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했다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다".
'거미손' 이운재(39)가 드디어 골키퍼 장갑을 벗는다. 이운재는 17일 서울 강남구 라마다 서울 호텔에서 은퇴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운재는 은퇴의 변을 통해 "축구만을 보고 달려왔던 내 인생의 마지막 인사를 건네려고 한다. 다시 훈련 장비를 갖춰 운동장으로 가게 될지 모르겠다"면서 "축구선수로서 반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정말 노력했다. 그러나 가족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크다.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들 그리고 지금까지 고생하신 어머니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노력이 기회를 만나면 운이 온다는 명언을 들었다. 요행이나 공짜를 바라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운을 얻었다. 후배들도 각고의 노력을 한다면 운도 따를 것이라 믿는다. 비록 몸은 운동장을 떠나지만 나의 고향은 잔디 냄새 가득한 운동장이다. 기회가 된다면 후배들에게 나의 재능을 나눠주는 것이 될 것이다. 다시 뵙기를 기대하며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전했다.

지난 1996년 수원 삼성의 창단 멤버였던 이운재는 2010년까지 수원에서 뛰며 '미스터 블루'로 불렸다. 2008년에는 수원의 우승과 함께 골키퍼로는 최초로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2010년 시즌 종료 후 수원을 떠나 정해성 감독의 전남으로 이적했다. 그러나 올 시즌 중반 정 감독이 중도 사퇴하면서 그의 입지에도 변화가 왔다. 새로 지휘봉을 잡은 하석주 감독은 체중 감량을 이유로 이운재를 벤치 멤버로 내몰기도 했다.
시즌 종료 뒤 하 감독은 팀을 위해 이운재에게 재계약 불가 방침을 전했다. 모기업 포스코의 재정이 어려워지면서 팀도 허리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운재가 고액 연봉자라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다. 결국 이운재는 은퇴를 결정했다.
이운재는 "은퇴에 대한 최종 결정은 최근 내렸다. 올 시즌을 막판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전남이 강등권에 있었기 때문에 속내를 털어놀 수 없었다"면서 "정 감독님이 떠나시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솔직히 선수생활 연장에 욕심이 없다면 거짓이다. 하지만 이쯤에서 선수생활을 그만두는 것이 미래와 지금까지의 인생을 위해 좋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운재가 가장 빛을 본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다. 김병지와 선의의 경쟁을 이겨내며 주전으로 골문을 지키며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끌었다. 또 그는 이후 대표팀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다 2007 아시안컵 기간 도중 음주를 한 사실이 드러나 국가대표 1년 자격정지 징계를 받기도 했다.
이운재의 A매치 기록은 132경기 출전 114실점(경기당 0.86실점)이다. 한국 선수 중 홍명보(43) 전 올림픽 대표팀 감독(136경기)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태극마크를 달았으며, 골키퍼로서는 최다 출전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서 김병지(경남) 최은성(전북)과 함께 선의의 경쟁을 벌였던 그는 "셋 중에 가장 후배지만 먼저 은퇴하게 됐다. 그러나 두 선배님들이 안계셨다면 내가 이만큼 할 수 없었다.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다시 드리고 싶다"고 선배들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냈다.
이운재가 은퇴에 대한 이야기를 한 뒤 축구계의 선후배들이 동영상을 통해 인사를 전했다. 홍명보, 김태영, 최용수, 안정환 등 선후배와 그리고 영원한 라이벌인 김병지까지 이운재의 은퇴를 아쉬워 하며 앞으로 인생에서도 좋은 일을 해나갈 수 있도록 기원했다. 또 후배인 정성룡(수원)은 직접 기자회견에 찾아와 선배의 은퇴에 대한 아쉬움과 미래의 행복을 빌었다.
이운재는 "축구를 한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다. 축구를 통해 인생의 즐거움을 모두 느꼈다"면서 "선수로서 은퇴하는 현재의 심정이 가장 아쉽다. 모든 것을 정리하는 마무리 단계이기 때문에 아쉬움이 크다. 가장 지금이 슬프기도 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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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철 기자 bai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