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카펫에서 가장 사랑받는 디자이너 로건, "이제 경청하는 디자이너의 시대, 입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옷을 만들어낼 것"
2008년 첫 론칭, 4년 만에 국내 셀러브리티들의 선호 ‘1순위’로 떠오른 브랜드. 레드카펫 행사 직전에는 매출을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쁘고 정신이 없으며, 최근에는 메이크업 브랜드와 감각적인 콜래보레이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여기까지만 봐도 어느 브랜드인지 아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부부 디자이너 맥과 로건이 운영하는 ‘맥앤로건’이다. 맥앤로건 드레스를 입은 스타는 배우 김태희, 임수정, 최강희, 한채영 등 여배우뿐 아니라 피겨와 체조의 아이콘 김연아와 손연재까지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특히 레드카펫에서는 그 영향력이 더욱 막강하다.

로건 디자이너는 최근 서울종합예술학교 패션예술학부 전임교수로 임명되며 바쁜 일정을 하나 더한 상황이다. ‘패션의 soul을 만나다’ 코너를 위해 직접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부부에게는 아직도 바쁠 일만이 한없이 많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로건의 표정에선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광채가 넘쳤다. 로건은 “원래 욕심이 많은 편”이라며 활짝 웃었다.

-이제 교수님도 되셨는데, 로건 디자이너의 본명이 제대로 드러난 적이 없더라. 이 기회에 본명과 브랜드의 의미까지 설명해 주시는 게 좋겠다.
▲그랬나?(웃음) 너무 로건이라는 이름만을 강조했나 보다. 본명은 강민조이다. 그리고 로건은 ‘넓게 감싼다’는 뜻이고 ‘맥’은 진주의 핵을 뜻한다. 그래서 진주의 핵을 감싼다는 뜻의 브랜드명이 탄생했다.
브랜드 로고의 테마는 꽃무늬가 있는 집을 콘셉트로 했다. 요즘은 세라믹 꽃을 매장에 장식하고 있는 식으로 콘셉트를 구현하고 있다. 뭐든 내부에서 스토리텔링을 확실히 하고 나서 디자인에든, 매장 콘셉트에든 보여주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해외 생활이 길었고, 프랑스 파리의 오뜨꾸뛰르(Haute Couture) 하우스에서 오랜 시간 디자이너로 활동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프랑스가 활동 기반이었다. 10년 정도는 프랑스에서 국내로 왔다갔다하는 생활을 했고, 7~8년씩 파리에 계속 있는 기간도 있었다. 꿈이 파리, 도쿄, 런던, 서울을 3개월마다 돌아다니며 사는 것이었다. 이제는 중국에도 점점 흥미가 생긴다.
-맥앤로건의 의상에서 레드카펫 드레스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레드카펫에서 사랑받는 브랜드가 된 이유를 돌이켜본다면.
▲한 마디로 전투력의 승리다. 하하하. 아까도 말했지만 욕심이 많은 편이다. 처음 브랜드를 내놓고 ‘100년 된 명품 브랜드를 이길 방법은 저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어린 마음에 든 패기였을지도 모른다. ‘샤넬하고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무작정 뛰어들었다. 레드카펫에서는 브랜드와 상관없이 모두 같은 공간을 걸어가니까 말이다.
특히 부산영화제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레드카펫이 유난히 길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우리 드레스가 돋보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드레스에 한복 천을 썼다는 이유로도 많은 화제를 모았다.
▲‘왜 한복 천을 쓰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은 기억도 난다. 사실 유럽 천도 많이 쓰는데…나는 ‘한복의 세계화’나 ‘우리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우리 문화는 잘 보존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현대적으로 구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내 드레스는 궁중 한복의 우아함이 아니라, 우리 할머니들이 외출할 때 클러치 들고 살짝 종아리가 보이게끔 입은 항아리 실루엣에 뒤 트임이 있는 한복에서 영감을 받았다. 한복 천을 쓴 이유는 바람이 닿았을 때 통과하는 모습이 아주 우아하기 때문이다. 유럽이 무대라면 마찬가지로, 마리 앙투아네트가 입던 옷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 실루엣과 분위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트렌디한 드레스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편안하면서도 아름다워야 한다.
-레드카펫 전문가답게 최근의 트렌드에 대해 평가도 가능하겠다.
