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를 사랑하는 한국 관객들의 취향은 건재하다. 쏟아지는 멀티 캐스팅 영화들과 할리우드 발 블록버스터 영화들 사이에서도 원톱 남자 주인공을 내세운 한국산 코미디가 사이좋게 나란히 박스오피스 1,2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
특히 이러한 결과는 ‘더 임파서블’, ‘잭 리처’, ‘라이프 오브 파이’ 등의 대작영화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타워’, ‘레미제라블’ 등의 멀티캐스팅 영화가 휩쓸고 간 자리 위에 세워진 것이라 더욱 눈길을 끈다. 3D영화, 블록버스터 영화, 할리우드 액션 영화들의 막강한 공세를 평범해 보이는 중년 아저씨들이 코믹한 말투와 몸짓으로 가볍게 이겨낸 것. 그 중심에는 '웃기는 아저씨들'이 있다.
웃기는 아저씨의 첫 단추를 끼운 작품은 ‘박수건달’이다. ‘박수건달’은 2013년 새해 첫 300만 관객을 넘긴 한국영화로 등극하며 한물간 조폭코미디 장르가 여전히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음을 증명한 작품. 일각에서는 전형적인 조폭 코미디의 선전이 의외라는 평이 있지만 그 말은 그만큼 ‘박수무당’이 평범해 보이는 소재와 요소들을 잘 버무려 한국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무엇인가’를 만들어 냈다는 것을 뜻한다. ‘조폭마누라’시리즈 1편과 3편을 연출한 조진규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았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주인공 박신양은 하루아침에 잘 나가던 엘리트 건달에서 박수무당이 되는 광호 역을 맡았다. 코믹한 역할도 마냥 가벼워 보이지 않고, 조금은 괴짜 같아 보이는 이미지로 더 웃긴 박신양의 개성있는 코미디 연기가 볼만하다.

박신양을 위협하는 또 다른 아저씨는 충무로의 대세 배우 류승룡이다. 지난해 ‘내 아내의 모든 것’과 ‘광해, 왕이 되고 싶은 남자’의 존재감 넘치는 역할들로 관객의 사랑을 받았던 류승룡은 영화 ‘7번방의 선물’에서 생애 최초 상업 장편 영화의 원톱 주인공을 맡았다. 바람둥이와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가 다음으로 그가 선택한 배역은 바보. 얼핏 한국판 ‘아이 엠 샘’을 연상 시키는 ‘7번방의 선물’에서 그는 딸 예승이(갈소원 분)를 사랑하는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바보 용구 역을 맡아 이전의 카리스마들을 한 번에 날렸다.
리얼함과는 거리가 있는 설정들이지만 동화 같은 이야기 속에서 발휘되는 류승룡의 천진난만한 바보 연기가 코미디의 소재도 되고 눈물을 자아내는 요인이 되기도 하며 관객들을 웃기고 울린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7번방의 선물'은 26일 47만 1937명을 동원해 누적관객 112만 3989명을 기록했다. 개봉 4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한 것. 무서운 기세로 ‘박수건달’을 누르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7번방의 선물’의 선전이 주목할 만하다.
조금은 색다른 아저씨도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내달 7일 개봉하는 영화 ‘남쪽으로 튀어’에서 운동권 출신 열혈가장 최해갑 역을 맡은 김윤석이 웃기는 아저씨 열풍(?)의 후발주자. 오쿠다 히데오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연출은 ‘코리아’의 임순례 감독이 맡았다. 김윤석은 영화의 시나리오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엔딩크레딧에 각본가로도 이름을 올리는 등 ‘남쪽으로 튀어’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이미 ‘도둑들’, ‘완득이’ 등에서 개성 강하고 존재감 있는 연기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던 김윤석의 원톱 주연작이 ‘박수건달’, ‘7번방의 선물’을 이어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는 31일 하정우-한석규-류승범-전지현 등이 멀티 캐스팅으로 참여한 ‘베를린’이 개봉되지만 웃기는 아저씨들의 위력도 상당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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