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난화에 따른 북극 해동의 여파로 바다의 수증기가 공기 중으로 유입되어 많은 눈구름들이 만들어졌고, 이로 인해 시베리아에 많은 눈이 내림으로써 시베리아 일대지역이 냉대화되며 찬 고기압이 유난히 발달한 때문이다.”
27년 만의 강추위에 한반도가 꽁꽁 얼어붙은 1월, 기상청은 한파의 원인을 이렇게 분석하고 있었다.
1940년대 유고 세르비아의 물리학자였던 밀루틴 밀란코비치의 빙하기주기 이론가설에 의하면 지축의 기울기가 주기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대략 10만년에 한 번씩 지구에 빙하기와 간빙기가 교대로 찾아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처럼 지구에 빙하기가 주기적으로 나타나듯 야구에도 일정의 주기를 갖고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저온현상이 존재하는데, ‘투고타저’ 현상이 바로 그와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올해로 출범 32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한국프로야구의 전황 기상예보는 때마침 온통 투고타저 일색이다. 불규칙적인 경기일정과 투수 일변도의 외국인투수 대거 유입, 대형타자층의 상대적 빈곤과 스몰 볼의 득세 그리고 약체로 평가 받는 신생팀의 1군 합류 등등을 근거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투수력의 절대 우위를 점치고 있다. 프로야구에 간빙기 또는 빙하기가 도래하고 있음을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투수력이 타력을 압도했던 한국프로야구 역사 속의 투고타저 빙하기는 어떤 모양이었을까? 그리고 그 빙하기 속에 들어있는 여러 이유는 어떤 것들이었을까? 지난 31년간 역대 시즌 팀 방어율과 팀 타율의 추이변화 그래프를 통해 그 안을 들여다보도록 한다.
한국프로야구 기록사에 전년대비 시즌 팀 방어율이 급격히 낮아진(투수력이 강해진 것을 의미) 해를 살펴보면 1986년(3.48→3.08)과 1993년(4.32→3.27) 그리고 2002년(4.71→4.24)과 2006년(4.21→3.58)이 눈에 들어온다.
또한 시즌 팀 타율이 전년도에 비해 큰 폭으로 떨어진 해를 살펴보면 1986년(.260→.251)과 1999년(.268→.257) 그리고 1993년(.264→.247)과 2002년(.274→.263), 2006년(.263→.255)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중에서 팀 방어율과 팀 타율 두 가지 항목의 방향성이 정확히 투고타저 현상으로 일치되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해는 1986년, 1993년, 2002년 그리고 2006년의 4개년이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투고타저 현상이 극심하게 나타났던 이들 해에는 과연 어떤 일들이 있었기에 경기력의 극심한 저온현상이 찾아왔던 것일까?
첫 번째 빙하기였던 1986년은 한국프로야구가 6개 팀에서 7개 팀으로 늘어난 해였다. 빙그레 이글스(한화의 전신)의 창단으로 리그 팀 수가 홀수가 되는 바람에 경기일정이 아무래도 불규칙할 수 밖에 없었을 터. 여기에 신생 팀에 대한 기존 구단들의 선수지원 부실로 빙그레의 전력구성이 여의치 않았던 것도 리그 균형에는 악재가 되었다.
또한 주당 5경기를 치르던 형태에서 주당 6경기로 바뀌면서 매일 경기를 뛰어야 하는 야수들의 피로도가 가중되었다는 점. 그리고 OB와 롯데의 새로운 홈구장인 잠실과 사직구장이 여타구장에 비해 펜스거리가 길어 투수들에게 유리한 면이 증가했다는 점도 투고타저 현상에 한 몫을 거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야구는 선수가 한다고 그 해 신인왕을 차지한 김건우(MBC)를 비롯, 이상군, 한희민(빙그레), 성준(삼성), 김정수, 차동철(해태) 등의 빼어난 기량을 가진 투수들이 대거 리그에 뛰어들며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것이 가장 주된 요인이었다.
