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 한국형 블록버스터 수준이 이 정도였나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2.12.28 11: 15

[OSEN=손남원의 연예산책] 한국형 블록버스터란 충무로 식 표현이 있다. 한 편에 수 천억원씩을 쏟아붓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비교해 100~200억 남짓 제작비의 한국영화 대작을 일컫는 말이다.
여기에는 충무로 영화인들의 변명과 자부심이 아이러니하게 섞여 있다. 돈을 적게 들이고도 할리우드에 못지않은 블록버스터를 만들고 있다는 방점과 수십분의 1 정도 제작비를 들인 한국영화에 할리우드 수준을 기대하지 말라는 주문이 한국형 블록버스터 안에 함께 공생한다.
2000년대들어 본격적으로 등장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초창기는 암울했다. 몇 몇 대작들이 흥행에서 참패를 당하면서 충무로에는 '한국에서 블록버스터가 될리가 있나'라는 회의론이 일었다. 조그만 한국영화 시장에서 수 백억원을 들인 영화가 실패하면 제작사는 바로 간판을 내리기 십상이고 투자자도 쪽박을 면치 못한다. 특히 지난 2002년 SF와 판타지, 그리고 액션을 버무린 짬뽕 대작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흥팽 실패는 온갖 악평까지 더해져 지금까지 충무로 영화인들에게 대표적인 한국형 블록버스터 실패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당시로는 파격적인 100억원대 제작비의 '실미도'가 2003년 연말 개봉해 사상 처음으로 천만관객을 돌파했고 이어 '태극기 휘날리며', '괴물' 등이 성공 신화를 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흥행 확률이 높아지는 건 그만큼 제작 노하우와 촬영기술, CG, 마케팅 기법 등이 향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상반기 '도둑들'과 하반기 '타워'의 쌍끌이로 본궤도 진입을 알리고 있다.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은 스피디한 전개와 탄탄한 스토리를 기반 삼아 첨단 CG 기반의 강력한 와이어 액션으로 관객의 마음을 훔쳤다. 한국영화 역대 최다관객 신기록은 그 부상이다.
그리고 연말. 김지훈 감독의 새 영화 '타워'는 재난 블록버스터 역시 할리우드에 비해 손색이 없음을 증명하고 있다. 지난 해 여름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가 물(쓰나미)을 갖고 한국영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더니 올 겨울에는 '타워'가 불(초고층 빌딩 화재)을 소재로 한바탕 신명나는 굿판을 벌이는 중이다. 재난 블록버스터의 3대 축인 물, 불, 그리고 땅 가운데 충무로는 이제 땅(지진)만 남겨뒀다.
108층 최첨단 주상복합빌딩 타워스카이의 폭발 화재를 소재로 한 '타워'의 영상은 할리우드 재난대작들에 견주어 조금도 처지지 않는다. 그 무대가 서울 한복판 여의도고, 서울 최고 부유층들이 산다는 모 주상복합을 패러디한 상황설정 덕분에 '타워'의 관객 흡인력은 할리우드의 그것들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에서 종종 지적되던 스토리의 부재도 안보인다. 설경구 손예진 김상경을 축으로 김성오 박철민 등 주 조연들의 열연과 하모니 또한 흠 잡을 데 없다, 군더더기 빼고 빠르게 진행되는 '타워'의 이야기는 한 번 크게 웃고 눈물 찔끔, 그리고 가슴 찡한 감동의 3박자가 맛깔지게 어우러졌다.
좋은 영화는 관객이 먼저 알아본다.  '타워'는 개봉일인 지난 25일 하루 동안 43만 1,759명을 동원하며 누적관객수 55만 3,311명으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승승장구하던 '레미제라블'의 기세를 제압하더니 이후 박빙의 선두싸움을 벌이며 올 한 해 계속됐던 '한국영화 전성시대'를 이어가고 있다.
'타워'는 지금 한국형 블록버스터에서 '한국형'을 떼어도 상관없을 한국영화의 가능성을 화염처럼 내뿜는 중이다. 활활.
[엔터테인먼트 국장]mcgwir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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