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환 사례서 본 불펜투수의 가치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3.01.13 07: 12

연봉을 놓고 힘겨루기에 들어갔던 오승환(31, 삼성)이 도장을 찍었다. 그러나 오승환이 불러일으킨 불펜투수의 가치 논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삼성은 11일 오승환과 2013년도 연봉 협상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2012년 3억8000만 원에 비해 1억7000만 원(인상률 44.7%)이 오른 5억5000만 원에 계약했다. 현재까지 발표된 투수 연봉 중에서는 김병현(넥센·6억 원)에 이어 2위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계약 과정의 이야기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결국 구단 제시액에 도장을 찍은 셈이 됐다. 오승환은 지난해 첫 협상 당시 삼성이 제시한 5억5000만 원 제시안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삼성은 “충분히 가치를 인정했다”라는 판단 하에 더 이상의 안은 내놓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승환은 지난해 37세이브를 거두며 2년 연속 구원왕에 올랐다. 블론세이브는 단 한 번에 불과했다. 삼성의 든든한 수호신으로서 한국시리즈 2연패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구단도 이 공을 인정해 고액연봉임에도 40%가 넘는 인상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오승환은 내심 그 이상을 생각했다. 국내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했다.
이 과정에서 논란이 일었다. 현실론과 명분론이 맞섰다. 현실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불펜투수가 과연 최고 연봉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 정도 금액이면 자존심을 세워주기에 충분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반대의 지점에서는 “상징성과 팀 공헌도를 감안하면 못할 것도 없다”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불펜투수의 몫이 강조되고 있는 시점에서 경기를 편안하게 마무리하는 오승환의 무형적 가치도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어쩌면 큰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오승환이기에 가능한 논란일 수도, 또 가능한 금액일 수도 있다. 다른 불펜투수들은 여전히 ‘고과’라는 틀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구단 관계자는 “오승환이라는 상징적 존재감은 분명 인정할 수 있다. 삼성도 이를 감안했을 것”이라면서도 “냉정하게 고과를 놓고 따져 보면 불펜투수들은 선발투수들에 미치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한 선수의 고과는 100가지 이상의 틀로 나뉘어 산출된다. 물론 구단마다 가중치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핵심적인 가치는 큰 차이가 없다. 투수로 치면 ‘승리’와 ‘이닝’이다. 이 중 승수는 보직에 맞게 다른 틀로 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닝은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출전 경기수가 대체 자료가 되곤 하지만 “많은 이닝을 던질수록 팀에 더 많은 공헌을 했다”라는 명제는 고과 시스템의 진리 중 하나다.
한 관계자는 “지난해 고과만 따지고 보면 장원삼이 오승환보다 더 높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팀이기는 하지만 장원삼보다 나이트의 고과가 더 높은 것은 당연하다”라고 덧붙였다. 장원삼은 지난해 157이닝을 던졌다. 반면 오승환이 소화한 이닝은 55⅔이었다. 나이트는 무려 208⅔이닝을 던졌다. 다승왕과 구원왕의 가치가 비슷하다고 전제한다면, 또 선발투수의 가치가 비슷하다면 역시 소화이닝이 고과 산정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펜투수들은 여기에 항변한다. 불펜에서 대기하는 시간을 합치면 선발투수들 못지않은 체력적 소모가 있다는 뜻이다. 위기 상황에 올라 불을 꺼야 하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며 스스로를 “3D 보직”이라고 말하는 선수도 있다. 불펜투수들은 이런 공헌도가 고과 시스템에는 잡히지 않는다며 불만을 털어놓기 일쑤다. 그나마 삼성과 SK는 후한 편이라고 입을 모은다. 나머지 팀 불펜 투수들의 박탈감은 더 크다. 또 중간과 마무리 사이에서도 온도차가 있다.
메이저리그(MLB) 경우는 선발투수들의 연봉이 불펜투수들보다 확연히 높다. 반면 일본은 꼭 그렇지는 않다. 상징성에 따라 불펜투수가 최다 연봉자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그 중간 지점에 있다. 오승환의 사례가 이를 증명했다. 그렇다면 과연 불펜투수의 정확한 가치는 어디쯤에서 판단해야 할까. 아직 계약하지 않은 안지만(삼성) 박희수(SK)의 금액에서도 이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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