▲최근 7, 8년 새에 레드카펫 드레스 스타일은 아주 많이 발전했다. 그저 예쁜 옷을 입어야지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스타들 또한 그 해 본인이 맡은 배역이 어땠으며, 장소에 계단이 많은지, 바람은 세게 부는지 아주 세세한 사항까지 고려해서 입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청룡영화상 등 행사에 따라서 분위기를 맞춰 입는 모습도 보이는데, 발전적이다.
-올해도 부산국제영화제 시즌에는 눈코뜰새 없이 바빴을 듯하다.
▲이번 추석 휴일을 전부 반납해야 했다. 부산국제영화제 때 우리 매장이 바쁘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예전에는 뭘 몰라서 매장에서 드러누워 담배를 피우면서 정신없이 일하는 모습을 보인 적도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 만큼 너무나 바쁜 때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드레스 브랜드의 정체성과 함께 좀 더 넓은 미래를 보고 나아가려 한다.
-에스쁘아와의 콜래보레이션도 그러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일 중 하나인가.
▲드레스 브랜드로 워낙 알려져 있다 보니 대중과의 소통이 절실하다. 그래서 과거에는 Baby-G 등 시계와의 콜라보레이션도 했었다. 다행히 우리 브랜드가 화장품 쪽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 화장품 지면광고 의상으로도 굉장히 선호를 받았다. 그래서 에스쁘아와 결국 손을 잡게 됐는데, 공장의 대량생산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이 충돌해서 무언가를 내놓는 작업이라 굉장히 재미있었다.
또 우리 같은 디자이너들은 하루하루 마감에 쫓기느라 늘 힘든데, 기업의 협조 속에 최대한 많은 시간을 들여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하니 참 할 수 있는 게 많다 싶었다. 6개월 넘게 함께 작업을 하면서 일주일에 두 번은 회의를 했는데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더라.
-마감에 쫓기는 디자이너의 일상에 고충이 많아 보인다.
▲정말 완벽하게 일을 하려고 하지만, 가끔씩 하다 보면 ‘이게 100%는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직 4년 밖에 안 된 회사다 보니 회사를 잘 꾸리기 위해 100%가 아니어도 정말 어쩔 수 없이 나 자신과 타협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콜래보레이션을 하면서는 파트너의 원조 속에 전혀 그럴 필요가 없어서, 그렇게 하면 정말 많은 걸 할 수 있다고 느꼈다. 앞으로도 대중과 친밀해지기 위해 더욱 친숙하고 대중적인 상품과 콜래보레이션을 할 계획이다.
-콜래보레이션을 제외하고도 브랜드의 미래를 넓히기 위한 작업 중일 텐데.
▲첫 번째로 ‘경청하는 디자이너’가 되는 게 목표다. 두 번째 목표는 한 마디로 말해 진정한 오뜨 꾸뛰르의 정통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먼저 두 번째에 대해 얘기하겠다. 오뜨 꾸뛰르라고 하면 한국에서는 파리의 화려한 오뜨 꾸뛰르 컬렉션처럼 접하기 어려운 무대만을 주로 생각하는데, 사실 오뜨 꾸뛰르라는 것은 한 집의 역사를 전부 다루는 디자인을 말한다.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어린 손주의 옷까지 전 가족의 옷을 다 만드는 것이 오뜨 꾸뛰르이다. 물론 그 중 20~30%는 아주 중요한 순간에 입는 드레스로 만들어지겠지만 그것만을 오뜨 꾸뀌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사실 지난 4년 동안 슈트 전문 장인, 봉제 전문 장인과 함께 정통 오뜨 꾸뛰르 브랜드가 되기 위해 준비해왔다. 진짜 멋쟁이는 옷장에 그냥 접혀 있는 옷까지 멋지다고 하지 않나. 그런 옷까지 만드는 것이 목표다. 잘 빠진 슈트부터 아주 스타일리시한 리조트 룩까지 커버할 수 있는 브랜드로 만들 생각이다.
