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우, 세상에 없는 착한남자의 눈물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3.01.24 07: 53

[유진모의 테마토크] 권상우(37)는 찬성과 반대 양극단의 평가를 오가는 몇 안 되는 배우 중 한 명이다. 그는 2001년 영화 ‘화산고’에 단역으로 데뷔하자마자 단숨에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었다. 주인공 장혁에 결코 뒤지지 않는 잘생긴 외모와 강력한 인상의 임팩트는 향후 스타탄생을 쉽게 예고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아 2004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로 그는 비교적 빠르게 스타덤에 올라섰다. 하지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법. 태양을 받아 빛나는 그의 정면만큼이나 그 뒷면의 그림자도 암울했다.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발음 논란. 연기의 기본이 대사라면 그는 평생 ‘배우’가 될 수 없는 핸디캡을 지닌 셈이고 아니나 다를까, 그는 작품에 출연했다 하면 ‘짧은 발음’으로 질타를 받아야 했다. 인상이란 게 그런 것이다. 어느 한 군데 미우면 다른 구석까지 미워지기 마련. 권상우의 결혼도 그랬다. 권상우는 손태영과 결혼했다. 그런데 이 결혼을 놓고도 설왕설래 말들이 많았다. 남의 행복은 나의 불행인 양.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뺑소니 사고까지 냈다. 음주운전하다 사고를 냈느니, 옆자리에 누가 탔느니 말들이 많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통사고를 낸 뒤 줄행랑을 놨다는 팩트. 더 이상 도망갈 데가 없어보였던 권상우는 그러나 대담하게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영화 ‘포화속으로’ 무대인사 때 누가 묻기도 전에 먼저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빈 것.
 
 그리고 그는 곽경택 감독의 영화 ‘통증’으로 비로소 연기력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영화 자체는 비록 흥행에서 별로 재미를 못 봤지만 권상우는 확실하게 혜택을 입었다. 천형같은 핸디캡을 불굴의 의지와 피눈물 나는 노력, 그리고 괜찮은 감독과의 조합으로 이겨낸 것.
 
  특히 이 작품에서 그는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연기지만 나름대로 꽤 진지해보였고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그런 권상우가 또 운다. 연기인생 12년을 통틀어 이번만큼 많이 운 적이 또 있을까? SBS 월화드라마 ‘야왕’에서다. 그 눈물이 참으로 간절하고 비통하고 애절해 보인다.
 
 눈물의 사전적 의미는 육상에 사는 척추동물의 눈알 바깥 면의 위에 있는 눈물샘에서 나는 분비액이다. 그렇다고 아무 동물이나 흘리는 게 아니다. 수중동물 중에는 물개 바다수달 바다악어만이 눈물을 흘리고 육상에서는 코끼리가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이들은 우는 게 아니라 오로지 염분을 제거하기 위해 눈물을 분비할 따름이다.
 
 인간은 영장류 중에서 유일하게 눈물을 흘린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기쁨 참회 회한 분노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설움과 비통이 아닐까?
 
 ‘야왕’의 하류(권상우)가 바로 그렇다. 서러워서, 슬퍼서, 그리고 마음이 아파서 울고 또 운다. 그 모든 근원은 바로 다해(수애)다. 그 누구보다 더 다해를 사랑하고, 그 어떤 것보다 다해를 아끼고, 세상 어떤 보물보다 다해를 소중하게 여기기에 그는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운다.
 
 처음부터 하류가 울보는 아니었다. 보육원에서 남다른 친분과 우애로 성장해가던 하류와 다해는 그러나 어느 날 다해의 친모가 나타남으로써 이별을 맞는다. 다해는 눈물을 흘리지만 하류는 울지 않는다. 그러던 그들이 22살, 20살의 성인이 돼 재회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류의 눈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다해는 어릴 때부터 자신을 성폭행해온 양아버지를 칼로 찔러 죽인다. 이를 본 하류는 혼란에 빠진 다해를 진정시키며 자신이 죽인 걸로 하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시체의 암매장을 주도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동거생활에 들어가고 딸 은별을 낳는다. 다해는 꿈에 그리던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한 뒤 백학그룹에 입사한다.
이 모든 뒷바라지는 하류 몫이다. 그는 다해에게 호프집에 나간다고 거짓말하고 호스트바에서 지난 5년간 일해왔다. ‘웃음은 팔되 몸은 팔지 않는다’는 원칙 하나만 지킬 뿐 그는 ‘누나’의 지갑을 열기 위해서는 그 어떤 굴욕도 마다하지 않고 악착같이 돈을 벌어 다해의 학비와 세 사람의 생활비를 대왔다.
게다가 다해가 백학그룹에 입사한지 얼마 안 돼 그녀의 편의를 위해 회사 근처의 고급 오피스텔까지 얻어준다. 물론 그 돈은 호스트바 박부장(윤용현)에게 ‘마이킹’(선불, 가불)으로 받아낸 것이다.
 
