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는 세터놀음'이라는 말이 있다. 세터의 토스웍이 얼마나 안정되어 있는가, 또 공격수의 성향을 얼마나 잘 맞추는가에 따라 경기를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독들은 좋은 세터 한 명만 있어도 배가 부르다 할 정도다.
그 말에 따르면 이선구 감독은 충분히 배가 부르다. 현재 GS칼텍스에는 두 명의 세터가 있다. 베테랑 '맏언니' 이숙자(33)와 '신입생' 이나연(21)이다. 경험이 풍부한 노련한 최고참 세터와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어린 세터가 함께 경기를 뛰고 있는 셈이다.
사실 그동안 GS칼텍스의 주전 세터는 이숙자였다. 비록 지난 2010-2011시즌부터 부상 등의 이유로 출전 경기 수가 줄어들긴했지만 여전히 그는 여전히 팀의 주축이다.

하지만 이번 시즌 이숙자는 주전에서 한발짝 물러났다. IBK기업은행에서 이적한 이나연이 주전으로 뛰는 경우가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나연은 17일 현재까지 51세트, 이숙자는 37세트를 소화하며 출전시간을 나누고 있다.
런던올림픽 4강신화를 일궈낸 베테랑 세터 이숙자를 두고 이나연을 더 많이 기용하는 것은 얼핏 보기에 이상한 일처럼 보인다. 특히 올 시즌 야심차게 우승이라는 대권에 도전하는 GS칼텍스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선구 감독에게는 두 명의 세터를 어떻게 기용해야할지에 대한 답이 있었다.
이 감독은 지난 15일 4라운드 첫 경기 도로공사전에서 3-2 역전승을 거둔 후 세터 기용 문제에 대한 질문에 답했다. "이숙자는 안전하고 안정감 있는 배구를 하고 이나연은 공격적이고 빠른 팀을 상대할 때 장점이 있는 배구를 한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세터)시스템이 있는 셈"이라고 말문을 연 이 감독에게는 구상해둔 GS칼텍스만의 팀컬러가 있었다.
이 감독이 꿈꾸는 세터 기용 방법은 이렇다. 이나연이 세트 처음에 들어가 20점 정도 점수를 쌓아놓은 후 안정감이 있는 이숙자를 기용, 일종의 '마무리 세터' 작전을 구사하는 것이다. 야구에서나 봤던 선발 투수-마무리 투수의 개념을 약간 변형시켜 세터에 끌어다붙인 셈이다.

낮고 빠른 토스의 이나연을 십분 활용해 공격 흐름을 이끌고, 승기를 잡은 순간 이숙자를 투입해 추격할 엄두가 나지 않도록 쐐기를 박겠다는 심산이다. 이는 곧 베띠와 한송이, 배유나, 최유정, 그리고 신인 이소영까지 가세하며 지난 시즌보다 훨씬 강해진 GS칼텍스의 화력을 제대로 끌어올리기 위한 시도이자 시즌 중에도 꾸준히 리빌딩을 진행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감독의 이러한 시도는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시즌 후반기를 맞고 있지만 아직 리듬의 평균을 잡지 못했다. 그 때문에 계속 교체를 하느라고 구상한 팀컬러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낸 이 감독이 과연 후반기 선두 경쟁 속에서 '투 세터 시스템'을 구현해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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