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2013년의 ‘투고타저’ 가능성과 그 이유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3.01.07 07: 00

전국의 대학교수들이 설문조사 형식을 빌어 매년 선정하곤 하는 새해의 사자성어로 올해는 ‘제구포신(除舊布新)’이 선택되었다고 한다.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펼쳐낸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만 1년 전인 2012년에 뽑혔던 새해의 사자성어는 바로 ‘사악한 생각은 버리고 올바른 도리를 따른다’라는 뜻의 ‘파사현정(破邪顯正)’. 그러나 2012년 한 해가 끝날 무렵 선정된, 그 해를 한 마디로 대변한 사자성어는 ‘온 세상이 흐리고 탁했다’라는 부정적 의미 가득한 ‘거세개탁(擧世皆濁)’이었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표출하고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고와 반성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지향하자는 취지로 재미 삼아 골라보는 시사 사자성어에는 언제나 그 시절의 시대상이 담겨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야구에도 이와 비슷한 시대상을 반영하는 사자성어가 존재한다.

이름하여 ‘투고타저’ 또는 ‘타고투저’. 야구경기를 지탱하는 두 개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투수력과 타력 중, 어느 한쪽이 득세함에 따라 자연 다른 한쪽이 위축되는 형태를 일컫는 야구계의 사자성어다.
아홉 번째 구단인 NC 다이노스의 합류로 홀수 팀 체제하에 펼쳐지게 될 2013년 프로야구 판을 두고 새해 사자성어로 요즘 ‘투고타저’가 대세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이 미리 그려보는 2013년의 야구시대상이 이처럼 ‘투고타저’로 귀결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고, 그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되는지, 조목조목 들여다보도록 한다.
2013년 투수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할 것이란 예상은 우선 홀수인 9개 구단으로 리그가 치러지는 까닭에 한 팀씩 돌아가며 휴식기를 가져야 하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가장 먼저 출발하고 있다.
지난해 한번 발표된 경기일정이 특정 구단에 불리하게 짜여졌다는 사실로 재편성에 들어가야 했던 가장 큰 이유도 휴식기를 가진 팀과의 대진 수 배분에 얽힌 불평등 문제였다. 쉬고 나온 팀이 계속 경기를 치러오고 있는 팀과의 대결에서 충분히 비축된 투수력을 앞세워 옥죄고 들 경우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 밖에 없는데, 그 불리함의 횟수가 다른 구단과 너무 차이가 많다는 것이 이의제기의 주된 골자였다. 이는 리그가 짝수구단으로 운영되지 못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단점들 중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개막도 하기 전에 문제가 불거지고 만 것이다.
전년대비 팀 당 경기수가 늘어난 것도 아닌데 각 구단의 1~2선발급 등판 횟수와 다승기록이 불어날 것으로 예측하는 이유도, 심지어는 20승 투수의 출현을 조심스레 예상하는 이유도 휴식기를 전후해 앞뒤로 에이스급 투수를 연거푸 내세울 수 있다는 점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여기에 쉬고 나온 팀과의 대결 못지 않게 또 한가지 무시할 수 없는 일정상의 변수는 앞으로 쉴 팀과의 대진이다. 상대가 보장된 휴식기를 무기로 가용 가능한 투수들을 승부처에 요긴하게 내세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공정한 승부를 겨루는데 있어 부정적 요인이다.
비근했던 예로 우리는 2011년 7월 6~7일 양일간 LG가 대전 한화전에서 당시 선발보직에 있던 박현준과 주키치를 전격 마무리로 내세워 2연승을 따낸 것을 기억하고 있다. 물론 LG가 이후 휴식기가 보장된 팀은 아니었지만 당시 장마철로 경기가 들쭉날쭉하던 시기라 비축된 투수력을 다른 곳으로 돌려 가동했던 일이다. 이후 LG는 올스타 휴식기를 앞둔 전반기 마지막 넥센과의 3연전에서 또 한 명의 외국인 선발투수였던 리즈를 마무리로 마운드에 올리기도 했었는데, 이러한 패턴의 투수기용이 잦아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주기적인 휴식기는 체력적으로는 도움이 되겠지만 타자들의 타격 감과 컨디션 유지에는 아무래도 걸림돌이 될 수 밖에 없다. 특히나 연속경기 안타와 같은 연속성이 성패를 좌우하는 기록에는 끊어진 경기일정이 치명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이래저래 휴식기는 투수들에게는 유리, 타자들에게는 불리한 부분이 좀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휴식기 외에 투고타저를 예상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외국인 투수들의 득세다. 외국인 선수들이 한국프로야구에 첫 발을 내디뎠던 1998년 이후, 그라운드에서 외국인 타자를 한 명도 만나볼 수 없었던 해는 지난해(2012)가 처음이었다. 근래 뛰었던 외국인 타자들의 영양가가 부실했다는 점도 있지만, 각 팀마다 부족한 투수력을 외국인 투수로 메우려다 보니 벌어진 현상이었다.
