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정유진 인턴기자] KBS 2TV 수목드라마 ‘전우치’를 보다 보면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들이 문득 문득 스쳐지나갈 때가 있다. 폐위된 어린 중전과 왕의 애틋한 사랑, 잠행을 나간 왕을 대신해 용상에 앉아 왕 노릇을 하는 천민, 왕을 호위하는 다모와 종사관의 사랑 등 과거 유명 작품들을 통해 사랑받았던 설정들이 깨알같이 드라마의 구석구석에 자리를 잡아 즐거움을 주는 것.
지난 10일 방송된 ‘전우치’에서는 억울한 누명으로 죽은 아버지로 인해 폐위된 중전(고주연 분)이 사가에서 고초를 당하는 이야기가 그려졌다. 악당들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서도 중전은 아름다운 마음을 놓지 않았고, 거지 떼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적인 좌상(김병세 분)을 마주대할 정도의 용기를 보여줬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르게 된 젊은 왕 이거는 죄 없이 내쳐진 부인을 그리워하며 그에게 은수저를 보내는 등의 애틋함을 드러냈다.
이는 지난 해 인기리에 종영한 MBC ‘해를 품은 달’을 연상케 한다. 권력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서로를 그리워하는 어린 세자 이훤(김수현 분)과 허연우(한가인 분)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신분을 잃어버리고 죽음의 위협 앞에서 허연우가 겪어야 했던 고생담 등은 ‘전우치’의 왕 이거와 중전의 이야기를 닮았다. ‘해를 품은 달’이 아역스타 여진구와 김유정을 배출했던 것처럼 ‘전우치’의 풋풋한 커플 안용준과 고주연에 대한 시청자들의 평도 후한 편.

이날 왕의 다모 은오(주연 분)와 내금위 종사관 서찬휘(홍종현 분)의 수줍은 로맨스 역시 눈길을 끌었다. 극 중 서찬휘와 함께 훈련을 하던 은오는 날카로운 칼에 손을 베이는 부상을 당했고, 이를 걱정해주는 서찬휘와 수줍어하는 은오 사이에서 미묘한 기류가 흘렀던 것.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 전우치는 “하던 것 계속하라”라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자아냈다.
이러한 다모와 종사관의 사랑은 애초 ‘다모’라는 개념을 처음 대중에 알린 2003년 드라마 ‘다모’의 추억을 되살리게 한다. 당시 채옥(하지원 분)과 종사관 황보윤(이서진 분)의 사랑은 “아프냐, 나도 아프다” 등의 유행어들을 만들며 큰 인기를 얻었었다. 드라마 ‘폐인’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을 정도. 함께 왕을 호위하며 사랑을 키워가는 은오와 서찬휘의 로맨스는 다모와 종사관의 사랑이란 점에서 ‘다모’의 설정과 비슷하다.
더불어 지난달 27일 방송된 ‘전우치’에서 이치의 방자 봉구(성동일 분)의 깜짝 변신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폭소를 안겼다. 신분을 숨기고 궐 밖으로 나가는 왕 이거를 대신해 용포를 입고 왕의 자리에 앉은 봉구는 왕의 음식을 맛보고 자신의 입에 맞지 않자 "이봐라. 이 떡을 만든 자를 불러다가 목을 따라"라고 소리치는 등 왕의 역할에 푹 빠진 모습을 보였다. 봉구의 촐싹거림을 잠재운 것은 내시부 상선인 소칠(이재용)의 카리스마. 봉구는 소칠의 위엄에 눌려 얌전한 모습을 보였다.
봉구의 이러한 모습은 지난해 천만 영화 신화를 만든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를 떠오르게 한다. 왕의 자리에 앉아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시간을 즐기던 광해 하선(이병헌 분)은 도승지 허균(류승룡 분)의 위엄에 눌려 눈치를 보는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줬다. 영화를 기억하는 시청자들에게 왕과 옷을 바꿔 입은 봉구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광해’의 하선의 모습에 비춰지며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왕과 왕비, 다모와 종사관, 방자의 이야기는 악당 마숙(김갑수 분)과 강림(이희준 분)에게서 조선을 구하는 도사 전우치의 활약을 그린 ‘전우치’에서 주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드라마 곳곳에 다양한 인물들의 색다른 이야기들을 과거 인기 작품의 설정과 살짝 결합한 것은 패러디와 같은 효과를 낳으며 잔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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