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 커피의 기원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킬리만자로 커피는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커피로서 탄자니아에서 재배되고 있습니다.
탄자니아는 아라비카종의 원산지인 에티오피아와 가깝기 때문에 커피재배가 에티오피아에서 전파되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실은 아주 멀리 인도양에 있는 프랑스식민지 부르봉도(현재 프랑스해외현 리유니언도)에서 기독교 선교사들이 탄자니아로 가져오게 된 것이 킬리만자로 커피의 기원입니다.
부르봉도에는 18세기전반에 에티오피아산 커피가 예멘을 경유해서 소개되었고 거기에서 세계로 널리 퍼졌기 때문에 매우 먼 길을 돌아서 탄자니아로 도착한 것입니다.

킬리만자로
1893년 프랑스의 선교사들은 부르봉도에서 가져온 부르봉종을 킬리만자로 산록에 있는 Kilema촌에 건설한 교회의 뒷마당에 심었는데 이것이 킬리만자로 커피의 마더트리(mother tree)가 되었습니다. 현재 킬리만자로지역의 중심지는 Moshi라는 동네이지만 당시에는 Kilema가 중심지였기 때문에 교회도 거기에 건설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선교사들은 교회에 커피나무를 심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포교할 때 그 지역에 없는 신기한 식물을 교회주변에 심어서 그 지역 사람들이 흥미를 가져 교회에 모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일요일 예배하러 온 주민들에게는 그 식물을 맛보게 해주고 신자가 된 주민에게는 그 씨앗을 나눠 주었는데 이것이 포교활동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경제적인 자립을 촉진시키는 것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kilema church
이렇게 해서 상품화 된 것이 킬리만자로 커피이며, 이와 같이 기독교 포교와 함께 자라난 커피산지는 전세계에 몇 군데가 됩니다.
▲대량생산으로 변해버린 킬리만자로 커피
예전에 킬리만자로 커피는 Kilema주변 산의 사면에서 재배되는 것을 가리켰지만 어느 새 대량생산하기 쉬운 평지에 있는 Arusha에서 재배되는 것까지도 킬리만자로라고 자칭하게 되었습니다.
평지와 사면은 재배환경이 다르며 낮과 밤의 기온차이가 많은 산악지대에서 더 품질이 높은 커피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현재는 탄자니아에서 수확되는 커피 중 빅토리아 호수 서쪽에 있는 Bukoba에서 수확되는 카네호라종 로브스타를 제외한 모든 커피가 킬리만자로 커피라고 자칭하며 판매되고 있습니다.

mother tree
▲제뉴인(genuine) 킬리만자로 커피의 부활
‘진짜 킬리만자로를 부활시키고 싶다.’ 그런 강한 마음이 계속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킬리만자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인생에서 커피의 진수를 알지 못하고 끝나버리겠다. 진짜 킬리만자로 커피를 더 많은 커피 애호가에게 알려주고 싶다. 어떻게 하면 될까? 맞다! 처음에 커피를 심은 Kilema에 가면 부르봉도에서 태어난 부르봉종의 혈통을 지니고 있는 그 지역의 환경에 적합한 커피나무가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던 중 2006년 탄자니아를 방문했을 때 선교사가 처음에 심었던 커피나무가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놀라운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그리고 Moshi에 사는 커피 관계자 중 신뢰할 수 있는 분과 함께 제뉴인 킬리만자로 커피 부활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아프리카 지도
교회에 마더트리가 남아있지만 수확량은 아주 적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주변의 생산자를 한정하여 그 중에서도 품질이 높은 커피를 생산하는 농가의 커피만 모아서 2011년에 일본에서 판매했지만 그 해 제가 인정할 만한 품질의 커피는 60kg 짜리 봉투로 불과 30봉투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올드커피 팬분들이 오랜만에 추억의 킬리만자로를 마셨다고 아주 기뻐해주시고 그 30봉투도 눈 깜짝할 사이에 매진되었습니다.
올해도 품질이 우수한 킬리만자로 커피가 입하되었지만 수확량은 아주 적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생산자들과 함께 더욱 품질을 높이고 생산량도 서서히 늘려서 제뉴인 킬리만자로 커피를 널리 알려가겠습니다.
/가와시마 요시아키 osenlife@osen.co.kr
◆필자인 가와시마 요시아키는 세계적인 커피 전문가다. 일본 뿐만 아니라 커피에 조예가 깊은 많은 나라의 사람들은 그를 '환상의 커피 헌터' '커피계의 인디애나 존스'라는 존경어린 존칭을 붙여 부른다. 어떤 때는 중미의 밀림을, 아프리카의 고원을, 아랍의 황야를, 그리고 또 어떤 때는 대양에 떠 있는 섬들을, 깊은 정열에 자극을 받아 뛰어 다니던 그의 모습은 확실히 인디애나 존스를 연상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