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전우치는 16세기 조선 중기에 실존했던 인물이다. 송도(혹은 개성) 출신이라는 그는 서울에서 미관말직을 지내다가 사직하고 송도에 은거하며 도술가로 활동했다. 입에 넣은 밥알을 내뿜자 그것이 수많은 나비로 변해 날아갔다고도 하고, 가느다란 새끼 수백 발을 던져 그 위에 동자를 태우고는 하늘나라에 올라가 천도를 따오게 했다고도 한다.
백성을 현혹시켰다는 죄로 갇혀 옥사했는데 뒤에 친척들이 이장하려고 무덤을 파보니 시체 없이 빈 관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사후에도 그는 지인을 찾아가 서적을 빌려갔다는 예수의 부활같은 얘기가 전해진다.
이런 전설의 인물 전우치를 주인공으로 한 고전소설 ‘전우치전’이 전해 내려오는데 이는 비슷한 시기에 쓰인 유사한 내용의 허균의 ‘홍길동전’과 많이 비교되곤 한다. ‘홍길동전’은 오래전부터 만화(영화)는 물론 영화와 드라마로 많이 각색돼왔는데 ‘전우치전’은 지난 2009년 최동훈 감독에 의해 본격적으로 첫영화화돼 600만명 이상의 많은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 바 있다.

지난 달 21일 첫방송된 KBS2 수목드라마 ‘전우치’(극본 조명주 박대영 연출 강일수 박진석)는 다분히 이 영화의 성공에 자극받아 기획된 느낌이 짙다. 차태현은 영화 ‘전우치’의 꽃미남 강동원과는 다소 다른 캐릭터지만 코믹연기만큼은 강동원을 충분히 능가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바로 직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흥행시키며 첫 사극을 보기 좋게 성공으로 이끈 ‘흥행바람’을 기대한 점 등이 연상된다.
이런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게 이 드라마는 첫방송에서 14.9%의 안정된 시청률로 흥행고공행진을 예고했지만 보기 좋게 예상을 깨고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태생적 한계를 금세 드러내고 있다.
지난 13일 방송된 ‘전우치’ 8회의 시청률은 10.3%(AGB닐슨미디어리서치 전국일일집계기준, 이하 동일기준)로 그 전 주 방송분이 기록한 10.8%보다 0.5% 포인트 하락했고 동시간대 경쟁작 MBC ‘보고 싶다’의 11.6%에는 1.3% 포인트 뒤진 2위의 기록.
지난 6일부터 ‘보고 싶다’에 1위 자리를 내놓은 뒤 쉽게 역전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게시판을 통해 이런저런 이유를 늘어놓으며 ‘전우치’의 시청률이 하락할 수 밖에 없는 문제점들을 분석해놓고 있다. 방송전 이 드라마는 충분히 흥행에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많이 보여줬다. 전작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의 흥행여파를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다는 게 첫 번째 강점이었다.
게다가 주인공이 차태현이다. ‘전우치’가 갖는 몇가지 강점도 돋보이는 요소. 이미 영화가 성공했기에 그 지명도를 이어받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었고 이미 수도 없이 리메이크된 ‘홍길동’과 유사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안방극장에서의 첫 코믹판타지 사극대작이라는 포장도 충분히 화려했다. 그런데 그게 전부였다.
‘조선판 CSI’라고 소리만 요란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서스펜스나 스릴러 등의 추리극 요소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미약하기 그지 없다. ‘전우치’는 전우치 혹은 ‘전우치전’에서 모티프를 얻어왔지만 내용은 사뭇 다르다.
홍길동이 설립한 율도국의 도술사였던 전우치는 당시 죽마고우 마강림(이희준) 연인 홍무연(유이)과 행복한 시절을 보냈지만 강림이 백부 마숙(김갑수)과 함께 율도국 백성들을 전부 죽이고 조선으로 흘러들어오자 원수를 갚고 무연을 구하기 위해 따라 온다. 이 과정에서 마숙이 독충을 이용한 미혼술로 무연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 조종하고 있는 것.
마숙이 무연을 원격조종하는 이유는 오래전 홍길동이 조정에 상납한 대규모 은광의 비밀을 간직한 그림을 해독할 수 있는 유일한 홍길동의 혈육이 그녀이기 때문이다.
한편 도성의 재력가 집안 남매인 이치(차태현)와 혜령(백진희)은 눈앞에서 마숙이 아버지를 죽이고 재산을 몰수하는 모습을 본 뒤 어수선한 틈에 흩어지게 된다. 위험에 처한 치는 때마침 나타난 전우치에게 도움을 받지만 전우치를 살리고 자신은 죽는다.
그때부터 전우치는 도술을 이용해 평소 치의 모습으로 살며 조보소 서림이라는 하급관리로 살아가는 가운데 밤에는 본 모습을 하고 날아다니며 무연을 찾아 헤맨다. 마숙은 무연을 이용해 지도를 훔치고 은광의 위치까지 알아낸다.
