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시즌 리그 최고의 투수는 넥센의 브랜든 나이트(38)였다. 나이트는 30경기 208⅔이닝을 투구하며 16승 4패 평균자책점 2.20으로 리그를 평정했다. 2009년 처음으로 한국 무대를 밟은 후 3년차까지 단 한 번도 두 자릿수 승과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지 못했지만 완벽한 무릎 컨디션과 노련함으로 마운드를 호령했다.
오는 2013시즌은 9구단 19명의 외국인 선수 전원이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오를 예정이다. 홀수 구단 체제로 리그가 운영되면서 상위 선발투수의 등판횟수가 많아질 것이며 강력한 원투펀치를 구축한 팀이 유리할 수 있다. 구단들 역시 외국인 선수가 에이스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사상 첫 외국인 전원 선발투수 구조가 형성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렇게 2013시즌 어느 때보다 치열한 외국인 투수 경쟁이 예고된 상황에서 이미 기량을 인정받고 한국 무대 3년차에 접어든 네 명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두산 더스틴 니퍼트(32), LG 벤자민 주키치(31)와 레다메스 리즈(30), 한화 데니 바티스타(33)는 이미 한국야구와 한국문화 적응을 마친 만큼 나이트처럼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년의 활약을 돌아보면 니퍼트가 넷 중 가장 성공적인 커리어를 장식했다. 니퍼트는 2011시즌 29경기 187이닝을 소화하며 15승 6패 평균자책점 2.55로 당해 최고의 외국인 투수였다. 203cm 장신에서 내리 꽂는 150km를 상회하는 직구를 앞세워 상대 타자들을 압도했다.
하지만 2012시즌 29경기 194이닝 11승 10패 평균자책점 3.20을 기록, 투구이닝을 제외하면 데뷔 첫 해보다 부진했다. 시즌 후반 유난히 승운이 따르지 않기도 했지만 2011년 처음으로 풀타임 선발투수를 경험한 후유증이 컸다. 일 년 내내 100%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했고 이는 구속 및 구위 저하로 이어졌다. 체인지업과 슬라이더 같은 변화구는 꾸준했지만 스트라이크존 가운데에 던져도 먹혔던 강속구가 구속이 떨어지면서 안타로 연결됐다.
니퍼트가 올 시즌 2011시즌의 직구 구위를 회복한다면 나이트 만큼의 활약을 선보일 가능성이 높다. 팀에서 누구보다 성실하게 다음 선발 등판을 준비하는 만큼 몸 상태만 따라주면 200이닝을 넘길 수 있다. 작년에는 애리조나 전지훈련부터 팔꿈치에 이상을 느꼈었다.
넷 중 유일한 좌완인 주키치는 체력이 관건이다. 주키치는 지난 두 시즌 모두 전반기에 마구에 가까운 컷패스트볼로 마운드를 지키다가 후반기 페이스가 떨어지며 고전했었다. 구속이 빠르지는 않지만 우타자와 좌타자를 가리지 않고 몸쪽을 파고드는 컷패스트볼은 난공불락이었다. 모 팀의 감독은 주키치의 컷패스트볼을 두고 “어퍼 스윙을 주로 하는 한국 타자들의 스윙 궤적에선 공략하기 힘든 구질”이라고 혀를 내두른 바 있다.
전담포수 심광호의 은퇴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지난 시즌 심광호는 주키치의 컷패스트볼에 대해 “타자 입장에서 치는 것도 힘들지만 포수로서 받는 것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스트라이크 존을 앞두고 크게 휘어지며 존을 걸쳐서 들어오기 때문에 포구할 때 주심의 시야를 확보해야만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는다. 공이 들어오기 직전 왼손을 비틀어 주심을 향해 미트를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심광호가 지난 시즌 중반 시즌아웃된 후 주키치와 새롭게 호흡을 맞춘 포수들 대부분이 “컷패스트볼의 휘는 정도가 굉장히 크고 어느 쪽으로 휘어질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고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2013시즌 주키치의 체력만큼이나 주키치와 호흡을 맞출 포수도 중요하다.
리즈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강속구 투수로서 매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처음으로 한국 마운드를 밟은 2011년만 해도 제구력과 수비력에서 허점을 노출했으나 모든 부분이 안정세로 접어들었다. 지난 시즌의 경우 시즌 초반 마무리 악몽을 딛고 후반기 평균구속 150km 중반대를 기록하며 평균자책점 2.73으로 호투했다.
당시 리즈는 스스로 “전지훈련부터 노력했던 투구 밸런스를 마침내 찾았다. 어느 때보다 잘 던질 수 있다”며 자신감을 전한 바 있다. 리즈와 호흡을 맞춘 포수 윤요섭도 “리즈의 공을 받고 나면 손금이 늘어난다. 지금 리즈의 컨디션이라면 포수는 그저 공을 잘 받아주기만 하면 된다”고 리즈의 구위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었다.
리즈의 성장세가 올해에도 지속된다면, 아니 2012시즌 후반기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만 한다면 리즈는 162km 강속구에 어울리는 성적을 올릴 것이다.
바티스타 역시 구위에 있어선 니퍼트나 리즈 못지않다. 2011시즌 한화의 뒷문 불안을 해결할 적임자로 선택된 바티스타는 150km대 강속구와 각도 큰 파워커브를 앞세웠다. 당시만 해도 2008시즌 토마스 이후 한화 최고의 외국인 마무리 투수가 될 것 같았고 2012시즌 재계약에 성공했다. 그러나 바티스타는 지난해 제구불안과 투구패턴 노출로 한 번에 무너졌다. 습관처럼 볼넷이 반복됐고 타자들은 바티스타가 조금이라도 제구력이 흔들리면 가만히 볼을 기다렸다.
반전은 보직전환과 함께 일어났다. 퇴출의 기로에 놓인 바티스타는 퓨처스리그서 선발 등판에 임했고 1군 콜업 후 선발진에 고정돼 180도 달라진 활약을 펼쳤다. 불펜 등판 시 3할이 넘던 피안타율이 1할8푼9리로 떨어졌으며 평균자책점도 5.70에서 2.41로 수직 하강했다.
바티스타는 2013시즌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진출로 한화의 1선발 에이스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바티스타가 지난 시즌 선발투수로 보여준 활약을 이어가 풀타임 선발투수로 연착륙해야 한화의 반전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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