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박재홍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후배에게 마지막 기회를 열어줬다. 이제 남은 것은 ‘후배’ 손민한(38)이 얼마나 진정성을 보여주느냐다. 기회를 잡느냐 놓치느냐도 여기에 달려있다.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호타준족으로 기록될 박재홍이 25일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박재홍은 은퇴 기자회견을 통해 17년간의 현역 생활을 접는 소회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화제가 떠올랐다. 바로 최근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손민한의 복귀 문제다. 박재홍 스스로가 이 화두를 먼저 던졌다는 점도 의외였다.
박재홍과 손민한이라는 당대의 두 스타는 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의 회장이라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손민한은 6대 회장, 박재홍은 7대 회장이었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양자의 사이는 껄끄러웠다. 손민한은 전임 집행부의 비리 및 배임 혐의를 제대로 관리감독 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 치부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인물이 후임 회장 박재홍이었다.

최근까지도 공방전은 계속됐다. 2009년을 마지막으로 프로야구판에서 모습을 감춘 손민한은 지속적으로 현역 복귀를 타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얼마 전 동료들에게 사과문을 발송하기도 했다. 우호적인 여론이 있어야 복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재홍은 이 사과문의 내용을 두고 “말이 안 되는 핑계를 대고 있다. 관리감독을 잘못했다고 사과하면 되는데 변명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랬던 박재홍이 손민한에게 마지막 기회를 줬다. 반전이었다. 박재홍은 자신의 은퇴 기자회견에 손민한을 초청했다. 소명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했다. 박재홍은 “손민한이 잘못을 했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살 길은 열어주고 싶었다”라고 말하면서 “나무라고 꾸짖어주시는 건 좋은데 운동을 다시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한다”고 관계자들에게 선처를 호소했다.
박재홍의 소개로 단상에 선 손민한은 “팬들과 선수들에게 전임회장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사죄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라고 짧게 말했다. 어두운 표정이었고 어투는 신중했다.
이 자체로 의미는 있다. 일단 이 자리를 통해 손민한은 팬들과 동료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복귀 이슈를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떠올렸다는 점도 손민한으로서는 나쁠 것이 없다. 게다가 자신과 가장 반대편에 있었던 박재홍의 ‘지지 의사’도 이끌어냈다. 적지 않은 나이를 감안하면 마지막 기회라고 할 만하다.
이제 관건은 손민한이 보여줄 진정성이다. 그간의 잘못에 대해 충분히 반성하고 사과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선수협 측은 여전히 손민한에 대한 앙금이 남아있다. 소를 취하했던 것은 야구계 동료로서 지킨 최소한의 의리였다. 그럼에도 손민한은 사과의 절차를 건너뛰고 프로야구 복귀를 추진함으로써 선수들의 반발을 샀다. 결국 이는 손민한의 발목을 잡았다.
한편으로 직접 동료들을 찾아가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서면이 아니라 대면으로서 진정성을 전달해야 한다는 뜻이다. 복귀의 전제조건이 동료들의 용서라면 손민한은 이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어쨌든 박재홍은 자신이 떠나는 자리에서 후배에게 복귀의 판을 깔아줬다. 과연 손민한은 이 기회를 살릴 수 있을까. 손민한의 행보에 시선이 몰리고 있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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