 그러나 다해의 회사생활은 오래가지 못한다. 백학그룹 백창학(이덕화) 회장의 장녀이자 그룹 실세인 백도경(김성령) 상무가 그녀를 내친 것.
 
 그런데 다해는 백학그룹 입사시험을 치르던 날부터 알게 된 백학그룹 외동아들 백도훈(정윤호)과 이미 각별한 사이다. 도훈은 묘한 매력을 풍기는 다해에게 점점 빠져드는 가운데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접근하고 다해는 고급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부잣집 아들의 유혹을 굳이 거절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대궐같은 집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 살고 싶다’고.
 
 도훈은 아버지의 뜻을 좇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며 다해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한다. 다해는 집에 돌아와 하류에게 미국 유학을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하류는 다해의 취직으로 그 지긋지긋하던 호스트 생활을 막 청산한 상황. 하지만 다해의 입사가 취소당하고 미국 유학을 고집하자 그는 다시 호스트바의 문을 두드리고 다해를 미국행 비행기에 실어준다. 하류는 모르지만 다해는 이미 하류가 호스트바에 다니며 자신의 학비를 대줬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그의 미국 유학비를 그렇게 마련해줄 것도 뻔히 알고 있는 상황.
 
  그런데 다해의 미국행 목적은 오로지 신분상승이다. 도훈의 마음을 사로잡아 상류사회로 진출하겠다는 욕망인 것. 그렇다면 다해에게 하류는 하찮은 일회성 도구일 뿐이지 사랑은 절대 아니다. 그것도 모르는 하류는 순정과 희생정신의 순애보로 ‘무조건’ 다해의 뒷바라지를 해줄 따름이다.
 
 그러던 중 하류는 지난 오랜 세월동안 친엄마처럼 자신을 돌봐준 홍안심(이일화)의 병원비와 주다해의 유학비 때문에 위기에 처한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두 가지 비용을 한꺼번에 마련할 수 없는 상황이라 다해에게 한 학기만 휴학할 수 없냐고 양해를 구하지만 다해는 단호하다. 절대 그럴 수 없다고.
 
 결국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하나다. 자신을 오랫동안 눈여겨온 오류동 여사장 황순옥에게 몸을 파는 것 뿐.
 
 수표다발을 받고 나오며 오열하는 그의 어깨에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착하고 불쌍한 남자의 설움이 짙게 배있었다. 시청자를 더욱 강하게 자극하기 위해서는 주인공들의 캐릭터를 극대화하고 상황을 최대한 악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게 드라마다. 그래서 하류는 더욱 처참하고 비참해지는 것이고 그럴수록 다해의 결심은 표독스러워지기 마련이다.
 
 하류의 다해를 향한 마음은 오로지 희생 이해 배려 뿐이다. 하류는 호스트 일을 끝내고 주방에서 남은 과일을 챙겨 남들 출근할 시각에 퇴근한다. 그리고 우유에 과일을 넣고 믹서기에 갈아 은별에게 먹인다. 하지만 하류가 호스트바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난 다해는 ‘그런 더러운 것을 어떻게 아이에게 먹이느냐’며 하류를 질책한다. 이런 순진하고 소박하지만 불쌍하고 처량한 남자가 또 있을까?
 
 하류는 다해에게 무시당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그저 그녀가 회사생활이 힘들어서일 것이라고 이해하고 그럴수록 그녀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 배려한다. 이 사랑 참으로 아프다. 그리고 아픈 만큼 권상우는 매 회, 매 분마다 눈물을 흘린다.
 
  ‘야왕’에서만큼은 권상우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 아닌, 이제 연기에 물이 오른 배우의 눈물로 보인다.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