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 조승우 향한 세 여자의 삼색 사랑과 현실적 야망
OSEN 윤가이 기자
발행 2012.12.26 17: 30

[유진모의 테마토크] 남녀간의 사랑은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특별한 도파민의 요술이지만 동물들의 이성간 결합은 종족보존을 위한 물리적 본능일 뿐이다.
 
물론 사람도 사랑 없는 육체적 충동에 의해서만 성관계를 갖는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 가운데 자손생산의 본능을 제외한 성욕으로 섹스를 하는 딱 두 가지의 종이 있으니 하나는 보노보 원숭이고 나머지는 사람이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에게 있어서 사랑은 가장 소중하고 값지며 순수한 에너지일 것이다. 사람은 본능적인 섹스보다 사랑을 동반한 애정의 행위를 더 값어치 있게 여기고 또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고자 노력하기 때문이다.

 
MBC ‘마의’는 지난 24일 17.2%의 시청률로 전 주의 18%에 비해 소폭 하락하긴 했지만 압도적인 시청자의 지지를 받으며 KBS2 ‘학교’와 SBS ‘드라마의 제왕’을 제치고 월화드라마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 드라마가 주는 가장 기본적인 재미는 연출자 이병훈 PD의 전매특허인 시대적 성공스토리에 있지만 그 디테일에 주인공 백광현(조승우)을 향한 양반가 3명의 여인, 서은서(조보아) 숙휘공주(김소은) 그리고 강지녕(이요원)의 삼색 사랑이 존재하기에 손에 땀을 쥐는 재미가 더욱 쏠쏠하다.
 
그리고 이 사랑들은 한결같이 이 드라마의 배경인 조선시대 중기에서는 존재할 수도 이뤄질 수도 없는 신분을 초월한 위험한 사랑이기에 더욱 시청자의 두뇌에 엔도르핀을 분비시킨다.
 
서은서는 청상과부다. 대제학까지 배출한 명문가 집안의 딸로서 좌의정 정성조(김창완)의 장남에게 시집가지만 금세 병으로 남편의 여읜 뒤 당시 팽배한 유교적 관념이 강요하던 열녀의 길을 가기 위해 목을 맨다.
 
이때 그녀를 살려낸 사람이 광현. 뿐만 아니다. 백광현의 철천지 원수인 내의원 제조 이명환(손창민)이 꾸민 음모에 은서와 광현이 얽혀들어 광현이 중벌을 받을 위기에 처했을 때 은서가 광현을 구해낸 뒤 이번에는 광현이 심각한 유방염증을 앓고 있는 은서를 외과수술로 다시 한번 살려낸다.
 
당시 사회상과 도덕적 잣대로 봤을 때 은서가 남편을 따라 가려고 자살을 시도했던 것은 감동적인 자기희생의 행동이었다. 또한 구사일생으로 광현에 의해 살아난 뒤 다시 좌상의 집에서 칩거하며 수절하는 것도 당연한 이치였다.
 
하지만 까칠하던 은서는 어느덧 광현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었다. 광현이 강상죄의 음모로 궁지에 몰렸을 때 자신의 가문은 물론 좌상의 가문의 명예가 크게 실추될 것을 알면서도 진실의 증언을 하고 나선 행동은 옳은 일을 옳은 것이라 밝히고자 하는 정의감과 더불어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광현의 은혜에 대한 보답인 동시에 절대로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광현을 향한 사랑의 발로였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광현에 대한 사랑을 겉으로 표출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갈무리하면서 광현이 잘되기를 묵묵히 바라볼 뿐이다. 관조와 초월의 사랑이다.
 
그녀는 지녕의 광현을 향한 사랑이 자신의 그것보다 더 크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있음을 잘 안다. 그래서 지녕이 언젠가는 양아버지 이명환에 대한 의리와 광현을 향한 사랑 사이에서 감당 못할 큰 상처를 입을 것을 알고서 미리 충고해주는 배려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이는 지녕 이상으로 상처 입을 광현을 향한 사랑의 방점이다. 왜냐면 당시의 도덕적 잣대로 봤을 때 명문가 청상과부가 천민에게 재가한다는 것은 두 사람 모두 철퇴를 맞아 죽임을 당해도 마땅할 중죄였기 때문이다.
 
