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열자 마음에 온기가 불기 시작했다'
SBS 파일럿 예능프로그램 ‘땡큐’가 지난 28일 베일을 벗었다.
‘땡큐’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세 남자가 여행을 떠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콘셉트로 진행된 리얼리티 토크쇼. 미국 햄프셔 대학 종교학 교수이자 국내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한 혜민스님과 배우 차인표, 전 야구선수 박찬호가 첫 방송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날 세 사람은 각자의 삶에서 느끼는 고민들을 털어놓은 가운데, 최근 30여 년 간의 야구 인생을 마감한 박찬호가 은퇴 소감을 토로해 눈길을 끌었다. 최고의 투수로 이름을 날리다 추락을 경험하고, 또 마지막을 선언하기까지 그가 털어놓은 롤러코스터와 같은 인생담은 새로운 출발을 앞둔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내용이라 눈길을 끌었다.
혜민스님이 털어놓은 ‘값싼 힐링’에 대한 최초 고백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이날 SNS를 통한 대중과의 소통과 이를 토대로 만들어진 베스트셀러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향해 근본적인 변화 없이 얄팍한 위로로 힐링 장사를 한다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 “누군가 버려졌다는 생각을 할 때 혼자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며 “종교인이다 보니 사회 개혁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게 부담스럽고 또한 앞에 나설 용기도 없었다”는 속내를 털어놓으며 눈물을 보였다.
이날 방송은 은퇴를 선언한 박찬호가 SNS 이용자들처럼 혜민스님에게 조언을 구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듯 싶었지만, 오히려 이들은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상대의 고민을 듣는 것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 해결에 대한 강박은 없었고, 그러다 보니 섣부른 결론을 내리는 모습 또한 찾아볼 수 없는 점이 신선했다.
이는 차인표 역시 마찬가지로, 세 사람 중 가장 맏형인 그는 자신의 고민을 토로하기 보다는 혜민스님과 박찬호의 이야기를 그저 묵묵히 들었다. 대신 그는 박찬호와 15년 지기 절친한 사이인 점을 이용해 살얼음이 낀 강으로의 입수를 성사시키고, 혜민스님에겐 “나도 소설을 냈는데 잘 안 팔렸기 때문에 스님의 책을 보고 싶지 않았다”고 농담을 던지는 등 두 사람 사이에서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었다. ‘땡큐’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해 온 인물들을 한 자리에 모아 서로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 하는 콘셉트로 진행되는 만큼, 이들이 처음 만나 친해지기까지 과정을 어떻게 지루하지 않게 그려내느냐 하는 숙제를 남겼다. ‘땡큐’는 방송의 약 절반 가량을 서로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세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지만, 혜민스님의 천진한 웃음과 박찬호의 들뜬 행동에도 지루함을 지울 수 없었다. 이들이 예능인이 아닌 만큼 이 같은 모습은 당연할 수도 있지만, ‘땡큐’가 연예인이 아닌 이들을 섭외 리스트에 올릴 거라면 감수하고 가야 할 치명적 약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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