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손남원의 연예산책] 10년 묵은 장맛은 역시 남달랐다. 오랫동안 명품 조연으로 탄탄한 연기력를 자랑했던 류승룡이 드디어 원톱 주연으로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새 영화 '7번방의 선물'에서 6세 지능의 딸바보 아빠 용구 역을 맡은 그는 상영 내내 관객들을 웃기고 울린 끝에 개봉후 이틀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거머쥐었다. 쟁쟁한 블록버스터들을 모두 물리치고 얻은 '대세' 류승룡의 새해 첫 포효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7번방의 선물’은 24일 하루 21만 2159명 관객을 동원해 흥행 선두를 질주했다. 기세 좋게 300만 고지를 향해 달리던 박신양의 조폭 코미디 '박수건달'(9만4000명)을 더블 스코어 차 이상으로 눌렀고 명품 뮤지컬 대작 '레미제라블'(3만3000명)과 뽀통령 신작 '뽀로로 슈퍼썰매 대모험'(3만1000명)을 공황 상태에 빠뜨렸다.
'7번방의 선물' 흥행 기세는 압도적이다. 국내 극장가 매출액 점유율만 40%를 넘어섰다. 비록 개봉일이 좀 지나기는 했지만 톰 크루즈의 액션 블록버스터 '잭 리처'와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 등 대작들이 즐비한 가운데 현란한 드리블로 상대 골문들을 마음껏 유린한 셈이다.

이번 류승룡의 원톱 대성공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 그처럼 독특한 개성의 매력과 카리스마를 풀풀 풍기는 연기파 40대 배우가 흔지않은 까닭이다. 류승룡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 시작한 건 2011년 액션 흥행작 '최종병기 활' 부터다.
청나라 무장 쥬신타로 등장해 머리를 변발한 그는 조선 최고의 신궁 남이(박해일 분)와 맞서 스릴 넘치는 액션 파워를 과시했다. 상대 심장을 바로 꿰뚫는 듯 강렬했던 쥬신타의 눈빛과 무시무시한 활 육량시, 서늘한 만주족 대사에 관객들은 오금이 저렸을 정도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은 매 작품 새롭게 태어난다. 늘 똑같은 대사 톤과 표정, 몸짓 등으로 일관하는 발연기 논란은 류승룡에게 접근 불가다. 그는 이어 개봉한 2012년 로맨스 멜로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바람둥이 장성기 역으로 대한민국 여심을 송두리째 훔쳤다. 그의 거친 용모와 굵은 목소리가 사실은 얼마나 섹시하고 달콤한 지를 인정사정 없이 날 것 그대로 보여준 수작으로 손꼽힌다. 이선균-임수정과 공동 주연으로 나섰던 '내 아내의 모든 것'은 당시 멜로 사상 최고흥행 기록을 다시 쓰는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그리고 조선의 명신 허균 역. 천만 관객을 돌파한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그는 이제 할리우드를 정복중인 월드스타 이병헌의 엄청난 카리스마 연기에 맞서 조금도 굴하지 않는 당당함으로 영화에 힘을 보냈다.

여기까지 류승룡은 늘 공동주연이거나 명품조연이란 수식어를 벗지 못했다. 하지만 2013년 1월. 류승룡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7번방의 선물'에서 그는 신명나게 한 판 굿을 벌였다. 시사회 때 젊은 남성들도 여자친구 옆에서 눈물을 감추려고 고개를 쳐들거나 이곳저곳 두리번 거리는 진풍경에 제작사 관계자들조차 놀라움을 금치못했다는 후문이다.
영화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교도소 7번방에 들어온 6살 지능의 딸바보 용구를 위해 같은 방 수감자들이 그의 딸 예승(갈소원 분)을 교도소에 반입하며 벌어지는 갖가지 에피소드를 다뤘다. 스토리가 단순한 만큼 용구 역 류승룡의 힘에 거의 모든 걸 맡겨야하는 영화다.
류승룡은 하나 뿐인 딸 밖에 모르는 순수영혼 용구 역에 빙의, 어쩔 수 없는 지적 장애인의 코믹 코드와 거부할 수 없는 딸바보 아빠의 눈물 코드를 맛깔지게 섞어내는 신들린 연기로 관객들을 완전히 제압했다. 남자도 울리는 딸바보 용구의 따뜻하고 애절한 부성애 연기는 '신기(神技)'라는 단어로나 표현이 가능할까 싶다.
연극무대에서 눈물 젖은 빵을 실컷 먹은 뒤 지난 2004년 장진 감독의 '아는 여자' 단역 강도 역으로 영화계에 뛰어든 이 남자, 이제는 감히 "당신이 충무로 대세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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