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말 그가 일본 진출을 선언했을 때 세간의 시선은 그렇게 곱지 않았다. 오히려 걱정이 앞섰다. 누군가는 “무모한 도전”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임창용(37, 시카고 컵스)은 그 무모한 도전을 ‘무한도전’으로 바꿔놓고 있다. 이제 그 촬영 무대는 미국이다.
지난해 말 미국 메이저리그(MLB) 시카고 컵스와 계약을 맺은 임창용이 28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임창용은 미국 도착 후 곧바로 애리조나주에 위치한 컵스의 스프링캠프에 합류할 예정이다. 지난해 6월 팔꿈치 인대접합수술(토미존 서저리)을 받은 임창용은 재활을 거쳐 이르면 후반기 시작과 함께 MLB 무대에 데뷔한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래서 다들 놀랐을지도 모른다. 야쿠르트의 ‘수호신’으로 맹활약했던 임창용은 지난해 수술 뒤 방출됐다. 팔꿈치 수술 경력이 있는 30대 중반의 베테랑에 관심을 갖는 일본 팀은 거의 없었다. “선수 생명의 기로에 섰다”,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임창용은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자신의 평생 꿈이었던 미국 무대 진출을 타진했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 컵스와 최대 500만 달러(54억 원)를 받는 1+1년 계약을 따냈다. 보장 금액은 볼품없는 스플릿 계약이었지만 모두를 놀라게 한 행보였다. 만약 그가 앞이 아닌 뒤를 돌아봤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상황은 그가 2008년 야쿠르트로 입단할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국내 최고의 투수로 활약하던 임창용은 2005년부터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5년 첫 팔꿈치 인대접합수술를 받은 뒤 2006년은 사실상 그대로 날렸다. 2007년 재기에 성공하지 못하면서 위기론은 더 커졌다.
하지만 임창용은 그 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과감히 일본 진출을 선언했다. 모두가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임창용은 야쿠르트에서 4년간 128세이브를 기록하며 보란 듯이 부활에 성공했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역시 어려운 상황에서 발상의 전환이라는 힘을 발휘했다. 4년 전과 같은 또 한 번 반등을 자신하며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물론 상황은 그때보다 더 좋지 않다. 임창용은 당장 공을 던질 수 없는 신세다. 아직 재활이라는 큰 산이 남아있다. 일본보다 수준이 한 단계 높은 메이저리그, 그리고 언제든지 방출할 수 있는 ‘헐값’의 선수임을 고려할 때 미래가 아주 낙관적이지는 않다. 어쩌면 한국으로 돌아와 고국 팬들 앞에서 편안하게 현역을 마무리 짓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임창용의 선택은 달랐다. 안주하기보다는 또 한 번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임창용은 야구전문매거진 ‘오! 베이스볼’과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어느 팀을 가더라도 안정적으로 야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야구 선수로서 가진 내 능력이 소속팀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안정적인 것이다. 많은 연봉을 받으면서 편하게 있는 것이 안정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출사표를 던졌다.
돈키호테는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미친 짓은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라고 외쳤다. 말은 쉽지만 막상 실천으로 옮기기는 어려운 일이다. 야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임창용의 무한도전은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든,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임창용의 발걸음에 좀 더 응원이 필요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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