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플레이오프 때 도루요? 이겼어야지. 우리가 이겼어야 되는데”.
팀이 잘 나갈 때는 그의 활약상이 있었다. 그가 부상으로 자리를 비웠던 순간 팀은 침체기를 걷거나 공격의 실마리가 확실히 풀리지 않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한낱 방출생에서 국가대표 외야수-골든글러브 수상의 영광까지 안았던 그는 선수로서 값진 기회인 프리에이전트(FA) 자격 취득을 앞두고 있다. ‘종박’ 이종욱(33, 두산 베어스)의 2013시즌은 커다란 기회의 장이다.
지난해 이종욱은 121경기 2할4푼 39타점 21도루로 풀타임 주전이 된 이래 가장 안 좋은 성적표를 남겼다. 특히 오뉴월 두 달 간 이종욱의 타율은 1할7푼8리(152타수 27안타)에 그쳤다. 부상으로 인해 2군으로 내려가기도 했으나 타격감이 워낙 안 좋았고 4월을 선두로 마쳤던 두산은 그가 부진의 늪에 빠지면서 중위권으로 떨어졌던 바 있다.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상대 선발 라이언 사도스키의 몸쪽 공에 종아리를 맞아 타박상을 입었음에도 고통을 참고 2루 도루, 득점까지 성공시키는 투혼을 발휘했던 이종욱. 그러나 그의 바람과 달리 팀은 1승 3패로 롯데에게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내주고 말았다. 페넌트레이스 동안의 슬럼프를 단기전에서 만회하려 했던 이종욱의 꿈도 다음 시즌으로 미뤄야 했다.
올 시즌을 마치고 손시헌, 고영민과 함께 FA 자격을 취득하는 이종욱이지만 그는 연봉 800만원 삭감(2억500만원-1억9700만원) 통보를 받고 그대로 도장을 찍었다. 지루한 연봉 협상 씨름 대신 훈련에 더욱 힘을 쏟기로 마음먹고 잠실구장을 찾아 자율 훈련에 몰두 중인 이종욱이다.
“지난 시즌에는 ‘그동안 해왔던 대로 하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뛰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성적은 계속 떨어지고. 제 스스로 나태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상 여파로 인한 변명 대신 이종욱은 자신의 마음가짐이 이전에 비해 소홀했던 것 같다며 반성하는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2009시즌부터 계속 부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돌아보면 ‘부상당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갖다가 오히려 다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고. 내가 생각하는 내 플레이가 제대로 안 나왔어요. 그냥 ‘다치는 것이야 복불복이다’라면서 편한 마음으로, 내 스타일로 뛰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네요”.
시즌 중이던 지난 6월 28일 이종욱은 오른손 소지 골절상으로 인해 재활군에 있던 선배 임재철로부터 주장 완장을 물려받았다. 선수단을 통솔해야 하는 주장으로서 이종욱은 시즌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슬럼프가 계속되던 도중 갑작스럽게 받은 주장 완장은 이종욱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마음가짐이 확실히 달라졌어요. 명색이 주장인데 나 자신이 야구를 못하면 후배들에게 쓴소리나 충고를 할 수가 없으니까. 책임감과 의무감이 더해진 것이지. 그래도 그 생각 때문이었는지 주장이 된 이후로는 성적이 조금 올라갔어요. 물론 시즌 전체 타율은 낮았지만”. 부주장이었던 4~6월 이종욱의 타율은 2할1푼5리에 그친 반면 주장 완장을 찬 이후인 7월부터 시즌 종료 시까지 그의 타율은 2할6푼5리였다.
2003년 현대에 입단했으나 1군에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상무 입대한 뒤 전역과 함께 방출 통보를 받았던 이종욱. 손시헌의 추천 속 2006시즌을 앞두고 두산에 어렵사리 입단한 이종욱은 테이블세터와 주전 외야수 자리를 꿰차며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올 시즌을 마치면 선수로서 커다란 기회인 FA 자격을 얻는다. 그만큼 중요한 한 해다.
“부담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FA인데. 모든 선수들이 그 FA 자격을 얻기 위해 다들 노력을 하고 있으니까. 편하게 하려고 해요. 주위에서도 크게 부담갖지 말고 편하게 하라고. 마무리훈련 때부터 계속 내가 좋았을 때 했던 것을 떠올리고 기억하면서 그 모습을 확실히 새겨놓기 위해 황병일 수석코치님이랑 계속 매달렸습니다”.
FA를 앞둔 선수인 만큼 목표에 대한 성취욕이 높은 것은 당연한 일. “나 대박 칠 수 있을까”라며 웃은 이종욱은 “지난해 못했던 것을 다시 보여주며 업그레이드 시키겠다”라고 밝혔다. 데뷔와 함께 승승장구한 스타가 아니라 방출의 칼날을 맞고 다시 일어선 선수인 만큼 이종욱이 성공적으로 FA 자격 시즌을 마친다면 다른 선수들에게도 동기부여는 충분하다.
“전체적인 기량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해요. 저 지난해 여기저기 다 들어가봤어요. 7번 타자도 하고, 9번 타자도 하고. 지난해 제대로 못 했던 것을 이번에 제대로 만회하고 싶습니다. 내 자리 뺏기지 않으려 긴장하고 더욱 노력해야지요. 꾸준하게 기복 없이 제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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