현종(한상진)의 여동생 숙휘는 천하에 없을 귀여운 철부지다. 저잣거리 서민들의 삶과 축제가 궁금하기만 한 이 여자는 친한 지녕을 꼬드겨 외국인 거리에 나갔다가 봉변을 당하지만 광현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나면서 그와 인연을 맺게 된다.
 
하지만 당시 광현의 신분은 천민인 마의. 공주와 최하층 천민과는 눈도 마주칠 수 없는 하늘과 지하의 관계. 그러나 그녀는 고양이가 충치를 앓는 것을 핑계로 광현과 본격적으로 가까워진 뒤 그에 대한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나름대로 키워간다.
 
그녀는 눈을 뜨나 감으나 오로지 광현 생각이다. 심지어 꿈속에서조차 광현을 본다.
 
그러던 그녀는 결국 광현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고백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그와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달라고 지녕에게 부탁한다. 드디어 광현과 단 둘이 있게 된 숙휘는 자신보다 한참 낮은 신분의 남자에게 마음이 있음을 고백하지만 눈치가 느린 광현은 그게 그를 지칭하는지는 꿈도 꾸지 못 하고 반가의 규수인 지녕을 사랑하는 자신에 빗대 그런 마음을 이해한다며 공주를 헷갈리게 만든다.
 
그런데 은서와 광현의 강상죄 모함 사건을 계기로 숙휘는 혹시 두 사람이 서로를 마음에 두고 있지 않을까 질투심에 휩싸인다. 공주로서는 체통에 어긋나는 행동이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몸소 은서를 찾아나서 광현과의 관계를 추궁하기까지 한다.
 
반가의 규수로서 뿐만 아니라 공주로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돌출행동으로 광현에 대한 사랑을 가감 없이 표출하는 숙휘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은 그녀의 최측근 곽상궁과 호위무사 마군관이다. 같은 여인으로서 공주의 은밀한 속내까지 책임져야 하는 곽상궁이야 그렇다 치지만 청운의 꿈을 품고 입궐한 마군관은 광현이 의생시험에 합격하도록 돕기 위한 숙휘의 명령에 의해 합격부적이랄 수 있는 여인네의 속곳을 훔치는 궂은일까지 해내며 고향을 향해 한숨짓는다.
 
숙휘의 사랑은 일방통행의 막무가내식 돌직구 사랑이다. 이제 그만 혼례를 올리라는 대비(김혜선)의 명령에서 요리조리 벗어나 그저 광현에 대한 사랑의 크기만 키워간다. 여기에 공주의 체통도, 자신으로 인해 곤란한 곽상궁과 마군관의 애로사항도 눈에 들어올 리 없다. 광현의 볼에 먼저 입을 맞추고 그에게 먼저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며 시대와 신분을 초월한 진보적이고 적극적인 사랑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펼쳐나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가상공간 속에서 환상을 좇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분명히 말한다. 자신과 광현이 현실적으로 결합할 수는 없다고. 그래서 그녀는 광현이 계속해서 출세해 어의 자리에까지 오르기를 간절히 갈망한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신분의 무게가 맞을 때는 결혼할 수 있기 때문에.
 
지녕의 사랑은 지고지순한 희생적 사랑이다. 비록 양반이지만 자처해서 의녀가 됐고 그래서 의생 광현과 엇비슷한 위치에 서있지만 자신이 반가의 규수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는 점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지녕이다.
 
그래서 그녀는 사랑의 표현으로 자신이 가진 의학적 지식을 무한정 광현에게 전수해준다. 그리고 광현이 위험에 빠질 때마다 앞장서 그를 돕는다.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는 광현과는 ‘사랑의 라이벌’인 성하까지 동원해가면서.
 
지녕과 광현은 혜민서 안에서 워낙 가깝게 지내다보니 의원 및 의녀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있는 상태. 하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랑보다는 우정에 가까운 정을 두텁게 쌓는다.
 
그러던 지녕에게 닥쳐온 위기는 자신의 아들 성하와 결혼하라는 양부 이명환의 명령이다.
 
