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야구 역사 상 역대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묵직한 구위를 자랑했던 유망주. 그러나 데뷔 첫 2년 간 혁혁한 성과가 없었고 그나마 포스트시즌에서 제 기량을 과시하던 순간 팔꿈치 부상이 찾아와 수술과 함께 병역의무를 해결했다. 공익근무 소집해제와 함께 두산 베어스 복귀를 눈앞에 둔 성영훈(22)은 기대에 부응하는 투수로서 팀 마운드에 힘을 불어 넣을 수 있을까.
2009년 덕수고를 졸업하고 두산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한 성영훈은 그해 고교 야구 최대어 투수였다. 구종이 많은 투수는 아니었으나 2008년 캐나다 에드먼턴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우승 주역이었고 모교를 이끌며 우승과 MVP를 독식하던 에이스. 서울 연고권을 지닌 두산과 LG의 치열한 영입 경쟁이 예상되었으나 성영훈은 2008년 4월 경 일찌감치 두산과 계약금 5억5000만원에 도장을 찍었다.
그러나 데뷔 첫 2년 간 성영훈이 보여준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1군 통산 24경기 2승 1패 평균자책점 4.33이 현재까지 성영훈의 통산 성적. 손쉽게 150km 이상의 공을 던질 정도로 구위는 뛰어났으나 마음먹은 대로 제구가 되지 않았고 팔꿈치 통증으로 인해 아쉬움을 샀다. 2010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에서 계투 추격조로 가능성을 비췄으나 4차전 팔꿈치 인대 부상으로 인해 급작스럽게 강판했고 결국 이것이 성영훈의 2010년 마지막 등판이 되고 말았다.

완벽한 재활에 1년 반 가량이 걸리는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은 성영훈은 곧바로 공익근무 입대하며 병역 의무에 나섰다. 관악구청에서 성실히 공익근무를 하는 동시에 성영훈은 주말 두산 퓨처스팀 훈련에 합류해 몸 만들기에도 집중했다. 당시 두산이 초빙한 구보 야스오 퓨처스팀 투수 인스트럭터는 성영훈의 몸 상태에도 주목했다.
성영훈과의 첫 만남에서 구보 인스트럭터는 “운동을 쉬는 동안 살이 불어나 저 상태에서 성급하게 불펜 피칭을 하는 것은 무리다. 일단 몸을 실전 투입에 가깝게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밝혔고 이후 성영훈은 체중 감량과 함께 밸런스 맞추기에도 집중했다. 실전 등판이 없던 만큼 공익근무 기간 동안 성영훈의 팔꿈치 부위도 완벽한 재활과정을 거쳤다.
특히 성영훈의 투구 스타일은 구종이 단조로운 편임에도 누구도 따라 하기 힘든 묵직한 직구로 타자를 제압하는 만큼 계투로서 중용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구단 관계자는 “영훈이가 주말마다 퓨처스팀 훈련에 합류해 열심히 훈련했다. 어쩌면 다음 시즌 투수진 최고의 조커는 성영훈이 될 수도 있다”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미 고교 시절 152~153km를 거침없이 던지던 광속 우완 성영훈이다.
선수 본인도 복귀를 기다리며 한결 성숙한 자세로 병역 의무 2년을 마쳤다. 유약한 감이 있던 데뷔 첫 2년과 달리 성영훈이 스스로 난관을 해결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자주 비춰 더 높은 점수를 얻었다는 것이 관계자의 전언. 팬들의 이목을 가장 집중시키기 좋은 광속 우완이 좀 더 강해진 마인드를 갖추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대성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칠 만 하다.
데뷔 전부터 성영훈은 한신의 마무리 '야구 소년' 후지카와 규지(시카고 컵스)를 동경하며 “광속구를 던지는 마무리 투수로 팀 승리를 매조지고 싶다”라는 바람을 밝혔던 바 있다. 두산의 야구 소년을 꿈꾸는 성영훈은 2013년 어떤 모습으로 1군 마운드에 우뚝 설 것인가.
farinell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