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많은 경기에 나가야지요. 못하면 출장 기회 자체가 없잖아요”.
데뷔 후 그의 5년은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첫 해 팔꿈치 부상으로 대부분을 2군에서 보낸 뒤 2~3년차 시즌 2년 연속 홀드 2위를 기록하며 A급 계투로 올라섰다. 그러나 최근 2년 간은 부상으로 인한 구위 저하로 인해 중용되지 못했고 결국 팀의 보호선수로 지명되지 못하고 신생팀 이적했다. NC 다이노스 계투진의 주축 중 한 명으로 기대되는 사이드암 고창성(29)은 와신상담의 마음으로 2013시즌을 기다리고 있다.
선린인터넷고-경성대를 거쳐 2008년 두산에 2차 2라운드 입단한 고창성은 2009년 5승 2패 1세이브 16홀드(2위) 평균자책점 1.95의 특급성적을 올렸다. 생애 한 번 뿐인 신인왕 타이틀을 당시 구원왕(26세이브) 이용찬(두산)에게 내주기는 했으나 경기 내용으로 따지면 고창성도 신인왕감으로 충분했다. 2010년에는 22홀드(2위)로 홀드왕(23홀드) 정재훈과 함께 두산의 핵심 계투로 자리를 굳힌 동시에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도 함께한 고창성이다.

그러나 2011~2012시즌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2011년 1승 4패 14홀드 평균자책점 4.44로 다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줬던 고창성은 지난 시즌 3승 2패 3홀드 평균자책점 8.62에 그쳤다. 팔꿈치 부상과 무릎 부상, 아킬레스건 통증 등 여러 부위가 안 좋아 제 구위를 확실히 보여주지 못한 고창성은 결국 지난해 11월 15일 20인 보호선수 외 신생팀 특별 지명을 통해 NC 유니폼을 입었다.
새로운 집을 얻는 대신 후배들과 숙소 생활을 택한 고창성은 “대학교도 부산에서 나왔다. 이 곳에 적응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라며 “공은 지난 2년 간도 계속 던졌다. 몸 만들기와 팀 적응도 잘 되고 있으니 야구 잘 하는 것만 남았다”라는 말과 함께 웃었다. 부상이 있기는 했으나 수술대에 오를 정도로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라는 뜻이다.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어떻게든 경기 출장을 강행하다보니 아쉬운 모습을 보였던 것 같아요. 직구 움직임이 예전만큼 안 나왔던 것이지요. 팔꿈치도 그렇고 무릎 상태도 안 좋았어요. 저 말고도 다른 사이드암 투수들도 무릎 부상은 고질적으로 겪는 일이고. 대학 시절부터 통증이 있기는 했는데 최근에는 심해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야구를 못 할 정도는 아니고 애매했어요. 한 발 짝 물러서서 몸을 만드는 데 집중한 뒤 마운드에 올랐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
신예 선수들이 대부분인 NC로 이적하면서 고창성은 선수단의 분위기를 잡아가고 후배들을 중간 입장에서 통솔해야 하는 위치가 되었다. 아직 시즌이 열리지 않은 만큼 고창성은 새 소속팀인 신생팀을 바라보며 ‘야구는 해 봐야 안다’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모든 선수들이 다 잘 하고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주위에서 신생팀이라 약할 것이라는 예상들을 내놓으시는 데 야구는 해 봐야 알아요. 따지고 보면 1등 팀과 최하위 팀의 수준차는 생각만큼 그렇게 크지 않아요. 종이 한 장의 차이랄까. 좋은 선수들도 많고 다들 운동도 열심히 하니까요”.
2년 연속 홀드 2위를 기록했던 2010시즌 이후라면 그의 목표는 홀드 타이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2년 간 침체기를 걷고 나서 새로 시작하는 입장. 그만큼 고창성은 몇 승, 몇 홀드, 몇 세이브가 목표가 아니라 그저 가능한 한 많은 경기에 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최대한 많은 경기에 나가서 잘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제가 야구를 못하면 출장 기회 조차 없으니까요. 특별히 힘들거나 하지는 않아요. 제 스스로 타자와 대결을 펼치고 싸우는 것을 재미있어하는 스타일이라. 많은 경기에서 타자들과 재미있게 싸우고 싶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꼭 이 팀에서 우승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두 차례 포스트시즌을 치르면서 안 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재미있고 즐거운 기억이었거든요. 우승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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