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게 차려입은 동비가 웃으며 걸어왔다. JTBC 드라마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이하 우결수)가 종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배우 한그루와 동비가 겹쳐 보인 것도 있겠다. 그런데 대화하다 보니 한그루가 더 동비처럼 보였다. 아니, ‘한그루는 동비였고 동비는 한그루’였다.
과거 극 중 공기중(김영광 분)과 같이 나쁜 남자와 연애해봤다는 얘기부터 연애하면 동비처럼 간과 쓸개까지 빼서 줄 정도로 내 남자에게 한없이 잘해주는 스타일이라는 얘기까지 평범해서 더욱 공감되는 수다는 끝날 줄 몰랐다.
“영광오빠 같은 남자를 만난 적이 있어요. 시놉시스를 봤을 때 너무 현실적으로 표현해서 ‘그래 이건 이럴 수 있어’라고 크게 공감했어요. 제가 동비랑 비슷한 면이 있거든요. 동비의 사랑방식에 공감되더라고요. 동비는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편인데 저도 그런 스타일이에요. 좋으면 안 놔요. 지질하게 매달리는 스타일이죠. 그런데 ‘우결수’를 하면서 많이 배웠어요.(웃음)”

‘우결수’에서 기중과 동비 커플은 연애 5년 차 연인이었다. 동비와 달리 기중은 동비와 오로지 연애만을 원하고 격정적으로 키스하다 스탠드가 넘어져서 깨지자 동비를 제치고 스탠드를 걱정하질 않나 동비가 헤어지자며 나가자 자신을 다시 보러 온다는 데 ‘10원’을 거는 전형적인 나쁜 남자다.
그러나 동비는 기중과는 정반대 성향의 여자. 기중에게 헤어지자고 말했을 때 기중이 아무렇지도 않아 하며 자신에게 돌아온다는데 10원 걸었다는 말까지 들었으면서도 기중이 좋아 자존심을 버리고 기중을 보러 갔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한없이 퍼주는 성격이고 A형이라 소심해서 내 남자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 하고 싶은 말을 못해요. 이해해야지 하면서 속으로 삭이는 스타일이에요. 그렇다고 가슴에 쌓아놨다가 터뜨리는 성격도 아니에요.”

‘우결수’에서 5년 된 연인 연기를 한만큼 스킨십의 강도는 꽤 강했다. 첫 회에 등장한 김영광이 서 있는 상태에서 한그루가 다리로 김영광의 허리를 감싸 안아 포옹한 스킨십은 시청자들도 ‘헉’ 할 만큼 파격적이었다. 이 장면에서의 숨은 비밀. 김영광이 아니라 한그루가 리드했다는 점이다.
“영광오빠가 드라마에서도 키스신은 입맞춤 정도밖에 안 해봤다고 해서 걱정하더라고요. 그리고 촬영 시작한 지도 얼마 안돼서 나와 친하지도 않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했더라고요. 저는 이상하게 별로 부끄럽지도 않더라고요. 아무런 긴장이 안 되더라고요. 안은 상태에서 등을 토닥토닥 해주며 ‘오빠 걱정하지 마’ 그랬죠. 제가 적극적으로 들이댔어요. 제가 먼저 덮쳤죠.(웃음)”
이 장면에서 또 하나의 비밀. 한그루가 고백한 바로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했던 터라 근육량이 많아 은근히 무게가 나간다는 것.
“솔직히 요즘 아이돌처럼 마른 체형이 아니에요. 골격도 크고 근육량도 많아서 무거워요. 그래서 그 장면을 찍을 부담이 되더라고요. 영광오빠가 드라마 ‘사랑비’에서 윤아 씨와 찍었는데 비교가 돼서 걱정됐어요. ‘윤아 씨는 마르고 가벼운데 나는 어떻게 하지?’라고 엄청나게 고민했는데 역시나 오빠가 아주 힘들어 했죠. 미세한 떨림을 느꼈어요. 너무 미안했죠. 오빤 앞으로 어떤 여배우와 연기를 해도 편할 거예요.”
오래된 연인 연기를 했던 김영광과의 호흡은 최고였다. 드라마 안에서는 노골적인 대사와 스킨십을 소화했지만 카메라 밖을 나왔을 때는 마치 형제같이 지냈다.
“정말 편했어요. 영광 오빠가 애교가 많아요. 애교 쟁이죠. 저는 남자 같이 노는 성격이라 엄청 괴롭히고 영광 오빠가 가만있으면 때리고 같이 게임을 하면서 벌로 때리고 놀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남동생처럼 됐죠.(웃음)”

‘우결수’를 찍으며 한그루에게는 두 가지 후유증이 남았다. 드라마가 결혼하는 과정과 부부 간의 이혼을 적나라하게 그려 결혼과 이혼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22살의 어린 나이에 너무 빨리 깨달은 두려움이었다.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아, 결혼이란 게 이혼이란 게 이런 거구나’라고 많은 걸 배웠어요. 결혼이 조금 무섭고 조심스러워졌어요. 보통 일은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죠. ‘우결수’를 하기 전만 해도 ‘28살 되면 결혼 할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조심스러워요.”
또 하나의 후유증은 결혼과 이혼 속에서도 커플들이 모두 알콩달콩 사랑을 나눠 드라마가 종영한 후 ‘외로움’이 남았다.
“정말 달달하게 끝나고 외롭고 허해요. 마지막에 기중이 동비한테 아무도 없는 성당에서 프러포즈하는 장면을 촬영하는데 반지를 보자마자 진짜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반지를 받는 게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아, 프러포즈 받을 때 기분이 이런가 보다’ 했어요. 여자들이 남자가 멋진 곳에서 멋진 말을 하며 멋진 반지를 받는 프러포즈를 꿈꾸는 데는 이유가 있더라고요.”
한그루는 두 달여 동안 동비로 살았다고 할 정도로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다. 그만큼 자신에게 딱 맞는 캐릭터를 만나 최상의 연기를 이끌어냈다. ‘우결수’가 세 번째 드라마지만 완벽하게 연기했고 다음에는 어떤 연기를 보여줄까 기대하게 했다.
“질리지 않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가끔 사람들이 어떤 배우들을 향해 ‘이젠 그만 나왔으면 좋겠어’라는 옆에서 들을 때가 있는데 ‘나는 저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죠. 사람마다 매력 포인트나 색깔이 있는데 본연의 색깔을 찾는 게 제 숙제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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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