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환상에 직구를 던진 시도는 용감했으나 해피엔딩 강박증에선 자유로울 수 없었다.
SBS 주말드라마 ‘청담동 앨리스’(극본 김진희 김지운, 연출 조수원)가 세경(문근영)과 승조(박시후)의 재결합을 마지막으로 지난 27일 종영됐다. 빈부격차에 대한 견고한 생각의 차이는 뛰어넘을 수 없는 벽처럼 보였지만, 두 사람은 그간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던 사랑과 세상에 대한 환상을 한 꺼풀 벗기고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세경과 승조가 이 같은 성숙을 이뤄내기까지 과정은 험난했다. ‘청담동 앨리스’는 그간 녹록치 않은 현실에 좌절한 세경이 신분상승을 꿈꾸며 명품회사 CEO 차승조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하는 과정을 그려, 기존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는 욕망에 솔직한 여주인공 캐릭터로 주목 받았다. 동시에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이른바 ‘삼포세대’의 절망과,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로 인한 영세상인의 고통, 집값 거품이 빠진 이후 하우스 푸어로 전락한 소시민의 고난 등 빈부격차 문제에 돋보기를 들이대며 리얼한 현실 인식 감각을 보여 왔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드라마는 불순물 없이 순도 100%만을 고집하는 순수한 사랑에 대한 인식을 ‘환상’으로 규정지으며 현실을 직시할 것을 제안했다. 명문대 디자인학과를 차석 졸업하고 다수의 공모전에서 입상한 경력이 있음에도 2년 동안 사회진출을 억압당한 세경의 처지는 시궁창 같은 현실에 대한 반증이자 그녀가 욕망을 품은 캔디로 작품 속에 자리하는 데 그럴법한 이유를 마련했다. 작품은 오히려 환상에 사로잡힌 관념으로 여성의 욕망을 재단해 이를 ‘꽃뱀’으로 명명하는 시선에 불편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물론, 부를 소유한 자들의 시선을 자기도 모르게 호응하는 그렇지 못한 다수의 반성 없는 인식을 꼬집기도 했다.
그렇다고 ‘청담동 앨리스’가 신분상승 욕망에 충실한 여성의 입장만 대변한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은 오히려 승조라는 인물을 병자로 표현하면서 사랑에 대한 환상적 관념은 부를 소유한 이들 역시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승조는 어린시절 부모가 이혼할 당시 위자료 문제로 어머니에게 이용당한 아픔을 지닌 것을 비롯해, 사랑은 곧 이용가치로 치환되는 룰 속에 자라며 순수한 사랑에 강박적 태도를 지닌 인물로 그려졌다. 비즈니스로서의 사랑에 익숙해 동등한 조건에 의한 결합이 아니고서는 자신을 이용목적으로만 본다는 확신에 찬 그는 그랬기에 순수한 사랑이라는 환상에 갇힌 채 현실을 도피하고 사랑을 증명해야 할 것으로 여기는 자라지 못한 아이의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결국 ‘청담동 앨리스’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의 벽과, 상대가 지닌 속물근성을 비롯해 유아적 모습마저도 아우르는 것이 성숙의 조건이자 진정한 사랑이라는 결론을 내리며 세경과 승조의 결합을 허락했지만, 이 같은 선택은 작품이 그간 유지해 온 냉철한 현실인식을 오히려 퇴색시켰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받아들이며 그간 겪었던 일들에서 얻은 교훈을 실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지만, 눈을 반쯤 감고 캔디인 척 살아가겠다는 인물들의 독백이 빛을 발하기엔 인물들이 완벽히 행복해 보이는 이 같은 닫힌 결말은 도움을 주지 못했다.
노력형 캔디라면 신데렐라가 될 수 있다는 기존 드라마의 화법을 통쾌하게 부순 점은 의미 있는 행보지만, 성급하게 긍정적인 시선으로 치우친 최종회의 선택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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