원래 지녕은 관비의 딸이었지만 기구한 운명으로 이명환의 ‘절친’ 강도준의 딸로 뒤바뀐 상황. 명환으로서는 역모죄를 뒤집어쓰고 죽었지만 뒤늦게 복권된 도준이 남긴 재산과 명예를 물려받은 지녕의 배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과 결혼시키려는 것.
 
하지만 지녕의 마음속에는 이미 광현이 깊게 자리한 상황. 끝까지 자신과 안 되겠느냐는 성하의 질문에 지녕은 ‘만약 광현의 마음이 그렇지(사랑하지) 않을지라도 나는 그렇다(사랑한다)’고 자신의 광현을 향한 사랑을 분명하게 밝힌다.
 
이렇게 세 여인의 한 남자를 향한 신분을 초월한 사랑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다. 그래서 시청자는 더욱 긴장해 애간장을 태우면서 이들의 사랑을 지켜본다.
 
사람의 심리라는 게 묘해서 결국은 똑같은 것이지만 그 과정에 따라 결과가 사뭇 다르다. 어떤 것을 얻고자 원할 때 손쉽게 얻으면 금세 싫증을 내겠지만 갈망하고 또 갈구해 천신만고 끝에 어렵사리 성취한다면 그 소중함이 길게 오래가기 마련.
 
지녕의 사랑은 이미 8년전 관비로 있다가 관에서 도망 나와 거리의 부랑아로 살아갈 때부터 시작됐다. 이때 만난 광현이 자신의 발에 짚신을 신겨줄 때부터 사랑이 싹튼 것.
 
지금의 광현이 예전의 그 광현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 속에서 광현의 인간적인 매력과 신분에 비해 아깝기 그지 없는 천부적인 의술에 대해 빠져들며 사랑과 존경심을 마다하지 않으며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것.
 
드라마의 배경은 조선 중기지만 현재에 대입시켜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을 설정이기에 시청자들은 이 사랑에 전율하고 동감한다.
 
천애고아인 한 청년이 한 없이 고운 심성에 정의감을 갖췄고 그 누구보다 뛰어난 의술로 무한한 성공의 가능성을 보인다. 이것은 인간성에 능력까지 겸비했다는 의미로 애인으로서나 남편으로서 훌륭한 자격이다.
 
비록 부잣집 아들은 아니지만 이렇게 올바른 천성에 비전까지 갖고 있다는 것은 자격과 능력이다. 이런 남자를 싫어할 여자는 없다. 재벌가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한 사람들을 비하하고 깔보는 비뚤어진 계급의식을 가진 ‘망나니’보다야 훨씬 인간적이고 경제적인 능력도 의심할 바 없으니 연애하고 결혼생활을 하는 재미가 더욱 클 것이다.
 
지녕은 그런 여자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노력하면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던 신념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무참히 깨지자 자신도 이상한 나라에 들어가 시계토끼를 잡고 청담동에 입성하고자 천박한 성공스토리에 집착하게 되는 SBS ‘청담동 앨리스’의 한세경(문근영)과는 다른, 순수한 사랑을 믿는 여자다.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과연 ‘마의’가 더 현실적일까? ‘청담동 앨리스’가 더 현실적일까? 사랑의 완성 여부를 떠나 두 드라마를 이어가는 여주인공들의 사랑과 성공담은 현실과 확연하게 선을 긋는다.
 
다수의 여자가 꿈꾸는 것은 지위와 부를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의 순수한 감정에 충실하고자 하는 지녕 혹은 숙휘의 사랑이 아니라, 절절한 사랑으로 애원하는 남자마저 내치고 부잣집 사모님의 쇼핑 심부름을 하며 재벌가에 접근해 한번 이혼한 경력이 있는, 다소 나이 많은 재벌집 아들을 꿰차고 청담동에 입성하는데 성공한 서윤주(소이현)의 ‘이상한 나라 입성기’가 아닐까?
 
그런데 한 없이 마냥 행복해야만 할 것 같은 윤주는 지금 행여라도 현재의 ‘지위’를 빼앗길까 좌불안석이다. 왜냐면 그녀의 출신성분은 ‘양반’이 아닌 ‘천민’이기 때문에.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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