그 결과 작년엔 16승의 나이트(넥센)를 비롯 무려 8명의 외국인 투수가 다승 10걸 안에 이름을 올리는 결과표로 이어졌다. 탈보트와 고든이라는 수준급 외국인 선발투수 2명을 가동해 우승을 일군 삼성을 비롯, 유먼과 사도스키(롯데), 니퍼트와 프록터(두산) 등의 외세를 앞세운 팀들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데 성공했고, 비록 4강에 오르지 못한 대부분의 팀들에서도 외국인 투수들은 전력의 절대치를 차지했다.
지난해 한국프로야구의 전체 팀 타율은 2할 5푼 8리, 리그 전체의 평균자책점은 3.82였다. 2006년의 2할 5푼 5리 이후 팀 타율이 6년 만에 5푼대로 떨어졌다. 반면 리그 평균자책점은 2007년 이후 5년 만에 다시 3점대로 낮아졌다.
예년의 경우 대개 3점대 후반이나 4점대 초반의 기록이면 평균자책점 10걸 안에 이름을 걸 수 있었지만 작년 10위에 오른 배영수(삼성)의 평균자책점은 3.21이었다. 타율에서도 4할을 들락거렸던 김태균(.363)을 제외하면 3할 2푼대 이상을 기록한 타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1986년 리딩히터 삼성 장효조(.329) 외에 아무도 2푼대 이상 올라서지 못한 이후 처음이었다. 이러한 결과들에 외국인 투수의 영향이 지대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신생 팀에 대한 특혜로 한시적으로 외국인 선수 보유수를 3명으로 늘려준 NC 다이노스를 포함, 또 한번 9개 전 구단이 외국인 선수를 모두 투수로 선발한다는 소식이다. 지난해 16명에 3명을 더해 무려 19명이라는 이방인 투수들이 한국 무대로 몰려드는 셈이다. 가뜩이나 대형타자의 부재로 고전하고 있는 공격력이 더욱 심한 견제를 받게 된 것이다.
프로야구의 백미는 투수전에 있다고 하지만 다양한 볼거리와 흥미를 생각하면 당장 대가 끊겨버린 외국인 타자 공백은 상당히 아쉬운 대목이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일본프로야구에서 채택하고 있는 외국인 선수 관련규정인 1군 등록 허용수 4명을 모두 같은 형태의 선수로 구성할 수 없다(4명 모두 투수나 야수의 어느 한쪽으로만 등록 불가)라는 조항이 새삼 부럽게도 느껴진다.
마지막으로는 대형타자의 숫적 부재와 질적 저하를 들 수 있겠다. 2012년 장타율 1위는 30홈런 100타점을 기록한 정규리그 MVP 박병호였다. 기록은 5할 6푼 1리. 그러나 1990년 장종훈의 5할 4푼 5리 이후 최저치다. 지난해의 리그 전체 홈런수도 615개에 그쳤다. 1993년 504경기 체제에서 552개가 기록된 이후 19년 만에 최저치다.
전체적인 홈런 그래프도 최근 해가 갈수록 아래로 곤두박질 치고 있다. 2009년 1155개를 정점으로 990-770615로 대폭 감소추세에 있다. 투수들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는 타자들이 그만큼 줄었다는 반증이다. 이대호의 일본진출 이후 홈런왕 경쟁은 30개 턱걸이에 눈높이가 검소하게 맞추어져 있다.
아쉬운 대로 지난해 전설적 홈런타자가 되기에 이미 충분한 자격을 갖춘 이승엽(삼성)이 일본으로부터 복귀했지만 파워는 화려했던 예전의 그가 아니다. 여기에 담장을 뒤로 더 밀어낸 대전구장의 구조변경 악재까지. 2013년 투타 균형은 어디를 살펴봐도 무게의 저울추가 투수 쪽으로 기울어지는 느낌이다.
그러나 예상은 어디까지나 예상일뿐. 2012년 박병호(넥센)가 그랬듯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선수가 튀어나올 수도 있고, 김상현(KIA)이나 최형우(삼성) 등의 경험 있는 타자들이 부활된 공격력을 보여줄 가능성도 있다. 두산의 포스트 김동주로 평가 받는 신흥 4번 타자 윤석민에게도 눈길이 쏠린다. 그 어떤 길이 되었건 2013 시즌이 끝났을 때 ‘투고타저’라는 시즌 전 사자성어 예언이 꼭 들어맞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2012년 타격왕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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