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악몽이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2002년 한국시리즈 진출 이후 무려 6명의 감독이 옷을 갈아입었지만 5할 승률조차 요원하다. 매년 똑같은 비난을 받고 또 한 번 각오를 다졌지만 악순환은 그칠 줄 모른다. 올해에는 연초부터 초유의 사건까지 겪었다. 1990년대 리그흥행을 주도했던, 거침없이 질주하던 모습을 되찾기는 요원해 보이기만 하다.
LG의 봄은 언제쯤 찾아올 수 있을까. 어떤 이들은 LG 부진의 이유로 정신력을 꼽지만 사실 호성적을 낼 수 있는 전력 자체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10년 동안 플러스 요인과 마이너스 요인이 함께 일어났고 그 누구도 혼란 속에서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했다.
경기에서 승리하거나 패하는 것은 선수단 책임이다. 그러나 미래는 구단 운영의 주체인 사장과 단장의 손에 달려있다. LG는 감독만큼이나 단장 목숨도 불안한 팀이다.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바뀔 때마다 몇몇 선수들은 새로운 타격폼, 새로운 투구폼을 강요받았고 그룹에서 임명된 신임 단장은 서둘러 결과를 내기 위해 무리수를 두었다. 체계적인 구단 관리가 이뤄지지 않은 채 트레이드된 1.5군 선수 2명이 다른 팀에서 MVP에 오르는 감동 스토리를 썼다.

2011시즌 최악의 추락을 맛본 LG는 김기태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겼다. 전임 김재박 감독과 박종훈 감독이 각각 현대와 두산에서 넘어온 외부인사라면, 김기태 감독은 2010년부터 LG서 2군 감독과 수석코치를 역임했다. 현역 시절 LG 프랜차이즈와 접점이 없었지만 LG 구단은 김기태 감독에게 단계적으로 지도자 코스를 밟게 했다. 프로 최연소 감독으로 다소 이른 선임이라는 평도 많았지만 누구보다 선수단 사정에 밝고 선수들과 함께 호흡할 줄 아는 지도자를 선택했다.

2012년 김기태호의 첫 출항 결과는 실패였다. 이번에도 전력의 한계를 절감하며 여름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7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전 감독들이 겪었던 선수단 불협화음은 없었다. 2012시즌을 앞두고 유망주 투수 두 명이 퇴출됐지만 이들의 혐의는 2011년의 일이었다. 신임 감독이 흔히 겪는 베테랑 선수와의 마찰은 전무했다. 오히려 베테랑들이 솔선수범하며 선후배간의 응집력이 생기기 시작했고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했다.
어느 해보다 많은 2군 선수들이 1군 무대를 밟으면서 새로운 이들이 팀의 주축으로 떠올랐다. 퇴출의 아픔을 겪은 신재웅과 포지션을 잃었던 윤요섭이 각각 선발투수와 주전포수가 됐다. 유망주 꼬리표를 떼기 힘들 것 같았던 유원상은 불펜 필승조로서 봉중근 이후 처음으로 LG 출신 국가대표 선수가 됐다. 지난 10년 중 가장 낮은 불펜 평균자책점(3.69)을 기록하면서 고질병이던 뒷문 문제에 해답을 찾았다.
물론 LG의 전력을 바라보면 여전히 불안요소가 산재해 있다. 센터라인에 대한 물음표가 짙어져만 가는 가운데 2012시즌 최다 실책(96개)을 기록할 정도로 수비가 불안하다. 번트 실패가 반복되며 결정적인 순간 좀처럼 진루타가 나오지 않았고 리그에서 가장 번트 성공 횟수(80개)가 적었다. 타석에서 히트 앤드 런 사인을 수행할 수 있는 타자가 한정적일 정도로 선수간의 기량 차이가 크다. 선발투수진 또한 어린 투수들의 도약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처지다. 때문에 2013시즌 LG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확률을 높게 보기 힘들다.
그래도 분명한 점은 지난 10년 동안 엉성하게 쌓였던 LG라는 탑이 이제야 조직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스토브리그 최대 과제였던 FA 정성훈과 이진영을 붙잡는데 성공했고 우승팀 삼성 불펜진의 맏형 정현욱을 영입했다. 알짜배기 트레이드로 미숙한 센터라인에 경험을 보탰다. 외국인 에이스 주키치와의 재계약도 청신호를 밝힌 상태다. 겨울 내내 백순길 단장은 “김기태 감독의 요구를 충족시켜주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런트가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장단이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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