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새 월화드라마 ‘야왕’(극본 이희명, 연출 조영광)이 지난 14일 베일을 벗었다. 찬란하게 사랑했던 두 남녀는 결국 서로에게 총구를 겨눴고, 한 사람이 죽음으로서 다른 한 사람까지 생명을 잃는 처절한 치정극이 예고되며 정통멜로드라마의 묵직한 첫인상을 남겼다.
‘야왕 첫 방송에서는 특별검사 하류(권상우)가 100억 대의 후보 매수 사건의 주범으로 영부인 다해(수애)를 지목해 청와대를 압수수색하는 모습이 그려진 가운데, 이들이 이러한 결말을 맞닥뜨리기 전 서로 얼마만큼 사랑하는 사이였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가슴시린 첫 만남의 순간이 데칼코마니처럼 펼쳐졌다.
두 사람이 이러한 역사를 갖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불운해도 너무 불운한 다해의 운명이었다. 다해는 지독한 가난에 부모님을 잃고, 의붓아버지에게는 성폭행을 당하며 지옥 같은 삶을 사는 인물이었다. 자신을 둘러싼 이 같은 환경에 “재수 없는 아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고, 자포자기하듯 화류계에 몸을 맡길 결심을 하지만 위기의 순간마다 다해를 구한 건 건강하고 우직한 하류의 순정이었다.

하류는 말굽을 만드는 장제사를 꿈꾸는 청년으로 하루하루 건실하게 살았지만, 우연히 7년 전 보육원에서 헤어진 다해를 맞닥뜨리고 그녀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씩 내어주며 운명의 실타래를 엮어가고 있었다. 다해가 장례비가 없어 죽은 엄마의 시신을 붙들고 있는 첫만남의 순간부터 대학에 입학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경제적 뒷바라지를 하는 것까지 하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해의 인생을 지탱하는 정신적·물질적 기둥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두 사람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운 것은 다해를 찾아온 의붓아버지로, 성폭행의 악몽을 떨쳐버리지 못한 다해는 결국 그를 살해함으로서 격류에 휘말리게 됐다. 방송 도입부에 등장한 검사가 된 하류가 “살인자 영부인”이라고 일갈한 순간 여유만만 하던 다해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진 장면을 통해 이 사건이 두 사람의 운명은 물론, 죽고 못 사는 관계마저도 바꿀 중대한 영향을 암시했다. 여기에 다해가 권총을 발사하고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죽어가는 하류의 모습은, 찬란했던 사랑을 거쳐 두 사람의 운명이 결국은 비극으로 끝날 것을 예고하며 만만치 않은 정통멜로드라마의 묵직한 무게를 느끼게 했다.
비극의 한복판에 선 연인 하류와 다해로 분한 권상우와 수애는 ‘야왕’의 이 같은 깊은 우물 같은 전개를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전달하며 앞으로 펼쳐질 운명의 소용돌이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한 여자를 위해 헌신하다 끝내 권총을 맞고 눈물을 흘리며 인생을 마감하는 하류와, 불운의 한복판에서 종래에는 청와대의 안주인이 돼 우아함 속에 야망의 눈빛을 번뜩이는 영부인 다해의 모습은 ‘야왕’의 향후 전개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이유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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