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중 갑작스러운 보직 변경이 오히려 팀과 선수 개인에게 커다란 복이 되었다. 셋업맨으로 시즌을 시작했던 대기만성 우완의 이름 앞에는 어느새 ‘선발진 에이스’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데뷔 10년차 만에 최고의 한 해를 보낸 노경은(28, 두산 베어스)의 세밑은 행복하게 바쁘다.
올 시즌 노경은은 42경기 12승 6패 7홀드 평균자책점 2.53(2위)을 기록하며 규정이닝을 채운 국내 투수들 중 가장 좋은 평균자책점의 영예를 안았다. 6월 6일 잠실 SK전부터 선발 아르바이트에 나섰던 노경은이지만 선발로 10승 4패 평균자책점 2.23으로 에이스 위력을 떨쳤다. 알바생이 어느새 팀장급 활약을 선보인 셈이다.
한때 팬들 조차도 외면했던 노경은은 올 한 해를 통해 팀에 없어서는 안 될 투수로 우뚝 섰고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표팀까지 승선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최고 152km의 직구에 144km의 슬라이더, 커브, 포크볼, 151km짜리 투심 패스트볼을 다양하게 던질 수 있는 선발 투수. 안 뽑히는 것이 이상할 정도의 구위와 다양한 구종이다.

덕분에 노경은은 12월 한 달 간 언론사 연말 시상식은 물론이고 일구회 의지노력상 주인공으로도 이름을 올리며 바쁜 세밑을 보냈다. 그 와중에서도 잠실구장을 찾아 개인 훈련에도 집중하면서 반짝 선수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인 노경은이다. 이전까지 노경은은 자율훈련 기간에도 잠실구장을 꾸준히 찾아 구슬땀을 흘렸으나 스포트라이트와는 먼 곳에 있던, ‘잊혀진 유망주’였다.
“정신이 혼란스럽기는 했어요. 여기저기 시상식에 가고 제가 상까지 받고 하니까요. 그래도 상 없이 바쁜 것보다는 상 받으면서 바쁜 것이 훨씬 기분 좋잖아요. 앞으로도 이 긴장감을 풀지 않고 부상 없이 꾸준히 뛰고 싶습니다”.
함께 WBC 대표팀에 승선하게 된 이용찬은 노경은에게 “형은 우리나라 대표팀 3선발 안에 꼭 들 거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이야기에 노경은은 쑥스러운 듯 웃었으나 확실히 기분은 좋아 보였다. 많은 기대 속에 입단했으나 부상과 제구난으로 긴 터널 속에 있었던 노경은은 자신에게 찾아온 봄날에 더더욱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노경은이 자평하는 자신의 2012시즌은 몇 점일까. 노경은은 질문에 “100점 만점에 100점”이라며 다시 한 번 웃었다. 무엇보다 시즌 처음부터 끝까지 1군에서 던지며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의 성과를 거둔 만족감이 컸던 모양이다.
“내년 목표요? 그냥 올해 했던 것보다 하나 더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2승을 했으니 13승이 목표인지 묻자 노경은은 대답 대신 또 한 번 웃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끝이 안 보일 것 같던 터널 속 “저도 잘 되었으면 좋겠네요”라며 씁쓸하게 웃던 노경은은 이제 진심이 담긴 웃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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