-‘경청하는 디자이너’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겠다. 2009년부터 ‘중년을 어떻게 변하게 할까’를 생각했다. 중년 소비자가 편하게 옷을 고를 수 있도록 매장을 만들려고 연구했는데, 처음에 찾아온 중년 손님들이 ‘박근혜 스타일’, ‘김희애 스타일’을 얘기하기에 난감했다. 나도 ‘내 스타일이 아닌데 과연 이렇게 해야 하나’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분들이 처음 매장에 있던 옷들을 보고는 “이런 건 못 입는다”고 해서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최대한 고객의 취향에 맞춰 줬다. 그랬더니 두 번째에는 “디자이너가 골라준 것 중에 고르겠다”고 하며 내가 고른 옷 중 선택을 하고, 세 번째에는 내가 골라 드리는 것을 입었다. 그러고 나서 또 온 손님은 내가 ‘이거다’ 싶은 것을 스스로 고르더라. 그렇게 해서 그들이 원하는 옷을 파악해 똑 같은 옷을 5벌씩 만들어 걸어 뒀더니 아주 잘 나갔다. 그리고 나중에는 처음에 “이런 건 못 입는다”는 말을 들었던 옷도 전부 팔렸는데, 그 점은 나도 참 신기하다.
-그런 현상이 무엇을 시사하는 것인가.
▲지금은 디자이너가 ‘나는 누구이며, 이런 옷을 만든다!’고 외치는 게 중요한 시대가 아니다. 사람들이 우리 옷을 입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때문에 연구하고 공부하는 디자이너의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물론 소비자는 옷 만드는 작업에 대해 잘 모르지만, 찾아온 손님의 성장사부터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옷을 입기를 원하는지를 들어야만 한다는 얘기다. 그런 정보는 처음에 접하면 아무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쌓이고 쌓이면 귀중한 자산이 된다.
100년 전통을 가진 명품 브랜드도 그런 자산이 있기 때문에 누구나 갖고 싶은 옷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장에 고객의 스토리를 듣기 위한 룸을 많이 만들려고 한다.
-아까 ‘중년을 어떻게 변하게 할까’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관심사는.
▲지금은 아까 말한 특성을 포함한 중년에 대한 연구를 대충 끝내고, 30~40대에 대해 공부 중이다. 30-40대는 일하는 남녀다. 50대보다는 어찌 보면 옷을 많이 구입하기도 하는데, 또 현실적으로 구입하기도 한다. 일할 때, 일하다 쉴 때의 모습에 모두 걸맞은 옷을 만들고 싶다.
-말씀하신 대로 경청하는 디자이너가 된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지만 시간이 많이 들 것 같다. 이제 교수 직함을 달고 강의도 해야 하는데 눈코뜰새 없지 않을까.
▲그렇긴 하다. 보통 출근해서 함께 작업하는 장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손님 이야기도 경청해야 하고, 요즘은 해외에도 못 나가고. 일요일도 못 쉬고 있다. 강의까지 더하면 더욱 바빠질 것 같다.
-그럼에도 교수 직함을 받아들이기로 한 이유는.
▲한국의 4년제 대학교 시스템은 ‘일을 하는 과정’이 아닌 ‘학위 따는 과정’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살짝 문제점이 있어 보인다. 유럽에서는 회사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바로 ‘프로’라는 인식을 한다.
그래서 전문학교에서 빨리빨리 당장 일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서울종합예술학교 교수를 맡기로 했다. 학문과 실무를 잘 섞어서 일을 잘 할 수 있는 과정을 가르치려고 한다. 유럽에서 유명한 패션 쪽 학교는 사실 ‘사립 학원’에 가깝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앉아서 배우는 게 아니라 방학 때마다 인턴으로 일하고, 보통 3년 과정인데 2년이 지나면 잘 하는 친구들은 다 취업하는 분위기다.
의상은 사실 기능이고,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학점으로만 평가하긴 좀 힘이 든다는 게 내 의견이다. 학점이 좋다고 일을 꼭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실무 전문가를 한 번 키워 보겠다.
-브랜드의 미래와 디자이너의 미래에 대해 폭넓은 말씀을 해 주셨다. 대중이 관심을 가질 만한 앞으로의 패션 트렌드가 마지막으로 궁금하다.
▲‘아무도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옷’을 기대하기는 이제 좀 힘들지 않나 생각한다. 드레스에 대해서라면, 보자마자 ‘드레스다!’라는 생각이 드는 스타일보다는 원피스가 좀 길어졌다 싶은 그런 드레스가 사랑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성들이 슈트를 보다 많이 입게 될 것이다. 정말 중요한 날에는 반드시 입어야만 하는 그런 ‘나만의 슈트’를 한 벌은 가져야 한다는 게 나의 원래 생각이기도 하다. 브랜드나 가격은 상관없이, 본인과 정말 잘 어울리고 ‘바로 이거다’ 싶은 슈트 말이다. 이제 3년간 슈트 연구를 해 왔으니 곧 재미있는 결과물을 선보이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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