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세계 청소년 선수권 우승을 함께 이끌었다. 그리고 프로-대학으로 진로가 갈린 후에도 그들은 연말 함께 모여 단순한 친목 뿐만 아니라 함께 봉사활동에 나서는 등 훈훈한 세밑을 보냈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충격적인 일이었으나 그들은 빈소를 지키며 조문객을 맞는 등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故 이두환(전 두산-KIA)을 잃은 1988년생 또래 친구들은 비보 속에서 더욱 돈독해졌다.
고관절 부위 관절이 괴사하는 악성 종양인 대퇴골두육종 진단을 받은 후 서울 원자력병원에 입원 중이던 이두환은 지난 21일 오후 안타깝게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향년 만 24세. 이수중-장충고 시절 팀의 주포로 활약한 뒤 2007년 2차 2순위로 두산 입단한 이두환은 2006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우승 주역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말 고관절 부위 통증으로 인해 고역을 치렀고 검진 결과 대퇴골두육종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이후 이두환은 여러 차례 항암 치료를 했고 강한 삶의 의지를 비췄으며 많은 야구 관계자와 팬들도 성원을 아끼지 않았으나 안타깝게도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최근에는 암 세포가 두 개의 폐로 모두 전이되며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했던 위급한 상황이었다.

공교롭게도 21일은 그를 돕기 위한 선수들과 연예인들의 자선 경기가 있던 날이었다. 경기는 폭설로 인해 치러지지 못하고 기념 촬영과 자선 경매로 행사가 이어졌다. 이 자리에는 이두환의 동료들과 이수중-장충고 동문, 그리고 이두환의 동갑내기 친구들이 함께 했다. 이용찬, 임태훈, 김명성(이상 두산) 등 전 소속팀 친구들은 물론이고 양현종(KIA)도 광주에서 올라와 이두환의 쾌유를 빌었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이용찬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용찬은 “20일 날 두환이를 문병갔는데 병세가 안 좋아져 큰일이다”라며 어렵게 입을 뗐다. 21일 이용찬은 발목 부상 중인 후배 홍상삼을 대신해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표팀에 승선했으나 그에게 더욱 우선인 것은 사경을 헤메던 친구였다.
“양 쪽 폐로 암 세포가 전이되어서 두환이가 호흡을 힘겨워해요. 의사 선생님께서 어머니께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라고 하시는 데 저도 너무 슬프더라고요”. 그 때 이용찬은 ‘소식이 퍼지면 안 되니 쓰지는 말아 달라’라는 부탁을 했었다. 생명의 끈을 잡던 이두환이 다시 건강하게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간절한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이두환은 이용찬의 소원을 뒤로 하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이두환이 떠난 그날 밤 장례식장에는 빈소가 채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다. 장례식장으로 곧바로 이동한 청소년 대표팀 동기들도 망연자실한 표정이었으나 이윽고 조문객들이 오자 그들을 맞고 일을 도왔다. 자선경기에 참석했던 선수들은 물론이고 김광현(SK), 이재곤(롯데), 김재율(LG) 등 청소년 대회 우승을 함께 했던 친구들은 빠짐없이 빈소로 향해 친구를 잃은 허망함을 뒤로 하고 조문객을 맞는 성숙함을 보여줬다. 너무 슬픈 와중에서도 그들은 다시 마음을 추스르는 데 집중했다.
이들은 2006년 우승 이후 이듬해부터 친목 도모를 위한 자리를 연말마다 가져왔다. 그저 한 해를 술자리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맞아 연말마다 불우이웃을 돕는 자리도 갖던 훈훈한 친구들이었다. 그 모임의 일원으로서 선행을 함께하던 이두환이 꽃을 채 피우지 못하고 떠난 2012년 말. 이두환이 떠난 그 다음날은 원래 88 둥이들이 스스로 자리를 마련해 자선 행사를 계획한 날이었다. 어느 단체를 등에 업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발로 뛰며 이두환을 크게 돕고자 했다.
이두환은 떠났으나 88 둥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커다란 숙제가 남았다. 그들이 살고 있는 오늘은 이두환이 그토록 간절하게 바랐던 내일이었다. 이두환은 다시 그라운드에 선수로 살기 위해서 아끼던 왼 다리를 잘라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투지를 불태우며 악성 종양과 싸웠다. 친구가 하지 못한 일. 그라운드에 당당히 서서 자신의 입신양명은 물론이고 리그 발전까지 이끄는 일. 88 둥이들이 당연히 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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