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겉으로 봐선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다. 풍요로운 재벌 집안의 귀한 아들이니 무엇이 부러울까마는 그들의 사랑은 한 없이 서글프기만 하다. SBS 주말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의 박시후, SBS 월화드라마 ‘야왕’의 정윤호, 그리고 MBC 수목드라마 ‘7급공무원’의 주원이다.
다수가 우러러보고 부러워하다 못해 시샘할 만한 그들이지만 의외로 그들의 마음만은 순수하다. 그들을 포장하고 있는 부와 명예 등의 화려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사랑에 대해서만큼은 청정 무공해다. 그런 만큼 오염의 가능성도 열려있고 상처받을 여지가 크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은 아프다.

차승조(장 티엘 샤, 박시후)는 재벌가 맏아들이란 화려한 껍데기만 빼면 상처투성이의 만신창이 인생이다.어려서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는 위자료 때문에 그를 키우겠다고 이용한다.
결손가정에서 입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마음의 안식처로 삼은 이가 서윤주(소이현)인데 아버지 차일남(한진희) 회장의 반대에 부닥친다. 그러자 그는 과감히 유산상속을 포기하면서까지 사랑을 선택한다.
하지만 윤주는 승조의 재산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 그래서 승조가 재벌 상속인의 자리를 포기하자 뒤도 안 돌아보고 그를 내친다. 승조는 세상에 사랑이 없다고 굳게 믿고 차가운 승부사로 변신한다.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일 경우 살 수 없는 치명적인 정신병까지 얻게 된 그는 적수공권으로 내달려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명품회사 아르테미스의 한국지사 회장이 돼 금의환향한다.
복수라는 일념 밖에 없던 그에게 윤주의 여고동창 한세경(문근영)이 어느날 날아들어 세상에는 아직 순수함이 살아있고 사랑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희생정신과 이해심 그리고 순백의 사랑마저 품고 있는 세경은 승조에게 있어서 천사에 다름 아니다. 그는 이내 세경에게 빠져들고 그녀의 부탁으로 오랫동안 등돌리고 살았던 아버지마저 인정하게 된다.
세경은 전형적인 ‘88만원 세대’ ‘삼포세대’의 한 명이다. 아버지는 평생 빵을 구워 가족을 부양하고 은행빚을 얻어 간신히 집장만을 했지만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서 이자마저 감당하기 힘들어 결국 손해보고 집을 팔고는 셋집으로 이사간 가난뱅이다.
세경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해 대학을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유학을 다녀오지 못한 핸디캡 탓에 3년간 취직을 못하다가 윤주 시댁이 운영하는 지앤의류 회사에 계약직 사원으로 간신히 입사한 상태. 그녀는 자기보다 못한 윤주가 청담동 며느리가 된 것을 보고 자신도 청담동에 입성하고자 윤주에게 도움을 받고 그 수직상승의 견인차로 장 티엘 샤를 선택한다.
하지만 장 티엘 샤, 즉 승조는 윤주의 시누이 신인화(김유리)가 보여준 증거물로 세경마저도 자신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한 사실을 알고는 이내 패닉상태에 빠진다. 그는 세경이 그 사실을 고백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세경이 끝내 진실을 고백하자 ‘너 때문에 다 망쳤어’라고 세경에게 분노하며 또 다시 파탄난 자신의 인생에 절규한다.
‘야왕’의 백도훈(정윤호)도 차승조와 비슷한 처지지만 어찌 보면 더 불쌍하다.
그는 백학그룹 백창학(이덕화) 회장의 외아들로 가족이라고는 아버지와 그룹 상무인 누나 도경(김성령) 뿐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남모를 출생의 비밀이 있으니 사실은 도경이 17살에 ‘사고’를 쳐서 낳은 아들이 바로 그인 것.
그래서 도경의 도훈을 향한 사랑은 지나치게 과하다. 누가 봐도 남매 이상의 사이로 여겨질 만큼 도경은 도훈에게 애틋한 사랑을 쏟아 붓는다.
