선수를 택하게 되었다라는 것이다. 이는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와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경기기술자로서 외국인 선수를 인식할 수 밖에 없었다는 얘기로 해석할 수 있겠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라는 말처럼 투표권을 행사할 때 아무래도 국내 선수에게 좀더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적어도 수상자 스스로가 미안해 할 만큼의 선택은 시상대에서 밀려난 사람은 물론, 상을 받는 사람 모두를 위하는 길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외국인 선수를 만나보는 것은 꿈 같은 일로 바뀌었다. 지난 2008년 9월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축하 리셉션장을 찾아 단상에 오르는 김경문 국가대표 감독을 향해 홀로 기립박수를 보내던 제리 로이스터(당시 롯데감독)의 모습처럼, 우리의 골든 글러브 식장에서 외국인 선수들이 수상자를 향해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또 그들이 축하를 받을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표심이 한결 외국인 선수를 부드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지만, 그들의 생활반경이 워낙 먼 까닭에 쉬운 일도 아니다.
외국인 선수제도가 없어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이런저런 상을 앞에 놓고 국내 선수와의 경합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점만은 잊지 말아야 하겠다.
 지금의 한국프로야구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고 야구월드컵으로 불리는 WBC 대회에서 두 번 모두 4강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1982년 프로야구의 태동이었지만, '1996년 도입 결정-1997년 드래프트 실시-1998년 본격 시행' 의 과정을 걸어온 외국인 선수 시장개방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그들이 한국프로야구 무대에 서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오늘의 영광과 현실은 불가능했을 그저 꿈이었을는지도 모른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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