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나타난 여자농구선수들, '훈훈'한 사랑나눔
OSEN 김희선 기자
발행 2013.01.20 09: 00

조용하던 시장이 갑자기 북적였다. 얼핏 봐도 머리 하나는 더 큰 여자농구선수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시장을 누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난데없이 나타난 장신의 여자농구선수들은 재래시장에 신선한 술렁임을 안겨줬다. 이들은 대체 왜 재래시장에 나타난 것일까.
이들은 지난 13일부터 진행 중인 KDB금융그룹 2013 여자농구 챌린지컵 대회에 참가한 각 구단 소속 선수들이었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어우르는 첫 번째 컵대회인 이번 대회는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최경환 총재의 지역구인 중립지역 경산에서 열렸다.
그리고 WKBL은 19일 오후 열리는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와 청주 KB 스타즈의 결승전에 앞서 엔트리에서 제외된 선수들과 함께 경산 재래시장을 찾았다. 대형마트 입점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재래시장 상인들을 격려하고 희망을 주기 위해서였다.

국내 선수들에게도 재래시장은 익숙하지 않은 문화였다. 편리한 대형마트에 익숙해져있던 선수들은 오랜만에 방문한 재래시장의 분위기에 금세 취했다. 선수들이 선물로 준비해온 목도리와 떡을 나눠주기 시작하자 호응은 폭발적이었다.
외국인 선수들도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삼성생명의 외국인 선수 앰버 해리스는 앞치마를 입고 직접 동태와 가자미를 손질, 능숙하게 팔아치우며 웃음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해리스의 모습에 고무된 리네타 카이저 역시 자원해서 칼을 잡았고, 멋지게 동태를 손질한 후 두 팔을 번쩍 들어보이기도 했다.
캐서린 크라예펠트(32, KDB생명)는 용돈으로 주어진 3만 원으로 전통과자를 한웅큼 샀다. "너무 맛있다. 한국적인 문화를 느낄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 됐다"는 것. 나키아 샌포드(37, 하나외환)도 견과류와 과자를 잔뜩 샀다.
가슴 찡한 장면도 있었다. 티나 톰슨(38, 우리은행)은 아들 딜런과 함께 시장을 둘러보다가 한 할머니의 노점상 앞에 멈춰섰다. 등이 굽은 할머니가 펼쳐 놓은 좌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톰슨은 김 한묶음을 사겠다고 돈을 내밀었지만 안타깝게도 김은 옆 좌판의 것이었다. 당황한 톰슨은 낯선 도라지와 시금치 등 채소뿐인 할머니의 좌판을 바라보다가 도라지를 한웅큼 샀다. 할머니는 연신 톰슨에게 "반갑다, 고맙다"며 인사를 반복했다.
해프닝도 있었다. 시장을 방문한 손님들은 선수들이 상인들에게 둘러주는 분홍빛 목도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곳곳에서 자기도 하나만 달라는 아우성이 쏟아졌다. 선수들은 목도리의 인기(?)에 당황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곳곳에 선물을 나눠줬다.
평소에도 유니세프를 통해 아프리카 어린이를 7년 동안 후원해왔다는 임영희(33, 우리은행)는 "평소 시장에 올 일이 거의 없는데 너무 오랜만이다. 겨울이라 너무 추우실 것 같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또 "시장에 온 김에 떡볶이, 순대 같은 음식을 길거리에서 먹어보고 싶다"며 웃었다.
WKBL 최경환 총재는 "요즘 재래시장이 어렵다. 여자농구가 대표선수들과 함께 상인을 뵙고 격려하는 자리를 가졌다. 재래시장 상인들이 힘을 냈으면 좋겠다"며 이번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또한 "대구, 경산은 농구 불모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경산에 농구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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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곽영래 기자 youngra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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