도훈은 아버지이자 사실은 외할아버지인 백 회장과 갈등을 겪고 있다. 백 회장은 도훈이 하루 빨리 회사에 입사해서 후계자 수업을 받기를 바라지만 도훈은 아이스하키가 좋다. 게다가 그룹에는 프로 아이스하키 팀도 있다. 그래서 그 팀에서 활동하지만 어느날 불의의 교통사고로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자 아버지의 뜻을 좇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 전에 그는 우연히 백학그룹 입사시험을 치르기 위해 복잡한 지하철을 탄 주다해(수애)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 다행히 다해가 입사시험에 합격한데다 자기가 사는 오피스텔로 입주하자 도훈의 다해를 향한 구애작전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어느날 도훈은 다해를 자신의 스포츠카에 태워 으리으리한 자기 집에 데려온다. 그리고 다해는 다짐한다. 이 집에서 살고 싶다고. 그리고 다해는 도훈을 좇아 미국유학을 간다. 그리고 거기서 의도적으로 도훈을 유혹하는데 성공한다. 물론 도훈이 바랐던 일이긴 하지만.
다해는 도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힘들게 살아왔다. 유년시절 가난 때문에 아버지가 자살하고 어머니가 재가하면서 보육원에 보내졌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어머니가 다해를 데려갔지만 이번에는 양아버지로부터 오랫동안 성폭행을 당해왔다.
그 후 보육원 시절 자신을 아껴줬던 오빠 하류(권상우)를 만나 어머니의 장례를 무사히 치르고 지낼 거처까지 얻음으로써 구원받는다. 맨손의 그녀는 하류와 동거하면서 소원이던 대학에 합격하고 호스트바에 나가는 하류의 도움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그토록 그리던 백학그룹에 합격까지 한다.
다해는 하류와의 사이에 딸 은별까지 있다. 하지만 그녀는 오로지 신분상승의 사악한 욕망으로 은별을 버리고 자신의 구원자인 하류까지 내친다. 이런 다해의 진면목을 모르는 도훈은 순수한 마음으로 맹목적으로 다해를 사랑한다. 나중에 다해가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자신마저 배신할 것이라는 것도 모른 채.
이에 비하면 ‘7급공무원’의 한길로(주원)의 김서원(최강희)을 향한 사랑은 그나마 평탄한 편이다. 한길로가 재벌집 아들이고 김서원이 시골 가난한 집안의 딸로서 생계형 알바생 출신이란 것만 놓고 보면 차승조-한세경, 백도훈-주다해의 상황과 별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서원은 출세지향적 신분상승욕구 하나만으로 사랑을 이용하는 세경이나 다해와는 다르다. 그녀는 적어도 허황된 신분상승을 목표로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자수성가하고자 한다. 게다가 그녀는 같은 국정원 신입사원인 길로에게 절대 지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살아간다.
그녀에게 국정원은 최종목표가 아니라 방송국에 입사하기 위한 정거장일 뿐이다. 최소한 그녀에게는 현실적이고 그래서 꿈꿀 만한 인생의 지표가 있다.
승조와 도훈의 사랑은 왜 그렇게 아플까? 그건 바로 드라마 밖의 실질적인 서민의 삶이 지난하고 고단해서다. 다수의 보통 젊은이들은 취업에 허덕이고 간신히 취업을 하더라도 언제 해고되거나 회사가 망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탓에 미래가 불안하다.
월급봉투마저 가벼워 그들은 당장 눈앞의 내일을 설계할 수 없다. 그래서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모두 포기한다. 게다가 어긋난 부동산 정책 등 정부당국의 어설픈 국가운영의 유탄을 맞아 부모세대들마저 가난에 허덕인다.
소수의 부자들은 확률적으로 어쩔 수 없이 이 다수의 보통사람들과 어울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기서 ‘신분차이’에 의한 충돌이 일어나고 그럼으로 인해 불행한 사랑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승조의 비참한 사랑과 도훈의 불행한 사랑은 그래서 현실적으로 폐부를 찌른다.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