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의 클리닝타임] MLB 진출, 내야수들도 못할 것 없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2.12.22 07: 12

류현진(25, LA 다저스)에 이어 임창용(36, 시카고 컵스)도 미국 진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다시 한 번 ‘코리안리거 열풍’이 예감되는 시점이다. 굳게 닫혔던 문이 잠금해제됐으니 이제 화두는 자연스럽게 그 다음이다. 그 중에서도 전무했던 야수들의 MLB 진출 가능성에 비상한 관심이 몰리고 있다.
한국야구의 MLB 도전사 주인공들은 대부분 투수였다. 그나마 한국프로야구에서 MLB 직행은 류현진이 처음이다. 이에 비해 옆 동네 일본은 분포가 좀 더 다양하다. 야수들도 꾸준히 미국의 문을 노크하고 있다. 올 겨울만 해도 일본프로야구 최고의 유격수 중 하나인 나카지마 히로유키(30)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입단을 확정지었다. 어쩌면 우리 내야수들의 MLB 성공 가능성을 견줘볼 수 있는 하나의 잣대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일본프로야구도 내야수들의 MLB 성공신화를 고대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치로 스즈키, 마쓰이 히데키 등 야수들의 성공 사례가 있지만 이들은 외야수였다. 반대로 일본 대표 내야수로 평가됐던 선수들은 모두 미국에서 쓴 맛을 봤다. 마쓰이 가즈오, 이와무라 아키노리, 니시오카 쓰요시 등이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마쓰이는 1997년부터 2003년까지 7년 연속 3할을 치며 일본 최고의 유격수로 이름을 날린 뒤 2004년 뉴욕 메츠에 입단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10년까지 메이저리그 통산 630경기에 나서 타율 2할6푼7리, 출루율 3할2푼1리에 그쳤다. 잦은 부상도 원인이었지만 공·수 어느 한 쪽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일본 최고 선수가 미국에서는 어정쩡한 선수로 추락했다는 뜻이다.
 
2007년 템파베이에 진출했던 이와무라도 성공에 이르지 못한 채 일본으로 돌아와야 했다. 통산 408경기에서 2할6푼7리, 장타율 3할7푼5리에 머물렀다. 특히 장타율의 급감이 눈에 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3년간 일본에서 총 106개의 홈런포를 쏘아 올렸던 이와무라는 메이저리그 진출 후 단 16개의 홈런 밖에 때리지 못했다. 미국과 일본의 ‘힘 차이’를 실감한 케이스로 손꼽힌다.
나카지마 전에 일본 대표 유격수였던 하나였던 니시오카는 이 잔혹사에 가장 큰 획을 그었다. 2011년 미네소타 입단 후 2년간 71경기밖에 나서지 못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지난해 MLB 출장은 단 3경기였고 2할1푼5리의 통산 타율을 기록한 채 쓸쓸히 고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런 실패의 역사가 되풀이되는 상황에서 나카지마가 다시 시험대에 오르는 셈이다.
MLB에는 “동양인 내야수는 성공할 수 없다”라는 인식이 깊게 박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동양에서 가장 실력이 좋다는 일본 선수들이 연거푸 고배를 마시자 이 인식은 콘크리트처럼 굳어졌다. 민훈기 XTM 해설위원은 “일본의 이야기는 잘 모르겠지만 조금 심하게 말하는 미국 관계자들은 ‘기본기가 잘 안 되어 있다’라는 이야기까지 하곤 했다”고 떠올렸다.
특히 이들은 수비에서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일본에서 통산 4차례 골든 글러브를 수상한 마쓰이가 한 시즌도 못 되어 유격수 자리를 내놨던 것이 이를 상징한다. 다른 수비 스타일, 다른 구장 여건 속에서 자기 기량도 다 발휘하지 못하고 표류했다. 실제 나카지마가 공식 입단식에서 받은 질문 중 하나도 “수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였다.
민 위원은 “아무래도 MLB 선수들의 타구는 강하고 빠르다. 과거 다저스에서 뛰었던 마이크 피아자를 생각하면 쉽다. 피아자의 타구는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도 총알 같이 야수 옆을 뚫고 지나가곤 했다”라며 차이를 설명하면서 “0.1초 차이에 결정되는 것이 수비다. 일본 선수들도 여기에 많이 고전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렇다면 우리 선수들도 가능성이 떨어지는 것일까. 꼭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강정호(25, 넥센)의 전 동료였던 코리 알드리지는 “강정호 정도면 MLB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동료에 대한 배려가 아닌 확신에 찬 말투였다. MLB에서 코치 생활을 한 이만수 SK 감독도 “최정(25, SK)의 수비력은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한다”라고 강조했다. 제자이긴 하지만 최정이 그간 보여준 수비 능력을 감안하면 지나친 감싸기는 아니다.
일본 선수들이 수비에서 큰 문제를 드러냈다면 두 선수의 수비 능력에도 주목할 수 있다. 이토 쓰토무 전 두산 수석코치는 “수비에서의 적극성은 한국 선수들이 더 좋다. 어깨도 강하다”라고 평가했다. 주로 기다렸다가 안정된 수비를 펼치는 일본 선수와는 달리 적극적인 대시가 돋보인다는 의미였다. 어쩌면 이런 스타일이 MLB에는 좀 더 어울릴 수도 있다. 강정호나 최정의 경우는 체격에서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한 야구 관계자는 “투수 중심이었던 MLB 도전 풍토에서 벗어나 이제는 야수들도 한 번쯤 도전해 볼 시기가 되지 않았느냐”라고 기대했다. 실제 MLB에 대한 거리감도 많이 좁아졌다. 신세대 선수일수록 그런 경향은 더 강하게 나타난다. 강정호의 롤모델은 알렉스 로드리게스고 최정도 매일 MLB 타자들의 타격폼을 보며 영감을 찾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연스레 MLB에 대한 도전의지를 키워볼 수 있는 여건이다.
물론 단번에 이뤄질 수 있는 꿈은 아니다. 실제 우리 내야수가 MLB 무대를 밟기까지는 아직 풀어야 할 난관이 적지 않다. 선례가 없기에 그 길은 더 험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다. 그 희망을 품어간다는 것 자체도 기량 향상만큼이나 중요하다. 지레 짐작 겁먹을 필요도 없다. 류현진에 대한 애당초 예상도 “높은 평가를 받기는 힘들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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