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의 클리닝타임] 박희수의 ‘스트레스’, 가치는 얼마?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3.01.19 06: 39

프로 선수들이 1년간 땀 흘린 노동의 대가를 산정 받는 시간이다. 육체적인 노동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신적 노동의 가치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박희수(30, SK)의 올해 연봉 협상은 눈여겨볼 만하다. 마운드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으뜸이었기 때문이다.
박희수의 지난해는 말 그대로 환상적이었다. 리그 최고의 중간계투요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표면적인 성적만 봐도 이론의 여지가 별로 없다. 박희수는 전체 133경기의 무려 48.8%인 65경기에 나갔다. SK의 팬들은 2경기 중 1경기에서 꼭 박희수의 얼굴을 봐야 했다. 성적도 따라왔다. 8승1패6세이브34홀드로 홀드왕에 올랐다. 평균자책점은 1.32,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는 0.96에 불과했다.
65경기 자체도 많은데 피로도는 더 컸다. 연투 때문이다. 박희수는 이틀 연투가 총 15번이나 됐다. 심지어 3일 연투도 4번이나 있었다. 6월 말 피로 증상으로 2군에 내려갔다 7월 중순 1군에 복귀한 박희수는 올라오자마자 7월 17일부터 19일까지 LG와의 3연전에 모두 등판한 경력도 있다.

한편 1이닝과 2이닝 사이를 소화한 경기는 30경기, 2이닝 이상을 소화한 경기도 6경기나 됐다. 1이닝만 던지거나 그 이하를 소화한 경기(29경기)보다 더 많다. 부르면 나가서 던졌고 내려오라고 할 때까지 군말 없이 마운드를 지켰다. 특히 힘이 있었던 전반기에는 이런 양상이 더 도드라졌다. 6월까지만 1이닝 초과 경기가 19경기나 됐다.
그렇다면 박희수의 성적을 좀 더 파고 들어가면 어떨까. 단순히 65경기에 나간 육체적인 고통만 따져서는 곤란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어깨의 뻐근함 못지않게 가슴의 긴장감도 남보다 심했다. 주자 없는 3점차 상황에서 1이닝을 막는 것과 주자가 있는 1~2점차 상황에서 리드를 지키는 것은 똑같은 세이브나 홀드로 기록되지만 스트레스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 박희수는 전형적인 후자였다.
박희수는 지난해 65경기 중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29경기에나 나섰다.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의 등판은 전체의 55.3% 정도에 불과했다. 무주자 상황에서 총 144타자를 상대한 박희수는 주자가 있을 때도 131타자를 상대해야 했다. 자초한 기록도 있겠지만 주로 불을 끄기 위해 나선 박희수이기에 표본은 많지 않다. 역시 리그 최고의 중간계투요원인 안지만(삼성)은 무주자 125타석, 유주자 93타석이었다. 비율로 치면 박희수가 더 높다.
여기에 박빙의 승부에서 등판했다면 스트레스는 최고치에 달한다. 박희수는 지난해 동점 상황에서 10경기, 1점차로 이기고 있거나 뒤진 상황에서 25경기, 2점차로 이기고 있거나 뒤진 상황에서 15경기에 나섰다. 이 세 경우를 합치면 총 50경기다. SK의 팬들이 가슴을 졸여 응원하고 있을 때, 박희수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좌·우를 가리지도 않았다. 지난해 박희수는 91명의 왼손 타자를 상대했다. 그런데 오른손 타자와는 그 배가 넘는 184번이나 마주쳐야 했다. “좌완이니 왼손 타자를 많이 상대했을 것”이라는 상식을 무참히 짓밟는 수치다. 등판 시점도 불규칙했다. 주로 8회에 많이 나갔지만 7회는 물론 6회에도 17타자를 상대한 박희수다. 분업화 시대에 이런 ‘애니콜’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박희수의 2013년 연봉이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해 박희수는 7000만 원을 받았다. 억대 연봉 진입은 따 놨다. 문제는 인상률이다. 여기서 아직 구단과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박희수는 지난 6일 몸을 만들기 위해 동료들보다 먼저 미국으로 떠났다. 24일 플로리다 마무리캠프에 합류해서야 연봉협상이 가능하다. 데드라인인 1월 말까지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구단에서도 충분한 대우를 해준다는 방침이다. 이런 스트레스까지 모두 감안해 투수 고과 1위에 올려놨다. 진상봉 SK 운영팀장은 “생각하기에 달린 차이라고도 볼 수 있다”라고 했다. 박희수도 상식을 뛰어 넘는 고액 연봉을 요구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간극은 있다. 출국 직전까지 협상을 벌였지만 아직 도장을 찍지 못한 이유다.
박희수의 연봉 협상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상대적으로 홀대 받는 전체 불펜투수들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도 있는 까닭이다. 불펜은 크게 중간과 마무리로 나뉜다. 굳이 따지자면 마무리 쪽의 대우가 좀 더 후하다. 다만 선수들이 받는 피로도는 중간투수들도 마무리 못지않다. 등판 일정이 비교적 명확한 마무리에 비해 박희수와 같은 중간 투수들은 항상 군장을 꾸리고 있어야 한다. 그들이 스스로를 “3D 보직”이라고 부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경우는 어떨까. 2011년 일본 최고의 중간계투요원이었던 아사오 다쿠야(주니치)는 79경기에 나가 45홀드를 올렸다. 에이스인 팀 동료 요시미 가즈키를 제치고 센트럴리그 MVP에 오르는 이변도 연출했다. 연봉은 2011년 1억2500만 엔에서 1년 만에 2억6000만 엔(30억 원)으로 치솟았다.
5년차임을 감안했을 때 다른 보직을 뛰어넘는 대우였다. 주니치 팀 역사상에서도 5년차 연봉이 2억 엔을 돌파한 경우는 이와세 히토키와 후쿠도메 코스케라는 대선수들 뿐이었다. 한국프로야구도 이제 일본만큼 불펜, 그리고 중간계투요원을 중시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아사오와 같은 사례가 하나쯤은 있을 때도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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