두 번째 빙하기에 해당되는 1993년은 시즌 팀 타율이 사상 처음으로 2할 5푼대 아래로 곤두박질 쳤던 최초이자 마지막 해로 기록되어 있는 해이다. 이러한 현상에 가장 크게 일조한 선수는 아무래도 해태의 선동열과 OB의 김경원투수. 김경원의 시즌 방어율 1.11도 대단했지만 선동열이 기록한 0.78이라는 무시무시한 방어율은 역대 최저 방어율로 지금껏 살아있다. 또 한가지 경이로운 사실은 3.0이하의 방어율을 기록한 투수가 무려 18명이나 되었다는 점.
반대로 타자쪽에서는 장종훈과 이정훈(빙그레), 박정태(롯데) 등, 강타자들의 부상과 부진으로 매년 10명 이상을 상회하던 3할타자가 불과 7명선에 그친 것이 힘의 균형을 무너뜨리는데 영향을 미쳤다. 또한 1991년 처음으로 열린 한,일 슈퍼게임을 통해 일본 주축투수들의 투구기술을 경험한 우리투수들이 이를 응용하고 시도하기 시작했다는 시대배경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라 하겠다.
세 번째 빙하기로 볼 수 있는 2002년의 커다란 이슈는 스트라이크 존의 확대였다. 기존 타자의 벨트부분으로 유지되고 있던 상한선을 어깨와 벨트의 중간지점까지 상향조정 시키는 변화를 선택했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투수력의 우세로 귀결되었다. 경기당 평균 소요시간이 전년대비(3시간 14분) 무려 6분이나 줄어든 3시간 8분이었다라는 점은 또 하나의 곁가지 증거다.
기타 주변 요인으로는 규정투구회수를 채우지는 못했지만 7승 18세이브에 방어율 1.18을 기록한 해외파 이상훈(LG)의 복귀와 부산 아시안게임 개최관계로 9월말~10월초에 걸쳐 프로야구가 휴식기를 가졌다는 점도 타자쪽에는 핸디캡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네 번째 빙하기는 2006년에 밀어닥쳤다. 1년 전인 2005년 방어율 2점대를 기록한 투수는 고작 2명뿐이었지만 2006년에는 9명으로 불어났다. 역으로 3할대 타율을 기록한 타자는 10명에서 5명으로 대폭 감소.
이러한 투고타저 현상의 앞과 뒤에는 괴물 신인 류현진(한화)과 끝판대장 오승환(삼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류현진은 다승, 방어율, 탈삼진 등 투수기록 주요부문 3관왕을 달성한 동시에 신인왕으로 그 해 시즌 MVP까지 독식하는 괴물다운 식욕을 드러냈다.
또한 오승환은 아시아 시즌 최다 세이브기록인 47세이브를 기록하며 막강 파워를 뽐냈고, 여기에 박준수(현대, 38세이브), 정재훈(두산, 37세이브), 구대성(한화, 37세이브)까지 40세이브에 육박하는 기록으로 일명 마무리 전성시대를 열며 타자들을 윽박질렀다.
타자들은 당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었고 시즌 총 안타수와 홈런수도 전년도 8912안타, 876홈런에서 8469안타, 660홈런으로 무려 400안타, 200홈런 이상 급전직하했다.
그렇다면 2006년을 마지막으로 빙하기는 끝난 것일까? 하지만 기록은 빙하기가 다시 다가오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2009년을 정점으로 지난해(2012)까지 한국프로야구의 시즌 방어율과 시즌 타율은 3년 연속 투고타저의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평균 수은주가 해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방어율은 4.80-4.58-4.14-3.82까지, 타율은 .275-.270-.265-.258까지, 홈런수는 1155-990-770-615까지 기록온도 바늘이 내려가 있다. 2013년 전체 경기수가 532경기에서 576경기로 늘어나 안타, 홈런과 같은 누적통계수치는 추락을 멈출 수도 있겠지만, 평균 확률치로 따지는 방어율과 타율 등은 한파의 기세가 다소 진정기미를 보일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봄은 소리 없이 다가오는데 프로야구의 해빙기는 과연 언제쯤 그 모습을 드러낼는지, 올 시즌이 끝나고 쓰여질 2013년의 야구기록 수은주가 사뭇 궁금해진다.
/KBO 기록위원장
오승환(왼쪽)과 박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