한편 우여곡절 끝에 혜령은 오라버니 치를 만나지만 뭔가 이상한 느낌에 의심을 갖고 조사하던 중 그가 다른 사람인 것을 알고는 전우치가 치를 죽인 뒤 그의 행세를 한다고 오해한다. 강림은 보기 좋게 전우치를 배신하고 백부의 뜻을 따르지만 무연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갈무리하지 못한다. 그래서 항상 마숙과 갈등하고 무연을 향한 안타까움에 고뇌한다.
총 24부작 중 아직 3분의 1밖에 방영 안 됐다고 하지만 이 스토리가 전부다. 이후 전개될 내용은 명약관화하다. 이쯤 진행되면 웬만한 시청자는 다음 회의 그림을 충분히 그려낼 수 있다. 그러니 자꾸 시청률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도술가들의 화려한 액션연기를 그려내는 와이어 액션과 CG가 판타지를 향한 시청자의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켜줄 것으로 예상됐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나니 허술하기 그지 없었다. CG는 웬만한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보다 유치했고 와이어 액션 등 격투신은 얼마전 종영된 SBS ‘신의’ 보다 뒤떨어졌다. 이미 ‘와호장룡’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콧방귀 외에는 반응할 게 없었다.
완성도와 흥행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대본 연출 연기력 이 삼박자가 기막히게 맞아떨어지든가 최소한 2가지는 완벽해야 한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세가지가 완벽하게 엇박자다.
이 드라마의 내용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부분은 전우치와 홍길동의 연결고리다. 그런데 시청자들이 혹할 만큼 홍길동과 전우치의 에피소드와 인연 그리고 반전요소가 전혀 없다. 그저 전우치는 홍길동의 율도국 백성이었고 홍길동의 손녀 무연과 옛 연인관계라는 대사 외에는 아무런 설정이 없다. 하다 못해 한자릿수 시청률의 SBS ‘드라마의 제왕’도 주인공 앤서니김(김명민)을 괴롭히는 제국엔터테인먼트 회장(박근형)이 앤서니의 조력자인 SBC 남국장(권해효)의 아버지였다는 반전이라도 있는데 여기에 비하면 대본의 구성력이 떨어져도 한참 함량미달이다.
게다가 왕 이거(안용준)와 상선 소칠(이재용) 내금위 다모 은우(주연) 등의 사이에 뭔가 남모를 비밀약조가 있는 듯 미스터리 요소를 더하고 있는데 그게 반정 공신들의 위협과 견제로부터 왕권을 지키고 생존하겠다는 의도가 배경인 것이 뻔하게 보이고 더불어 별로 드라마틱하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도 흥미를 반감시킨다.
드라마라는 게 시청자들이 다음날 출근(등교)해서 삼삼오오 모여서 스토리의 전개와 끝부분의 아쉬움에 대한 토론과 추측으로 화제의 꽃을 피우면서 그 시청률이 상승되기 마련인데 ‘전우치’는 이렇게 그럴만한 요소가 별로 없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의 대사에도 맛과 향이 별로 없다. 봉구(성동일)의 과장된 경상도 사투리가 귀에 거슬려서 깊은 인상을 줄 뿐 나머지 캐릭터들의 대사는 하나도 기억 속에 저장되지 않는다. 결국 재미없다는 뜻이다.
차태현의 연기는 ‘과속스캔들’이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본 것과 다를 바 없다. 다소 경박한 이치 캐릭터나 무연에 대해 심각한 전우치의 성격이 전혀 구분되지 않는다. 1인2역이지만 결코 두 개의 각기 다른 캐릭터 같지 않은 게 결정적인 패착이다.
차태현과 강한 대립각을 세우는 이희준은 이 드라마 최대의 미스 캐스팅이다. 비록 ‘넝쿨째 굴러온 당신’으로 인해 갑자기 떠오른 스타라고는 하지만 강림의 캐릭터를 연기내기에는 야비하고 날카롭게 생긴 용모 외에는 더 이상 보여줄 게 없는 이희준이다. 대사 톤은 캐릭터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약하게 흘러가고 있으며 인상 쓰는 것 외에는 별다른 연기력이 없다. 그가 강력한 도술의 주문 ‘내합아신’을 외칠 때는 코웃음마저 나온다.
여기에 유이까지 합세했다. 김갑수 이희준 유이 세 명이 자주 모여서 연기하는데 이 장면은 ‘전우치’ 최대의 압권(?)이다.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연기스타일 때문에 오히려 김갑수 마저도 신인배우가 아닌가 착각하게 만들 정도다.
이렇게 ‘전우치’는 내밀한 비밀도, 은밀한 미스터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전우치와 강림 그리고 궁 등을 둘러싼 사건전개나 전우치 무연 혜령 등을 휘감은 갈등구조가 시청자들을 내재화시키지 못한다. 결국 다수의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에 몰입할 그 어떤 이유도 찾지 못한 채 다른 채널로 리모콘을 조작하며 전작 ‘착한 남자’를 그리워할 따름이다.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