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승부 근성과 무서운 집중력. '국민타자' 이승엽(36, 삼성)의 대표적인 성공 요소다.
외모에서 알 수 있듯 평소에는 선한 이미지가 강하지만 승부가 시작되면 눈빛부터 달라진다. 주변 사람들도 "정말 대단하다"고 혀를 내두른다.
지는 건 죽기보다 싫을 만큼 승부 근성이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스스로 만족하는 순간 또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넘을 수 있기 때문에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게 이승엽의 말이다.

1997년 32개의 아치를 쏘아 올리며 데뷔 첫 홈런왕 타이틀을 품에 안았던 이승엽은 외국인 선수 제도가 처음 도입된 1998년 타이론 우즈(당시 OB)에게 홈런왕 자리를 내줘야 했다.
"돌이켜 보면 정신력이 약했던 것 같다. 8월까지 8개차로 앞서 있었는데 우즈가 한 경기에 2개씩 치는 등 홈런이 급증한 반면 나는 우즈의 추격을 보면서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즈의 홈런 소식에 가슴이 철렁했고 조바심을 가졌다. 5개, 4개, 3개씩 격차가 좁혀졌고 결국 우즈가 홈런 신기록을 세우게 됐다".
이승엽은 "그때 느낀게 내가 해야 할 부분만 잘 하면 됐는데 상대를 의식하다보니 나쁜 결과가 나왔다. 모든 건 나의 책임이었다. 나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지 못한 탓"이라고 말했다.
"1999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진짜 싸움이 시작됐다고 여겼다. 상대가 누구든 나의 마음가짐과 컨디션만 생각했었다. 다른 선수들에게 져도 괜찮지만 전년도 90% 앞서다 10% 남은 시점에 뒤진 우즈에게만은 질 수 없다는 생각 뿐이었다".
이승엽은 그해 54개의 홈런을 터트리며 사상 첫 50홈런 시대를 열었다. 반면 우즈는 34홈런에 머물렀다. 이승엽이 "생애 최고의 시즌"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2001년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또한 마찬가지. 이승엽은 "우승을 눈앞에 두고 역전패를 당하는 바람에 눈물을 쏟아냈었다. 오랜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었는데 패하게 돼 정말 억울했었다"고 회상했다.
삼성은 이듬해 LG 트윈스를 꺾고 정상 등극의 기쁨을 누렸다. 한국시리즈 내내 부진했던 이승엽은 6차전서 9회 극적인 동점 스리런을 쏘아 올리며 우승에 힘을 보탰다.
'혼이 담긴 노력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 잘 알려진대로 이승엽의 좌우명이다. 단순히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게 아니라 훈련하는 만큼은 자신이 가진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켜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
이승엽은 "다른 선수들이 스윙 10번, 20번할때 100번, 200번 하는 게 아니라 남들이 100번 할때 10번을 하더라도 내가 가진 모든 걸 쏟아 부어야 한다는 마인드를 갖고 있었다"며 "남들에 비해 훈련량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가 마음 먹었던 목표치를 소화해야만 훈련을 마쳤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그가 각종 국제대회마다 결정적인 순간 임팩트있는 한 방을 터트릴 수 있었던 것도 집중력 덕분이었다.
이승엽은 "국제대회마다 잘 했던 건 아니었지만 많은 분들께서 '먹튀' 또는 '승삽'이라고 질타했어도 중요한 고비 때 팀을 위해 조금 기여한 것 같은데 연습할때 남들보다 0.1%라도 더 집중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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