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심 끝에 선발한 외국인 선수가 개인사유로 뛰지 못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해당 팀의 일대 혼란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당사자인 SK의 표정은 그렇게 어둡지 않다.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가능성도 보인다.
다음 시즌 SK의 새 외국인 선수로 내정되어 있었던 왼손 투수 덕 슬래튼(33)은 지난 7일 SK 측에 “야구를 못하게 됐다”라고 전했다. 사실상 먼저 계약 파기를 요청한 것이다. 일찌감치 외국인 선수 인선을 마감하고 다음 시즌 구상에 골몰했던 SK로서는 날벼락이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외국인 악몽’이 되풀이 될까 전전긍긍이다.
SK는 당분간 지켜본다는 계획이다. SK의 한 관계자는 “몇몇 언론보도처럼 계약이 완전히 깨진 것은 아니다. 에이전트가 확인 중이다”라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교체로 흘러가고 있다. 이 관계자는 “한국에 오기 싫어 거짓말을 한 것 같지는 않다. 그 경우 소송 문제 때문에 아무리 못해도 최소 1~2년 정도는 야구를 쉬어야 한다”면서 “연락이 오는 대로 후속조치를 밟을 생각이지만 아무래도 교체되지 않겠나”라고 예상했다.

슬래튼은 다음 시즌 SK의 다목적 카드로 주목받았다. 잘 적응할 경우 팀의 불펜 약화와 왼손 부재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자원이었다. 이만수 SK 감독은 7일 신년식 후 기자들과 만나 “일단 정우람이 빠진 불펜에서 활용할 계획이지만 스프링캠프에서 직접 던지는 것을 본 뒤 보직을 최종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하루 만에 백지화될 위기에 놓였다.
분명 어려운 상황이다. 이미 쓸 만한 외국인 선수들은 대부분 제 갈 길을 찾아갔다. 새로운 선수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SK는 스카우트 팀을 미국에 파견하는 대신 슬래튼 영입 전 접촉했던 선수들의 상황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이 리스트 안에서 새로운 외국인 선수가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마리오 산티아고의 재영입설도 있지만 어려워보인다. 마리오는 최근 트리플A팀과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표정 자체가 아주 어둡지는 않다. 더 좋은 선수를 뽑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사실 크리스 세든에 비해 슬래튼의 내부 평판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왼손이라는 장점에 변화구 구사능력이 좋지만 기본적인 구속이 문제였다. 슬래튼의 평균 직구 구속은 130㎞대 후반으로 국내 선수들과 큰 차별성이 없다. 이만수 감독도 “폼은 조금 까다로운데 공이 천천히 온다”라고 다소간 걱정을 내비쳤다. 올해 한국에 입성하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최근 경력이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니다.
한편으로는 타 구단 행보에 위기의식도 있었던 SK다. SK는 넥센에 이어 두 번째로 빨리 외국인 영입을 마무리 지었다. 그런데 그 후 다나 이브랜드(한화), 스캇 리치몬드(롯데), 켈빈 히메네스(두산), 릭 반덴헐크(삼성) 등 수준급 선수들이 속속 계약을 맺었다. 이 중에는 SK도 관심을 보였지만 금액 문제로 놓친 선수도 있었다. 이에 자극 받은 SK가 남은 외국인 카드 한 장으로 마운드 강화에 나설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