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커리어를 빛낼 수 있는 시작의 무대다. 한편으로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화려한 커리어에 유종의 미를 찍을 수 있는 끝의 무대다. 이처럼 의미는 다르지만 바라보는 지점은 똑같다. 우승이다. 윤석민(27, KIA)과 이승엽(37, 삼성)이 의기투합한 대표팀이 본격적인 항해에 나섰다.
오는 3월로 예정된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할 야구 대표팀이 15일 출정식을 가졌다. 사실 객관적인 전망은 그렇게 밝지 않다. 류현진(LA 다저스) 추신수(신시내티) 등 해외파 선수들이 개인사정을 이유로 대표팀 합류를 고사했다. 김광현(SK) 봉중근(LG) 등 부상자들의 이탈 여파도 크다. 완전한 전력이 아니다.
그래도 국제무대에서 저력을 발휘했던 대표팀이다. 모두가 “힘들 것”이라고 할 때 투혼을 발휘하며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지난 두 차례 WBC에서의 성적, 그리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이 이를 증명한다. 그렇기에 기대치는 결코 작지 않다. 그 중에서도 윤석민과 이승엽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투·타의 핵심 선수로 대표팀을 이끌어가야 하는 막중한 책무가 두 선수의 어깨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두 선수 모두에게 이번 대회는 의미가 각별하다. 물론 윤석민도 대표팀 경력은 적지 않은 선수다. 그러나 명실상부한 ‘에이스’로 출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에는 류현진과 김광현이 있었다. 두 선수가 없는 대표팀에서 윤석민의 몫은 매우 중요하다. 강호들을 상대로 등판해 승리의 발판을 놔야 한다.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임무지만 어찌 보면 영광스러운 임무일 수도 있다. 이를 잘 아는 윤석민의 눈빛도 빛나고 있다.
해외 진출도 걸려 있다. 윤석민은 2013년 시즌 후 완전한 FA 자격을 얻는다. 벌써부터 메이저리그(MLB) 진출설이 솔솔 나오고 있다. 윤석민은 지난 2회 대회 당시 베네수엘라와의 4강전에서 호투하며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그 때와 같은 활약상을 재현한다면 MLB 스카우트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다. 대표팀의 성적은 물론 스스로의 꿈을 위해서라도 이번 대회는 중요하다.
윤석민이 이번 대회를 통해 화려한 커리어를 시작하려 한다면 이승엽은 감동적인 마무리를 꿈꾼다. 이승엽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등 수많은 국제무대에서 대표팀의 간판 타자로 활약했다. 그리고 위기 때마다 팀을 구해내는 장타로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국민 타자’라는 호칭은 오직 이승엽에게만 허락된 영광이다. 이번 대회에서 마무리를 잘 짓는다면 완벽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5년 만에 다시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이승엽은 이번 대회를 태극마크의 마지막 기회로 생각하고 있다. 38살의 나이를 감안하면 정중히 고사할 수도 있었지만 대표팀의 부름에 주저 없이 응했다. 물론 김태균(한화) 이대호(오릭스) 등 1루에는 쟁쟁한 경쟁자들이 많다. 하지만 이승엽의 ‘해결사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대표팀 상징으로서의 비중도 가볍지 않다.
두 선수 모두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윤석민은 “이번 대회에도 몸을 빨리 만들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목표다”라며 에이스로서의 책임감을 내비쳤다. 이승엽도 “국가를 대표해 나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해 기적을 만들어내겠다”고 굳은 각오를 드러냈다. 시작과 끝을 향해 달려가는 두 선수의 활약상에 대표팀의 성적도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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