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MLB)에는 “타격왕은 벤츠를 타지만 홈런왕은 캐딜락을 탄다”라는 오랜 격언이 있다. 요새 실정에서는 잘 맞지 않는 말이지만 어쨌든 팬들에게 짜릿함을 선사하는 홈런왕의 높은 가치를 대변하는 문구로 자주 인용된다.
올해 한국프로야구는 이런 홈런왕의 가치가 더 높아질 것이 확실하다. 상황 때문이다. 9구단 NC가 예정대로 1군에 합류함에 따라 올해 프로야구는 9개 구단 체제로 벌어진다. 불가피하게 휴식일도 생긴다. 따라서 타자들은 상대 에이스급 투수들을 좀 더 자주 상대해야 하는 불리한 여건에 놓였다. 휴식일로 리듬이 끊기는 것도 투수보다는 타자들이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때문에 한 시즌 30홈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가뜩이나 투수들이 득세하는 시대다. 지난해 30홈런 이상을 때린 선수는 박병호(27, 넥센) 하나였고 20홈런 이상 타자도 5명(박병호 최정 강정호 박석민 이승엽)에 불과했다. 여기에 투수들의 기가 더 사는 상황이 만들어졌으니 그런 예상도 무리는 아니다.

그래서 홈런 타자들의 진정한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한 해라는 분석도 있다. ‘홈런왕 진검승부’라는 것이다. 일단 새로운 피가 홈런왕 도전에 나서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전직 홈런왕들이 타이틀 레이스를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 상황과 전망이 각자 다르다는 점에서 흥미는 배가된다.
지난해 31개의 홈런과 105타점을 기록하며 두 부문을 휩쓴 ‘MVP’ 박병호는 올해도 강력한 홈런왕 후보로 손꼽힌다. 타고난 힘을 갖춘 박병호는 지난해를 통해 야구에 눈을 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상대적으로 작은 목동구장을 홈으로 쓰는 것도 유리하다. 다만 ‘2년차 징크스’가 문제다. 설사 박병호의 기량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상대의 집요한 분석과 견제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이를 극복하는 것이 과제다.
2011년 30홈런을 치며 홈런왕에 오른 최형우(30, 삼성)도 부활을 노린다. 최형우는 지난해 초반 슬럼프에 시달리며 경쟁에서 일찌감치 뒤처진 아픈 기억이 있다. 타율 2할7푼1리, 14홈런, 77타점이라는 성적 모두 기대치에는 못 미쳤다. 그러나 삼성 벤치는 최형우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다. 다시 4번 자리에서 시즌을 시작할 전망이다. 기회는 충분한 만큼 한창 좋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관건이라 할 만하다.
2008년 31개의 홈런을 치며 생애 첫 홈런왕에 등극한 김태균(31, 한화)도 왕좌 복귀를 노리는 대표적인 후보다. 일본에 진출했다 지난해 한화로 복귀한 김태균은 3할6푼3리의 컴퓨터 타격을 선보이며 타격왕에 올랐다. 그러나 홈런은 16개에 그쳤다. 어려운 팀 사정 탓에 좀 더 정확한 스윙을 해야 했던 것이 하나의 원인이었다.
이런 김태균은 최근 “홈런을 더 많이 치겠다”라고 공언했다. “결국 홈런을 많이 치는 게 팀에 더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이유다. 힘과 정확도를 모두 겸비한 만큼 욕심을 낸다면 홈런왕 레이스도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힘 있는 타자인 최진행 김태완이 뒤에서 버티는 것도 호재다. 다만 올해 3번으로 배치된다는 것이 변수다. 뒤에 들어설 타자들과의 연결고리 몫을 해야 할 일도 생기기 때문이다. 동료들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 외 2009년 홈런왕 김상현(33, KIA)도 다크호스다. 김상현은 2009년 36개의 홈런을 때렸던 경력이 있다. 역시 힘에서는 자타가 인정하는 선수다. 부상 없이 스프링캠프를 소화하고 있는 만큼 몸 상태만 좋다면 역시 홈런왕 판도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선수다. 다른 후보들에 비해 물음표가 좀 더 많이 붙어있는 정확도를 높인다면 금상첨화다.
좋은 투수들을 더 많이 상대해야 하는 2013년은 더 그렇다. 김상현의 2009년 타율은 3할1푼5리로 리그 7위에 해당되는 기록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통산타율이 2할3푼6리인 박병호도 지난해 타율을 2할9푼까지 끌어올린 끝에 홈런왕의 영예를 안았다. 어쨌든 홈런도 배트에 맞아야 나온다는 것을 잘 증명하는 사례다.
이는 2010년 32개의 홈런을 때리며 이대호에 이어 2위에 오른 최진행(28, 한화)에게도 공히 해당되는 명제다. 그런 측면에서 지난해 나란히 20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한 박석민 이승엽(이상 삼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평가다. 한편으로는 최근 홈런왕들이 다소 ‘의외의’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스타 탄생도 기대해 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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